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 막부 마지막 다이묘들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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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마에 번
왼쪽은 마츠마에 타카히로, 마츠마에 번이 막부토벌로 노선을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다이묘오른쪽이 마츠마에 슈히로, 마츠마에 번 최후의 다이묘, 이후로는 메이지 신정부에 의해 1871년 폐번치현
[保科]家" />
아이즈 번
9대 마츠다이라 가타모리, 교토 황궁을 수비하는 막부군 핵심 군벌이었으나 신정부군에 패해 돗토리 현으로 유배막부의 칼(사냥개)로써 존황양이파와 유신파를 닥치는 대로 공격해 공포의 대상이었던 신센구미를 운영한 것으로도 유명
마츠다이라 노부요리, 이미 이 때는 보신전쟁에서 막부군이 패배한 상태
센다이 번, 유명한 독안룡 다테 마사무네 이후 쭉 다테 가문이 다스렸습니다.
한쪽이 애꾸인데다 호전적인 성격으로 독안룡이라 불린 다테 마사무네
마지막 다이묘 다테 무네아쓰, 이미 오래 전 신정부군에 의해 오우에쓰 열번동맹(막부군)이 격전끝에 패해 폐번 1순위의 번센다이 번은 에도 시대 고쿠다가(石高, GDP라고 생각하심 됩니다.) 62만 석으로 일본 전국 3위의 강력한 번이었습니다. (1870년대 기준)고쿠다가는 쌀 총 생산량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나오는 모든 경제 생산의 가치를 쌀 1가마의 값어치로 환산한 개념입니다.
[水戸]家" />
미토 번, 오와리 도쿠가와 가(현재 나고야 일대) , 키슈 도쿠가와(와카야마 현) 가문과 함께 어삼가(고산케徳川御三家)라고 불렸던도쿠가와 쇼군의 후계 단절 시 후계자를 대체하기 위해 안전장치로 설치해둔 도쿠가와 가문이 다스리던 일종의 스페어 가문이었습니다.이 임무에다 에도와 가까운 고산케라서 미토 도쿠가와의 다이묘는 에도 시대 300여 개의 번들 중에 참근교대(산킨교다이, 에도로 영주가 올라오는 것)도 면제받은 유일한 번이었습니다.
그런데 미토 번은 도쿠가와 가문의 핵심 기둥이면서 막말에는 유교, 국수주의, 존황양이 사상을 강하게 받아 국왕을 중심으로 막부가 중심이 되어 통치해야된다는 미토 학파의 본거지로 유명해집니다. 결국 이 미토 학파의 영향을 유신파 젊은 사무라이들이 들고 일어난 게 바로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마지막 번주, 도쿠가와 아키타
쿠보타 번, 사타케 가문의 부채문장, 쇼군2에서도 제게 꽤나 눈을 끄는 문장이었더랬지요..
쿠보타 번 최후 번주, 사타케 요시타카, 원래 위쪽에 소개해드린 미토 번 일대를 다스리던 꽤 명성있는 다이묘였으나 역시 줄을 잘못 서서이에야스의 미움을 사 현재 혼슈 북서쪽 아키타 현에 있던 쿠보타 번으로 좌천되고 고쿠다카도 대거 감봉된 사타케 요시노부의 후손입니다.
참고로 아키타 현의 현 지사인 사타케 노리히사가 거의 10년 이상 해먹고 있는데(...) 원래 조상의 땅인 이바라키 현(미토 번)뿐만 아니라쫒겨간 아키타에서도 꽤 끗발 날리는 가문인가봅니다.
