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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죽을뻔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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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862 회 작성일 24-08-05 15:0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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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겪었던 일입니다.



05:00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잠에서 깼습니다. 약간의 변의와 갈증이 있었지만 폰으로 시간을 보니 거진 불침번 말번초 정도의 애매한 시간이었습니다. 일어난게 너무 억울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한시간 남짓 자는걸로 풀릴만한 피로가 아니지만 1분이라도 더 잠을 자려 일단 눈을 감았습니다.


05:20
피로 때문에 눈꺼풀 스르륵 내려오고 피곤한데도 쉽사리 잠이 안옵니다. 소변이 애매모호하게 마려운 것도 있지만 아랫배 쪽이 묘하게 거슬립니다. 창자가 쪼여드는 듯한 느낌이 들다 갑자기 한대 쎄게 맞아 큰 멍이 생긴것마냥 아랫배쪽에서 통증이 밀려왔습니다.


05:25
물이라도 마시려 냉장고를 향해 걷는데 상태는 심각해져갑니다. 한 발자국 내딛을 때 마다 바늘이 온몸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집니다. "아 이건 안되겠다. 병원을 가야겠다" 생각이 들어 지도앱으로 병원위치를 확인하니 가까운 응급실은 약 5km 정도였습니다 .


05:30
일단 응급실로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란 생각에 어차저차 바지와 겉옷만 걸친 채 차에 탔습니다. 계단 한칸 한칸 내려가는 발걸음이 너무나도 힘겨웠습니다. 가만히만 있어도 너무 아펐고, 고작 30분 지났는데 통증이 점점 심각해지는걸 보니 1초라도 빨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겠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어찌저찌 응급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이른 아침인데 저 외에도 아짐, 아저씨 3명 정도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데스크에 증상을 설명한 뒤 시종일관 얼굴을 구기고 배를 부여잡으며 40분정도를 대기했습니다. 영겁의 시간이 지나고 의사 센세와 대면 후 mri, 초음파 검사 등 여러가지 테스트를 받았습니다.

결과를 말하면 충수염(맹장)은 아니고 급성 복막염이랩니다. 염증이 심하지 않아 수술을 하진 않았고 이틀간 금식 처방에(죽 정도만 섭취) 주사, 항생제 처방을 받았습니다.





여기까지가 사건의 경과고, 사실 중요한 건 이게 아닙니다...


얼추 치료를 받은뒤 정신을 차리니 몸에 폰이 없었습니다. 차에 놓고 왔나? 싶어 주차장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자리 두 곳을 점거한 형편없이 주차된 제 차 꼬라지가 보였습니다. 남이 이렇게 주차했다면 "어떤 새x가 이따위로 주차를 해놨나" 하고 욕 한바가지를 날렸을 만한 참상이었고... 얼굴이 화끈해진 채로 다시 차를 똑바로 세우고 다시 폰을 찾았습니다만 찾지 못했습니다. 분명 네비보고 온거니 들고온건 맞는데 대체 어디뒀는지 모르겠습니다.


폰을 찾기 위해 차 안을 뒤지던 중, 조수석 틈새에서 폰을 발견했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폰을 켜보니 부재중 전화가 무려 10통이나 있었고 모두 회사에서 걸려온 것이었습니다. 급히 회사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독신인 제가 출근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전화를 받지 않자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엄청 걱정했다고 합니다. 교통사고부터 범죄 연루, 심지어 납치까지 가정했다고 하니 그저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을 겪고 나서 가장 오싹했던 건 아침부터 지금까지 아파 정신을 못 차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특히 그 상황에서 운전할 생각을 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제일 무섭습니다. 당장의 고통이 너무 심해 그걸 벗어
나기 위해 자연스럽게 운전을 했고, "지금 운전하면 위험하다"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운전 중 엑셀과 브레이크 밟는 강도를 제대로 조절하지 못했다면, 혹은 정신을 잃었다면 큰 사고가 났을 수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 흐르는게 요즘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음주운전이나 마약운전 못지않게 위험한 짓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주위에 가족이 있었다면 이렇게 위험한 행동은 절대절대x100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뭐 이리 당연한 썰을 왜 푸냐... 라 생각하실 분이 분명 있을겁니다. 그도 그럴게 제가 남이 이렇게 써놓은 글을 본다면 "크크 능지이슈", "와! 개멍청하다!", "난 절대 안그럴듯~" 이라 반응 할 모습이 상상되거든요. 당시 제 사리판단 능력은 수면 내시경을 한 직후 몽롱했던 상태와 같았다고 생각합니다(내시경 검사가 끝난 후 동행인이 말하길 제가 의자에 앉아 멍하니 20분 남짓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정도 흐름은 기억 나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의 기억은 하나도 나지 않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뭔가 글이 알맹이도 없이 길어졌는데... 무튼 긴급 상황에는 무조건 119를 불러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특히 저처럼 독신이면 이런 위험한 상황에 빠지기 쉬운것 같습니다. 응급상황에서의 판단력 저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다는걸 이번 일로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이번 일로 건강에 대한 자신감,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사리판단을 할 거란 믿음이 와장창 무너져 버렸습니다. 갑자기 급성 통증으로 쓰러지는게 남일이 아니구나... 싶기도 하고 그냥 사고가 안나서 다행이라는 안도감만 들고 뭔가 싱숭맹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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