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아버지와 비슷한 분들인데…" 시청역 사고현장에 놓인 손편지(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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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사흘째 직장인 등 추모 발길…"서울 한복판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사고 안 믿겨" 유족 통곡…빈소 찾은 동료들 "말할 수 없는 충격"
추모의 마음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3일 오전 이틀 전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중구 시청역 교차로 인근 교통사고 현장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국화 및 추모글 등이 놓여져 있다. 2024.7.3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안정훈 최원정 최윤선 기자 = "누구든 그 시간에 거기 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곳이잖아요. 돌아가신 분들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남편이고 아버지셨을 텐데…."
3일 오전 서울 중구 시청역 역주행 사고 현장에서 사망자들을 추모하던 김은서(38)씨가 말끝을 흐렸다.
사고 사흘째인 이날도 현장에는 고인들을 추모하는 시민의 발걸음이 줄을 이었다. 점심시간인 오후 1시께에는 인근 직장인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한 시민은 현장 한편에 놓인 찌그러진 오토바이를 보고 사고 당시의 참상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또 다른 시민은 "서울 한복판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흰 국화를 바닥에 놓고 묵념하며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국화 옆에는 회식과 야근을 마치고 귀갓길에 참변을 당한 이들을 위로하는 듯 자양강장제와 숙취 음료가 수북이 놓였다.
"근처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시민은 남아있는 펜스에 추모의 뜻을 담은 손편지를 붙였다.
이 시민은 "어쩌면 퇴근 후 밥 한 끼 먹고 돌아가고 있던 그 길에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유명을 달리한 9분의 명복을 빈다"며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대의 분들이 차마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진다"고 적었다.
강남구에서 온 노경한(66)씨는 "4년 전 갑작스레 잃은 서른 살 딸이 생각나 더 안타까웠다"며 "이번 사고로 돌아가신 영혼들이 좋은 곳에서 편히 쉬고 유족들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이곳에 왔다"고 눈물을 흘렸다.
광화문 근처 직장에서 일하는 양지혜(34)씨는 "나이도 비슷하고 평소에 돌아다니는 곳들이어서 더 충격을 받았다"며 "희생자 모두 그곳에서는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쉬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청 추모공간
(서울=연합뉴스) 최윤선 기자 = 2일 서울시공무원노조가 시청 본관 7층에 마련한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직원들이 묵념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사고로 직원 2명을 잃은 서울시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울지부와 서울시공무원노동조합의 요청을 받아들여 시청 본관 7층에 추모 공간을 설치했다. 본관 7층은 이번 사고 사망자 중 한명인 김인병 씨가 팀장으로 근무했던 청사운영팀 사무실이 자리한 곳이다.
이날 오후 2시까지 이틀간 서울시 직원 270여명이 찾아 조문했다. 시는 발인을 마치는 4일 오전까지 추모 공간을 유지할 계획이다.
사고 사망자 9명 중 7명의 빈소가 차려진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은 여전히 사고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유족과 지인의 슬픔으로 가득했다.
서울 한 대형병원 용역업체 직원이었던 양모(35)씨의 빈소에서 어머니 최모씨는 영정 앞에 엎드린 채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가끔 고개를 들면 멍하니 영정과 위패를 바라봤다. 빈소를 찾은 조문객을 끌어안고 "못 살아…"라며 통곡하기도 했다.
사촌 양모(59)씨는 "착하고 말썽 안 피우던 동생"이라며 "부모님과 같이 살았는데 아침에 회사를 갔다 온다고 했다는데…"라며 말을 끝맺지 못했다.
장남이었던 양씨는 부모와 남동생을 챙기는 가장이었다. 한 유족은 "자기 월급은 어머니한테 다 갖다줬다"며 "착하고 성실해 나무랄 데가 없는 아이였다"고 말했다.
양씨와 저녁식사를 하고 함께 사고를 당한 직장 동료 김모(38)씨의 빈소에서도 조문객은 망연자실함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결혼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새신랑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의 전 직장 동료였다는 백성준(33)씨는 "이번 주 금요일에도 만나서 같이 신촌에서 놀기로 했었다"며 "믿기지 않는다"고 애통해했다.
시중은행 동료였던 사망자 4명의 빈소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망자 이모(52)씨와 사촌지간이라는 한 유족은 "아주 착한 아이였다. 효도하고 부모 속 썩이지 않았던…"이라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고인은 장애가 있던 부모님 슬하에서 어렵게 자란 것으로 전해졌다.
조문객 발걸음 이어지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촬영 안정훈]
또다른 은행 직원 이모(54)씨의 빈소에는 백발의 어머니가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아이고 어디 가니"를 외치며 계속 오열했다. 고인의 두 아들이 비통한 표정으로 조문객들을 맞이했다.
사고로 숨진 은행 직원 박모(44)씨의 어머니는 붉은 눈시울로 빈소 밖에 앉아 있었다. 그는 "(사고 사실이) 아직도 안 믿긴다"며 슬퍼했다.
박씨는 사고 당일 은행에서 승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에 있는 아내와 주말부부로 지낸 것으로 전해졌다.
동료 장모(45)씨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라면서 "그날 아침에 승진했다는 연락을 받고 집사람한테도 연락하셨을텐데…"라며 슬픔을 숨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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