우에스기 겐신의 후손인 우에스기 가문이 다스린 요네자와 번입니다. 유명한 우에스기 겐신이 서군에 서버리는 바람에 대거 감봉당했지만그래도 니가타 현에서 바로 위쪽인 야마가타 현에 위치한 요네자와 번으로 쫒겨나서 유배길이 그리 멀지는 않았습니다. 웃기게도 보신전쟁 때는 그들을 핍박한 막부 편에 서서 싸웠으나 정부군에게 패하고 결국 항복
우에스기 겐신
카가 번
고쿠다카 100만 석 이상, 에도 막부 최대의 부국이었던 카가 번 최후의 다이묘, 마에다 요시야츠센고쿠시대 오다 노부나가, 히데요시를 섬겼던 마에다 토시이에의 후손으로 원래 이에야스가 가장 경계하던 인물이었으나 그가 죽은 뒤마에다 가문의 후손들이 도쿠가와의 천하쟁취에 협력한 댓가로 기존 80만 석에 달하던 대 번인 카가 번의 다이묘로 인정받는 특혜를 받게 됩니다.
요시야츠의 부친, 카가 13대 다이묘 마에다 나리야스, 전쟁에 뛰어난 맹장 토시이에의 후손이라 그런 건지 꽤 강력한 인상입니다.
사츠마 번 최후의 다이묘, 시마즈 타다요시, 막부 토벌의 가장 큰 세력이었던 사츠마 번의 번주로서 대정봉환(쇼군에게서 덴노에게 권력반환)을 성공시킨 이후 신정부로부터 공헌을 인정받아 해륙군무총독(국방장관 급)으로 임명받았으나 고향으로 낙향해 일생을 마쳤습니다.
그의 아버지 시마즈 나리아키라,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 등 번내 인재를 양성하고 사츠마 국을 서양제 최신 무기로 무장시켜 일본 근대화에 선구자로불리는 다이묘로 아주 유명한 인물입니다. 일본에서 거의 가마쿠라 시대부터 이어져 온 데다 막부 타도의 선봉장이라 가고시마 현에선시마즈 가문이 아직도 진짜 "다이묘" 취급을 받을 정도라고 합니다. 지방 유력한 정치인을 보고 XX의 다이묘라고 비꼬듯이요 크크물론 우리에게는 임진왜란 때 침공한 원수의 후손에 불과하지만요 후후이 사진은 일본에서 찍힌 사진들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여담으로 나리아키라의 부인과 딸들이 아주 예뼜다고...
오와리 번, 미토 오와리에 이어 오와리 도쿠가와 가문이 다스린 번입니다. 역시 도쿠가와 방계로써 쇼군 혈통의 스페어 격 가문이었지요.
14대 다이묘 도쿠가와 요시카츠
도쿠가와 모치나가, 15대 마지막 다이묘(16대가 있는데 어린 아이라 사실상 마지막. 사진도 없고)
[紀州徳川家]" />
키슈 도쿠가와, 고산케의 마지막 키슈 도쿠가와 가문으로 와카야마 현 일대인 키슈 번을 다스린 가문입니다.
마지막 다이묘, 도쿠가와 모치쓰구
큐슈 쿠마모토 번입니다. 원래 여기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가토 기요마사의 영지였는데 2대 번주 때 개역(가이에키, 쇼군이 영주를 몰수하는 것, 다이묘에게 있어서는 거의 할복명령 급)당해 가토 가문은 몇 만 석 규모의 다이묘가 되어 사실상 멸문지화를 당했지만 아직도 그의후손들은 있습니다. 참고로 위 문장은 가토 대신 전봉해온 호소카와 가문의 가몬입니다.
가토 기요마사가 임진왜란 때의 개고생으로 이를갈며 축성했다는 쿠마모토 성, 일본에서 옛 천수각이 거의 남아있는 얼마안되는 성입니다.근데 서남전쟁(세이난 전쟁, 신정부군과 사츠마의 충돌로 인한 전쟁) 때 천수각 일부가 파손되어 복구된 것이지만요.검은 빛의 나무가 보이시죠. 그게 원형이라는 증거입니다. 현재 일본의 대부분 천수각(중앙에 높이 솟은 탑같은 핵심건물)들은 현대에 다 시멘트와 페인트로 복원되어 하얀 색이지요. 한국인들도 많이 가시는 걸로 아는데.. 역사를 꼭 알아주셨으면ㅠ
키요마사는 불과 2대만에 몰락했지만 아직도 쿠마모토 현민들에게는 꽤나 유명인사입니다.
