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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조예, 대를 이어 아내를 죽인 황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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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7,341 회 작성일 24-09-23 12: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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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년. 조조는 일생일대의 라이벌 원소의 근거지였던 업을 점령합니다. 업에는 원소의 가족들이 있었는데 조조는 그들을 해치지 못하도록 했지요. 그런데 당시 18세로 아버지를 따라 종군했던 조비가, 하필 원소의 둘째 며느리였던 23살의 견씨에게 반해버리는 일이 발생합니다. 결국 조비는 유부녀였던 그를 마치 전리품처럼 빼앗아 자신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듬해인 205년에 두 사람 사이에서 아들 조예가 태어났습니다.    

단 조예의 출생연도는 정사 내에서도 기록이 상충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204년 또는 206년이라는 설도 있지요. 그러다 보니 후대의 호사가 몇몇은 조예가 사실 조비의 자식이 아니라 약탈혼 당시 이미 견씨의 뱃속에 있었던 원씨의 핏줄이라는 가설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게 사실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합니다. 택도 없는 소리죠.

각설하고, 220년에 조비는 후한 헌제로부터 선양을 받는 형식으로 황제가 됩니다. 아들인 조예는 이듬해인 221년에 공(公)에 봉해지고 또다시 222년에는 평원왕(王)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비는 조예를 황태자로 봉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조예가 이미 성인이었던 데다 큰아들이었음을 감안하면 다소 뜻밖이었죠.      

물론 이유는 있었습니다. 221년에 견씨가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를 죽인 사람은 바로 그의 남편이자 조예의 아버지인 황제 조비였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조비가 아내에게 죽음을 명한 근거는 질투였습니다. 조비가 황제로 즉위한 후 여러 후궁을 들이자 불만을 품고 원망하는 말(怨言)을 했다는 이유에서였지요. 조비가 황제가 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시기에 발생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조비는 아내를 죽이고 나서도 여전히 분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예법에 따르면 시신을 단정하게 천으로 싸서 입관하는 것을 대렴(大斂)이라 하는데 그 절차를 생략하게 했습니다. 또 반함(飯含)이라 해서 시신의 입에 쌀과 진주, 보옥 등을 물리는데 이걸 쌀겨로 대신했지요. 심지어 머리카락을 단정히 하지 않고 풀어 해쳐서 얼굴을 덮도록 했다고 하니, 아내를 죽인 것으로도 모자라서 실로 집요하리만큼 꼼꼼하게 망자를 거듭 모욕한 셈입니다. 조비라는 인물의 인간성을 알 만한 일화지요.      

조비는 그렇게 아내를 주살한 후, 이듬해에 후궁이었던 곽씨를 황후로 세웁니다. 첩을 황후로 세우는 건 안 된다는 신하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밀어붙였지요. 그리하여 조예는 계모인 곽씨를 어머니로 모시게 됩니다.      

그런데 배송지 주석으로 인용된 위략이나 한진춘추 등을 보면, 견씨가 원망하는 말을 조비에게 일러바친 사람이 다름 아닌 곽씨였다는 혐의가 짙습니다. 그렇다면 조예로서는 친모의 원수를 어머니로 모시게 된 셈입니다.      

조예가 그런 앞뒤 정황을 얼마나 파악하고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단지 어머니가 죄를 범하였기에 죽었다고만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계모 곽씨가 어머니를 참소했다는 사실을 알고 복수심을 불태웠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조예는 자신의 속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단지 매일 아침저녁으로 계모 곽씨에게 문안인사를 드리는 등 효성스러운 모습을 보일 따름이었습니다.




