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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의 땅, 코카서스》 - 직접 가보는 듯한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조지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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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46 회 작성일 24-07-15 07:1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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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혹의 땅, 코카서스 저자 현경채/ 출판 띠움/발매 2019.05.20./

러시아, 터키, 이란이라는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코카서스(캅카스) 산맥의 세 나라,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우리에게 생소한 이 세 나라를 다녀온 음악인류학자이자 여행작가인 현경채의 여행 기록이자 코카서스 소개입니다. 글쓴이는 집필 당시 영남대학교 겸임교수이자 한양대학교 자문교수를 지내고 있으며, 쿠바·몽골·러시아·멕시코 등의 여행기를 연재하고 중국음악, 국악을 소개하는 라디오 방송을 진행했으며 음악 관련 저서도 여럿 출간했습니다.

소수 마니아들만 즐기는 게임이지만 한때 제가 즐겨 한 유로파 유니버설리스 4 플레이어라면 코카서스 나라들을 기억하실 수도 있는데, 오랜 외세의 간섭에도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을 끈질기게 지킨 전통을 반영해서 정복하려면 행정력이 2배로 드는 똥땅으로 악명 높았기 때문이지요. 제작사에서도 플레이어들의 고충을 기억했는지 패치를 거듭하면서 이런 특성을 많이 바꾸었지만, 이 책을 읽는다면 정복되어도 결코 문화적으로 굴복하지 않는 코카서스 나라들의 특성이 긍지와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겁니다.

음악인류학자인 글쓴이의 관점이 적극 반영되어 있는 각 나라의 음악 설명은 여행을 설령 가지 못하더라도 음악을 눈으로, 귀로 들어보며 나라들을 느껴볼 수 있게 합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느낀 음악에서는 살아있는 문화를 체험할 수 있고, 각 나라의 여행기 끝에 있는 나라별 음악 소개는 풍부한 자료와 참고문헌이 있어 음악 교양 강좌라고 해도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아르메니아는 풍부하고도 저렴한 공연 예술 감상 위주로, 아제르바이잔은 번화하고 현대적인 수도 바쿠와 옛 작은 나라의 화려한 궁전을 자랑하는 셰키 등 도시 위주로, 조지아는 여행자로서 즐기는 일상, 맛있는 조지아 음식과 와인을 위주로 체험하는데 이 나라마다 다른 특성도 자칫하면 지루해질지도 모르는 70일간의 긴 여정에 개성을 부여합니다. 가장 오래된 와인 양조의 흔적이 조지아에 있을 뿐만 아니라, 와인이라는 영어 단어의 유래조차도 조지아어였다니 신선한 충격입니다.

요즘은 유명한 여행지에 관광객이 너무 많아져서 나타나는 오버투어리즘 문제가 화두가 되기도 하는데요. 지금의 코카서스 3국이 그 정도까지 인기 있는 관광지는 아니지만, 우연히 본 조지아의 수려한 산 사진을 보고 코카서스 여행을 하게 된 글쓴이는 아직까지는 한적하게 즐길 수 있는 조지아 여행의 미래를 걱정하기도 합니다. 이미 서유럽까지 알프스산맥에도 뒤지지 않는 조지아의 자연경관이 소문이 나서 점차 관광객이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자연 관광지를 생각하면 우리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지만, 사람 말고 자연을 느껴보고 싶기도 하지요.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는 종교도 아르메니아 정교회, 시아 이슬람, 조지아 정교회로 각각 다르며 나라와 종교의 관계도 서로 다릅니다. 아르메니아와 조지아는 고유의 기독교 종파가 국가 정체성과 깊게 연관되어 있고, 아제르바이잔은 튀르크화한 페르시아계라는 민족성에 걸맞게 비교적 세속적인 이슬람 신앙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행기에서도 이 점이 뚜렷이 느껴집니다. 주요 여행지에 성당과 수도원 등 종교 시설이 많고, 기독교도인 글쓴이는 아르메니아와 조지아의 기독교 행사에 참여하면서 종교를 통해 현지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종교와 문화가 한 개인을 온전하게 결정하지는 않지요. 글쓴이는 여행을 다니며 현지인을 만나고 자신도 몰래 품고 있던 편견을 깨닫고 고쳐가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이것도 여행을 통해 사람을 직접 만나보면서 얻을 수 있는 삶의 귀한 경험인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으로는 사진이 작게 나와서 미처 몰랐는데, PC에서 책을 다시 보니 두세 페이지에 사진 한 장이 나올 정도로 코카서스 지역의 살아 있는 풍경을 생생히 전해 주는 것도 이 책의 장점입니다. 글쓴이가 처음 반한 아름다운 풍경도 있고, 현지인들과 여행객들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고, 도시의 화려한 광경이나 유적지의 고즈넉한 모습들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관들을 보고 느끼면서 글쓴이는 새로운 것도 좋지만 결국은 오래 자리를 지키면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들에 더 매력을 느낍니다. 그래서 너무나 가난한 나머지 미처 옛 시가지를 보존하지 못하고 밀어버린 우리나라 서울의 개발을 많이 안타까워합니다.

