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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장각은 거대한 음모의 희생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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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7,777 회 작성일 24-06-26 10:2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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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의 황실을 중흥시킨 뛰어난 군사지도자이자 후한의 개창자 광무제는 사실 도참(圖讖)에 심취한 자였다. 그는 참위서에 적힌 예언대로 본인이 선택받은 자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름으로써 예언이 실현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름대로 독자연구를 한 끝에, 한나라 황실의 전통적 상징이 불(火)이었다고 주장했다. 

 하나의 전설이 그것을 정당화했다. 그의 조상이자 한나라를 건국한 고조 유방은 어린 시절 물의 화신인 흰색 뱀을 죽였는데, 그 자신이 불의 화신이자 요임금의 후손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 뱀을 죽인 검은 적소(赤霄)라는 이름을 가진채 황실의 보물로서 대대로 숭배되었다. 이후로도 한나라는 계속해서 붉은색과 화덕을 숭상하게 된 것이다.


 이 오행에는 마치 포켓몬 상성처럼 "물타입이 불타입에 강하다" 류의 상극(相剋)과 "물이 불을 낳고, 불이 흙을 낳는다" 류의 상생(相生)이 있었다. 화덕을 숭상하던 주나라가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수덕을 숭상하는 진나라에 멸망당한 것이 바로 물타입이 불타입을 이겨버린 상극의 예였고, 그런 진나라가 다시 초한대전을 거쳐 한나라로 바뀐 것은 물이 불을 낳은 상생의 예였다.


 그리하여 한나라가 혼란스러워졌을땐 다시 물타입, 그리고 물타입의 상징색인 "검은색"을 쓰거나, (흑산적) 아니면 불이 낳는다고 여겨지던 "토덕", 그리고 토덕의 상징색인 황색을 숭상하는 세력이 등장하기 마련이었다. "황천태평(黃天太平)"의 도를 내세운 장각의 세력이 바로 후자에 해당했다. 

 장각은 태평의 도와 황색을 결부시켰다. 170년대에부터 이미 사대부들 집의 돌담이나 무덤 단지 벽돌, 성벽과 관청 대문에는 "푸른 하늘이 이미 죽었고, 마땅히 누런 하늘이 서리라(「蒼天已死,黃天當立」)"는 낙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낙서는 기주를 벗어나 온 천하의 온갖 곳에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했다. 누런 하늘이 일어서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지방의 관리들은 장각을 의심하지 않았다. 
 장각은 다소 요사스러운 도술을 부리는 이상한 행세를 하긴 했어도 백성들을 위한 그의 마음은 진심처럼 보였으며, 무엇보다 분노로 가득차있어 언제라도 반역할 기세였던 백성들이 장각의 앞에서는 온순한 양처럼 되었으니, 꾸준하고도 오랫동안 백성을 수탈해야하는 관리들 입장에선 장각의 존재가 오히려 이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황천을 운운하던 낙서에는 의미심장한 뒷부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갑자년이 되면, 천하가 대길하리라."「... 歲在甲子,天下大吉」)

 180년대에 이르자, 장각의 태평도 일당은 그 수가 최소 수십 만을 웃돌게 되었다. 태평도의 영향력은 기주에서 시작해 북쪽으로는 유주에 이르렀고, 연주, 청주, 예주와 서주 전역에 창궐했으며, 남쪽으로는 형주와 양주 일부에까지 가닿았고, 무엇보다도 황제가 있는 낙양에까지 그 기운이 미쳤다. 
 이렇듯, 방만해진 조직을 체계적으로 정비하기 위해 장각은 휘하에 여러 대방(大方)과 소방(小方)을 두기 시작했다. 대방은 1만여 명, 소방은 6~7000여 명 가량을 거느렸다고 하는데, 이러한 방이 모두 다해서 36개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36은 수비학적으로 "많다"는 의미를 뜻했으니, 그저 수십 개의 방이 존재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대방 중에는 장각의 친형제인 장보와 장량처럼 지근거리에서 그를 호위하는 친위세력뿐 아니라, 더 먼곳에서 사실상 독자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막대한 권한을 가진 자들도 존재했다. 우선, 남양(南陽) 땅에는 같은 장씨 성을 공유하기에 어쩌면 장각과 혈연 관계일지도 모르는 신상사(神上使) 장만성(張曼成)이 있었다. 

