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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조예, 대를 이어 아내를 죽인 황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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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878 회 작성일 24-09-23 13:5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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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시점에서 조예는 비통한 가정사를 연달아 겪은 상황이었습니다. 우선 황제로 즉위했던 226년에 어린 아들 조경이 세상을 떠납니다. 229년에는 또다른 아들 조목이 죽었고, 231년에 황자 조은이 태어났지만 불과 1년 만에 사망했습니다. 게다가 그해에 딸 조숙마저도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요절했지요. 조예가 얼마나 슬퍼했던지 신하인 진군이 제발 장례에 직접 참석하지는 말라고 간언할 정도였습니다.    

자. 조예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자신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을 어머니 견씨는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때 조예의 나이가 고작 열일곱 살이었지요. 그렇게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 또한 불과 5년 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기 직전에 이르러서야 조예를 황태자로 정한 모양새만 보더라도 평소 조예를 탐탁치 않게 여겼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조예는 장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위치가 탄탄하지 않아 오히려 주변의 눈치를 보아야 했습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제위에 올랐지만 이번에는 나어린 아들 셋과 딸 하나가 연달아 죽었습니다. 그것도 불과 몇 년 사이에 말입니다.

조예가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그는 천하에서 그 누구보다도 존귀한 지위에 있었지만 동시에 천애고아나 마찬가지인 처지였습니다. 그리고 한 나라의 황제로서 밖으로는 수년간의 외침을 막아내면서 안으로는 각종 책무에 시달려야만 했지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을 겁니다. 이게 과연 한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을까요? 어느 날 정신이 나가 버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조예는 정말로 이상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35년 봄에 계모 곽태후가 세상을 떠납니다. 정사에는 건조하게 죽었다는 사실만 서술되어 있습니다만, 위략에 따르면 조예가 황제가 된 이후로 계속 친어머니 견씨를 그리워했기에 곽태후가 내내 근심하다가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이후 과거 견씨를 모시던 이씨 부인이 조예에게 두 사람 간에 있었던 일을 고하였고, 분노한 조예가 곽태후의 장례를 자신의 친모와 똑같은 방식으로 치르도록 명령합니다. 즉 머리를 풀어 해치고 입에는 쌀겨를 넣는 등 지극히 모욕적인 조치를 한 겁니다.

한진춘추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조예가 그 사실을 알고 자꾸만 곽태후를 괴롭히다가 결국 핍박하여 죽였다고 말입니다. 이후 장례를 친모 견씨와 같은 방식으로 치르도록 했다는 서술은 동일합니다. 이러한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조예가 친모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이후 조예는 급격하게 성격이 변해 갑니다. 곽태후의 장례를 치르면서 난데없이 궁궐을 크게 뜯어고치고 각종 전각들을 새로 건설하도록 했습니다. 이를 위해 엄청난 돈이 지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농사를 지어야 할 백성들을 다수 동원했는데 그 머릿수가 무려 3만에서 4만에 달할 지경이었습니다. 양부와 고당륭 등 여러 신하들이 그러지 말라고 간언했지만 조예는 듣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궁궐의 공사가 늦어지자 다짜고짜 담당 관리의 목을 날려버렸다는 기록마저 존재합니다.

조예는 본래 신하들에게 너그러운 황제였습니다. 신하들이 듣기 싫은 말을 한다고 해서 그들을 처벌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비록 혈족이지만 전장에서 패하고 돌아온 장수를 오히려 위로하고 포상한 적도 있었습니다. 자신이 죽었다는 참언을 퍼뜨린 자도 색출하지 않고 관대하게 넘어갔습니다. 그랬기에 조예의 이러한 변모는 당혹스러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조예는 더욱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합니다. 어디선가 아이 둘을 데려다가 아들로 삼아 기른 겁니다.

물론 어린 아들 셋이 연달아 세상을 떠났으니만큼 같은 집안에서 양자를 들였다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꼭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닙니다. 여색을 밝혔던 할아버지 조조가 낳은 자식들이 워낙 많다 보니 양자로 들일 만한 방계 황족은 충분하다 못해 넘쳐흐를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이 두 아이, 즉 조방과 조순이 대체 누구의 자식인지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삼국지 위서 제왕기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명제(조예)는 아들이 없어서 제왕(조방)과 진왕(조순)을 길렀다. 궁궐 내의 일은 비밀이었기에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아무도 알지 못했다. (明帝無子, 養王及秦王詢. 宮省事祕, 莫有知其所由來.)]

당금 황제가 양자를 들이는 건 곧 후계구도와 직결되어 있는 문제입니다. 지극히 정치적인 행위죠. 조예의 젊은 나이를 고려했을 때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장차 친아들이 태어나게 된다면 상황이 꼬여버릴 게 분명했지요. 어떻게 보아도 옳지 않은 판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예는 밀어붙였습니다. 235년 가을, 고작 네 살과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두 아이가 각기 왕으로 봉해졌습니다.

심지어 237년에는 조예가 스스로에게 열조(烈祖)라는 묘호를 붙이는 일이 발생합니다. 본래 묘호는 황제가 죽고 나서 그 업적을 평가하여 후대에 붙이는 것인데, 그걸 살아생전에 받은 거죠. 심지어 열조라는 묘호 자체도 아주 긍정적이고 좋은 명칭이었기에 그야말로 자신의 얼굴에 금칠을 한 격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행동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잘 와닿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당대의 기준으로 볼 때 이는 어처구니없음을 넘어서 만인의 비웃음과 손가락질을 당할 일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이렇듯 조예는 불과 삼사 년 사이에 급격한 변화를 보였습니다. 마치 사람이 바뀌기라도 한 것처럼, 혹은 귀신에 씌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그런 황제를 뜯어말린 신하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예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자신의 뜻을 관철했지요.

그리고 237년 가을, 조예는 아내이자 황후인 모씨를 죽입니다. 마치 자신의 아버지처럼.  

      



모씨를 죽인 이유 또한 아버지 조비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조예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미색을 밝히게 되었고 전국에서 모아들여 후궁으로 삼은 미녀들의 수가 수백에 달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차츰 황후인 모씨와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지요. 어느 날 조예가 후궁의 정원에서 놀면서 그 사실을 황후에게 알리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다음날 모황후가 조예에게 말했지요. 어제 후궁의 정원에서 놀았다는데 즐거웠냐고 말입니다.      

아내의 힐문에 대한 조예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먼저 자신의 행적을 누설한 것으로 의심이 가는 측근 십여 명을 죽였습니다. 이후 황후에게도 자살하라고 명했습니다. 참으로 공교롭게도, 그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인 것과 매우 흡사한 방식이자 이유에서였습니다. 비록 자살을 명했다지만 실상 자신의 손으로 살해한 것과 다를 바 없는 행위였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나쁜 점을 닮는다고들 하지요. 그게 옳지 않은 행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저절로 보고 배우면서 습득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조예 또한 그랬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는 어처구니없는 현실 속에서 자랐던 그가 이제는 자신의 아내를 죽이게 된 겁니다. 이 얼마나 끔찍한 아이러니입니까.

조예는 마지막까지도 아버지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았습니다. 238년 겨울에 그는 중병이 들어 쓰러집니다. 그리고 다음 달,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죽기 직전에 이르러서야 양아들 조방을 황태자로 봉하고 친족인 조상과 자신의 고명대신이기도 했던 사마의 두 사람을 불러 후사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날 조예는 눈을 감았습니다. 당시 고작해야 삼십대 중반으로 아버지 조비보다도 더 이른 때였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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