여행이라면 또 잊을 수 없는 매력은 각지에서 만나는 뜻밖의 인연이지요. 글쓴이 역시 이 먼 타향에서 뜻밖의 한국인을 만나기도 하고, 잠깐 스쳐가는 듯 만난 사람을 전혀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지고 여행 전에는 알지도 못한 두 청춘 남녀가 우연히 여행에서 만나 연인이 되는 광경을 보기도 합니다. 먹거리가 많은 조지아에서는 서로 다른 국적인들이 만나 조지아 음식으로 하나 되기도 하고, 아제르바이잔의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아침을 각자 가져와서 차리면서 TV 프로 비정상회담의 한 장면 같은 풍경도 펼쳐집니다. 어쩌면 코카서스 나라들이 다들 작아서 다양한 나라 사람들을 만나기에는 더 좋은 환경이 아닐까도 합니다.

생소한 땅이기에 이곳을 가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정보가 많이 필요합니다. 글쓴이는 직접 경험을 바탕으로 유용한 교통수단이나 숙박업소, 음식점 등도 소개합니다. 단순한 정보 소개뿐만이 아니라 글쓴이가 겪은 사례를 바탕으로 알려주기에 여행안내서로도 알찹니다. 어느 지역은 구글 지도가 낫고 어디는 맵스미가 낫다는 등의 소소한 팁도 있습니다. 여행 정보 소개에 많이 신경을 썼는지 책도 마지막 여행지 바투미 보타니컬 가든에 버스 타고 가는 방법 안내로 끝나는데, 여행기로서는 책이 중간에 갑자기 끝나는 것 같아 아쉽지만 끝까지 이곳을 찾을지도 모르는 읽는 이들을 배려하는 마음 같아 친절함을 느낍니다.

저는 서양 고전 음악을 좋아해서 그런지, 이 책에서 소개하는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조지아 전통 음악 중에서도 서양 고전 음악보다 훨씬 앞서는 조지아의 다성음악 전통에 흥미가 갔습니다. 피아노로 4성 푸가를 연주하는 것도 손이 꼬이는데 무려 8성부 남성 다성 합창이라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양한 서양 음악을 접하고서도 자기 색깔을 유지하는 아제르바이잔 전통 음악과 글래디에이터의 삽입곡으로 명성을 얻은 아르메니아 음악에도 각자만의 매력이 있습니다.

조그만 흠이라면 책 군데군데 오자가 좀 있는 편입니다. 방대한 참고 문헌에서 보듯이 많은 공부를 하고 쓴 책임에도 아제르바이잔의 옛 나라인 셰키 칸국(Shaki khanate)에서 "칸국, 칸이 다스리는 나라"를 뜻하는 영단어 카네이트(Khanate)를 칸나테라는 나라 이름으로 착각했더군요.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을 여행하면서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으로 죽은 사람들을 애도한 글쓴이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2020년에 또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 전쟁은 아제르바이잔의 승리로 끝나, 아르메니아의 괴뢰국인 아르차흐 공화국은 멸망하고 아제르바이잔은 전 전쟁에서 잃은 영토를 수복했습니다. 양국의 분쟁 요소가 완전히 소멸했으므로 언젠가는 평화가 올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양국의 국경이 전부 여행금지구역이 되어서 자유롭게 갈 수 없습니다.

여전히 아제르바이잔을 처음으로 방문하고 조지아를 거쳐 아르메니아로 가는 경로는 가능합니다만 아르메니아 쪽 금지구역이 넓어서 아르메니아의 서울 예레반 주변과 그 서쪽 지역만 방문할 수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번 2024년 7월 31일에 여행금지가 풀립니다.

아무쪼록 평화가 찾아와서 그림 같은 풍경, 흥겨우면서도 한이 서린 전통 음악, 인류의 옛 발자취가 담긴 코카서스를 다시 자유롭게 찾아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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