쿠마모토 번의 마지막 다이묘, 호소카와 모리히사, 세키가하라 전투 때 동군에서 싸운 이에야스의 심복 호소카와 타다오키의 후손입니다.
호소카와 모리히로, 타다오키의 직계 후손으로 79대 일본 총리대신입니다. 아직도 쭉 이어져오는 얼마안되는 명문가
호소카와 타다오키, 비교들 해보시라고..
쿠로다 나가모토, 쿠로다 칸베에로 유명한 쿠로다 가문의 양자로 들어온 인물로 후쿠오카 번의 마지막 다이묘가 됩니다. 직계는 아닙니다.쿠로다 칸베에의 아들 쿠로다 나가마사도 임진왜란에 참전한 것으로 유명하지요.
전국시대 전국다이묘(강력한 다이묘)로 이름있던 모리 가문의 모리 테루모토를 시초로 하는 조슈(쵸슈)번 입니다.근대 막말 사츠마 번과 함께 도쿠가와 막부를 쓰러뜨리는데 가장 열정적이었던 번으로 수많은 메이지 재위 기 일본 근대화의 인물들을 배출해낸 야마구치 현의전신이기도 합니다. 즉, 우리에게는 아주 좋지 않은 짓을 한 번인 셈이지요..
전국 다이묘, 모리 테루모토
모리 다카치카
마지막 다이묘, 모리 모토노리, 테루모토의 직계 당주입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 편에 선 테루모토가 이에야스에 의해 패배하고 영지가 8개에서 2개로 쪼그라들었음에도 오랜 시간 원한을절치부심한 것인지 결국 막말에 막부를 타도하는데 가장 앞장선(나댄) 다이묘들입니다! (복수다앗!! 키에에ㅔ엨キエエエエッ 푸슉! 써걱! 죄송합니다 쇼군2토탈워를 넘 많이하고 일본 사극을 많이 봐서...)
마지막 다이묘, 야마우치 토요노리
이전 다이묘, 야마우치 요도
토사 야마우치 가문의 시조, 이시다 미츠나리 등 이에야스를 적대한 구 히데요시 무리들과 싸우거나 이시다 미츠나리의 이에야스 토벌 거병의 혼란기 때 이에야스에게 자진해서 가케가와 성城을 상납하는 등
NHK 대하드라마 "료마덴"에서 나온 요도, 나올 때마다 거의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입니다. 근데 당시 요도는 젊은 중년이었는데료마전에서는 백발의 노인으로 나와서.. 어쨌든 료마전은 제가 가장 재밌게 본 사극 중 하나지요.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로부터 권력을 덴노에게 바치는 것으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이후 천년간 이어져온 막부 시대를 끝낸대정봉환의 주역으로 일본 내에서 매우 높은 존경을 받고 있는 사카모토 료마, 하지만 결국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된 막부 휘하 분노한 사무라이들에 의해 암살당해버립니다. 그 사건이 바로 오미야 사건인데 그 장면입니다. 료마가 바로 이 토사 번 출신 "탈번무사, 탓-빤로오시!"였던 것이지요.
"료마....사카모토 료마....료마!!!"
"료마를 죽이면 안돼! 제발 부탁이야! 내 부탁을 들어줘!""그놈은.....료마 그놈은... 우리들 무사의 자존심을... 우리들의 의미를 짓밟아버렸단 말이다앗!""안돼! 죽이면 안돼!!! 이봐!!!"
"료마....네놈이 료마인가! 사.카.모.토.료마ㅏㅏㅏㅏㅏ앜!!!!"
"쿠아아ㅏㅏㅏㅏ앜クアアアアックーー!"푸슉!!! 써걱서걱!!! 크아ㅏㅏㅏ악!!! 커헑.....컭!!! 털썩.....(잔인한 장면 생략)
도쿠가와 막부의 마지막 쇼군이자 천년동안 일본을 다스려온 칼잡이들의 막부 체제에 종언을 고한 도쿠가와 요시노부
대정봉환을 논의하는 요시노부와 에도 성에 불려온 일본 각지의 다이묘들의 가신들이상으로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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