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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LG트윈스의 팬으로 만든 죄책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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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981 회 작성일 24-07-10 10:0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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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생 남자아이의 학부모 입니다.

아이가 야구에 관심을 가진 건 대략 1년정도 되었습니다. 학교에 특정 팀 모자나 유니폼을 입고 오는 친구들을 보고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더라구요. 아이한테는 말을 안하고 있었지만 저는 MBC청룡 시절부터(김재박 아저씨가 유격수 보던 시절) 어린이 회원이었고, 동네도 잠실야구장 언저리라 친구들 모두 LG/두산 양자택일의 분위기에서 자라온 모태 LG빠 입니다. 잠실야구장은 국민학교 고학년부터 친구들과 자전거로 출퇴근하였고, 돈이 없는 날은 6회~7회 넘어갈 때 외야쪽 입구에 불쌍하게 서 있으면 경비아저씨들이 들여 보내주시던 낭만의 시대에 프로야구와 함께 자랐습니다.

사는 게 바빠 매일같이 중계를 못 봐도 야구장 갈 기회가 생기면 무조건 LG경기에 맞춰서 가고 경기 결과는 늘 챙겨보다가, 길게 설명하기도 참 진저리나는 LG의 비밀번호 암흑기 시절에 저는 그만 마음이 꺾인 LG팬이 되고 말았습니다.(유독 그 시절 야구 선수들 사건사고도 많아서 사회인 입장에서 바라보니 좀 진저리가 나더라구요)

점점 야구에 흥미를 느끼는 아이와의 학교 운동장 캐치볼도 점점 능숙해지던 작년 늦가을 저녁, 아이는 그만 KT와 LG의 한국시리즈 2차전 박동원 선수의 역전 홈런을 보고 동공에 LG가 새겨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2024년을 맞이하여 개막시즌, 야구장에 가고 싶다는 아이의 조름에 “그래 그래 다음에 가자”(대를 이어 너 마저 LG로 고통 받게 해주고 싶지 않은 애비 마음을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 로 넘기던 어느 날, 최강야구를 보던 아이가 “아! 박용택 그걸 못 치냐!” 소리에 저도 모르게 그만 “야! 박용택은 욕하지 마라!”. 망자의 혼이 깨어나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내/외야를 가리지 않고 표만 구하면 아이와 LG응원을 다니게 되었고, 신규 팬 유입에 진심이었는지 LG의 전반기는 꽤 괜찮은 신바람 야구였습니다. 아이는 유니폼을 구매 승인을 위하여 학교/학원 시험에 마음을 불태우고, 인고의 세월을 거쳐 모친의 재가를 득 하여 ‘51번 홍창기’가 새겨진 유니폼을 자기 옷장에 걸게 됩니다.

LG의 전반기가 끝나갈 때 즈음. 모든 LG선수의 응원가를 줄줄이 외우는 아이에게 너무 큰 상처가 되지 않도록 밥상머리에서 조심스레 DTD 교육을 진행하였습니다. 아이는 작년도 우승팀인데 무슨 소리하냐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더군요. 아니야 아들 LG팬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을 굳게 먹어야 된다. 절대 일희일비 하면 안 된 단다.

그렇게 어제 저녁 7월9일 하반기 첫 경기가 열립니다.

저녁을 먹고 방에서 조금 남겨온 업무를 하던 중 거실에서 KIA와의 경기를 응원하던 아들 입에서 십 수년전 제가 하던 대사가 나오더군요.”야! 그게 야구냐!”. LG팬이 된 걸 미안하지만 환영한다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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