만일 조예가 복수심을 품고 있었으면서도 그걸 숨겼다고 가정한다면, 그건 일정부분 자신의 처지 때문이기도 했을 겁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조예는 황제의 장남이면서도 나이가 스물이 넘도록 황태자로 책봉되지 못하고 있었던 처지였거든요. ‘죄를 지어 주살당한’ 견씨의 소생이기도 했거니와 아버지 조비 또한 다른 자식을 후계자로 삼으려는 속내를 품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얄궂은 일입니다. 조비는 장남이면서도 오래도록 조조의 후계자가 되지 못하여서 일평생 속앓이를 해야만 했는데, 막상 자신이 황제가 되자 자식에게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조예의 처지가 조비보다 나았던 점도 있습니다.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동복 형제와 경쟁해야 했던 조비와는 달리, 친모 견씨에게는 아들이 조예밖에 없었고 계모 곽씨는 아예 아들을 낳지 못했습니다. 다른 형제가 있기는 했지만 대다수는 일찍 죽었지요. 조비의 경쟁자였던 조식처럼 자신보다 재능이 뛰어난 동년배의 형제가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나이로 보든 현실적으로 보든, 황태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은 조예였습니다.      

그럼에도 조비가 그를 황태자로 정하지 않은 건 그만큼 내키지 않았다는 의미겠지요. 위략에 따르면 후궁에게서 태어난 아들 조례를 후계자로 세우려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조예가 본래 신하들과 접촉이 없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아마도 스스로 몸가짐을 조심했던 게 아닐까요. 게다가 정식으로 황후가 된 곽씨가 아들을 낳는다면, 비록 나이는 한참 어릴망정 그 아들이 바로 적장자가 됩니다. 이렇듯 황제의 장남임에도 불구하고 조예의 정치적 입지는 꽤나 좋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조비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더라면 결국 후계 구도는 조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겁니다. 황후 곽씨 소생의 아들이 태어났으면 가장 좋았겠지요. 꼭 그렇지 않더라도 앞서 언급했던 조례처럼 자신이 총애한 다른 자식이 장성했을 겁니다. 그러면 어떠한 형태로든 그 아들에게 명분을 만들어줄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조비에게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226년 5월. 조비는 병에 걸려 목숨이 경각에 달했습니다. 당시 겨우 마흔 살이었고 즉위한 지 고작 6년밖에 되지 않았으니만큼 당황스러운 일이었지요. 이때가 되어서야 조비는 마지못해 조예를 황태자로 삼습니다. 건국된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나라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니까요. 그달 16일에 조진과 조휴, 진군과 사마의 네 사람을 불러들여서 황태자 조예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에 조비는 세상을 떠납니다. 이로서 스물두 살의 청년 조예가 마침내 위나라의 두 번째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조예는 황위를 물려받자 곧 친모 견씨에게 시호를 추증합니다. 이듬해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외할아버지에게도 시호를 내렸으며,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황제로서 직접 상복을 입었습니다. 또 견씨 집안의 여러 사람들에게 상당히 높은 벼슬을 내렸으며 견씨의 능을 더 크게 만들어 이장하기도 했습니다. 오죽했으면 위서 문소견후전에서 ‘황제는 외가에 대한 생각을 그치지 않았다(帝思念舅氏不已)’고 대 놓고 서술했을 정도로 조예는 돌아가신 친어머니를 끔찍이 여겼습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곽태후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자신이 참소하여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여인의 아들이 생사여탈권을 쥔 황제가 되었습니다. 마음이 편할 리는 없었겠죠.      

하지만 당장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조예가 정신없이 바빴거든요. 즉위한 해인 226년에 손권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강하를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228년부터 제갈량의 북벌이 시작됩니다. 손권 역시도 동맹국과 발을 맞추어 자주 군사를 일으켰지요. 조예는 잇따른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써야 했습니다.  이는 젊은 황제에게는 버거운 일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예의 군사적 판단은 대부분 정확했습니다. 촉과 오는 일부 전투에서 승리했을지언정 끝내 전략적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습니다.

234년, 합비에서 오나라가 패하고 촉한의 승상 제갈량은 오장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 촉나라의 북벌이 중단되고 오나라의 도발 또한 줄어들면서 비로소 위나라는 안정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조예의 나이 서른 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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