 스스로를 하늘에서 보낸 대천사로 자칭했던 장만성은 남부 지역에서 상당한 수의 태평도 신자들을 이끌고 있었는데, 틀림없이 장각이 친족에 준하는 신임을 했거나 어떤 이유에서든 태평도 내에서 상당한 입지를 갖추었던 자일 것이다. 그는 휘하에 조홍(趙弘), 한충(韓忠) 등 뛰어난 군사지휘관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또한 지근거리의 영천(潁川)과 여남땅에는 파재(波才)와 팽탈(彭脫)이라고 불리는 대방이 있었는데, 이들이 각각 거느리는 태평도 군사들은 신앙에서 비롯된 강력한 충성심으로 무장되어있었고, 정예함이 여느 관군 못지 않을 정도였다. 

 제국의 수도 낙양에서는 마원의라고 하는 뛰어난 대방이 열심히 발품을 팔고 있었다. 옛 몰락귀족 출신이었는지는 몰라도 확실히 예법과 학식에 뛰어났던 그는 봉서(封諝), 서봉(徐奉)을 비롯해 황제를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환관들과 밀접한 관계를 쌓아나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흔히 십상시(十常侍)로 일컬어지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엄당의 내시들도 다소 수상쩍지만 거대한 이 신흥종교 세력과 좋은 관계를 맺고자, 하나 둘 마원의를 찾아왔다. 이렇게 낙양에만 태평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된 사람들이 최소 1,000여 명에 달했다. 


 뿐만 아니라 마원의는 군재, 그러니까 병사들을 지휘하는 능력도 꽤나 탁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낙양에서의 일이 끝나면 한나라의 남쪽 변방으로 여정을 떠날 참이었는데, 이미 이전부터 그곳에서 상당한 수의 태평도 신자들을 정예군사화해놓은 터였다. 만약 상황이 틀어질 경우, 그는 그곳에서 형주와 양주의 병사 수만 명을 지휘하는 권한을 갖게 되어 있었다. 그 군세를 이끌고 업현에 이르러, 그 성을 쳐서 함락시킬 계획이었다. 

 북쪽에서는 장씨 삼형제가, 남쪽에서는 장만성과 마원의, 그리고 파재와 팽탈이 낙양을 움켜쥐는 형세였고, 그 낙양 안에서도 환관들이 내응할 모양새였다. 적어도 군사적으로 한나라를 끝장낼 구도는 이때 이미 완성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한나라를 기세좋게 뒤엎는다 치더라도 교단이 거대한 제국을 통치하고 존속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곧, 각지에서 난립하는 군벌들이나 외부의 이민족들이 활개칠 무대만을 제공하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태평도가 이토록 수백년간 이어져온 제국을 무난히 상속받아 통치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세력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그들은 각종 행정업무와 통치 이데올로기 정당화 작업을 수행하는 지식인 엘리트 계층, 사(士)였다. 마침 그들은 한나라의 권위에 의심을 품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장각의 무리는 바로 여기에서 문제에 봉착한다. 환관과 사족의 협력을 통해 새롭게 장씨의 천하를 세운다면, 그것은 곧 유씨의 한나라와 다를 것이 무어란 말인가? 그렇기에 태평도 교단 내에서는 사족에 대한 강한 경멸이 있었고, 피차 경멸하는 것은 사족들또한 마찬가지였다.

 또한 황로의 도를 숭앙하는 태평도의 사상에는 "도가"의 영향이 짙게 있었다면, 사족들의 사상은 법가와 유가가 연립하는 형세였다. 대체로 지방에서 은거하며 청류를 자청하는 이들은 유가의 경향을 띠었지만, 그들의 청빈함에 이끌린 황제가 그들을 중앙의 관리로 임명하면 곧 현실의 냉혹함을 마주치고는 그렇게 경멸하던 법가적 현실주의자로 순식간에 변모하곤 했다. 

 그렇게 탁이 청을 낳고, 청이 탁을 낳는 중앙 정치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손을 낳을 수 없는 황제의 친위 환관 세력은 언제나 황제와 마찬가지로 예외적 존재, 기이한 존재로 규정되었다. 태평도의 손을 잡은 것이 일군의 환관 세력 뿐이었던 것도 그 기이함에 끌린 덕분이었다. 

 중앙 정계의 관직을 중심으로 청/탁 나뉘어 다투는 것만으로도 머리아픈 사족들에게 있어, 기이한 것은 황제 하나로 족했다. 환관마저 골이 아픈 지경인데 거기에 사이비 종교까지 추가되는 것은 사양이었다. 

 장각의 교세가 공격적으로 확장되고, 그를 따르는 백성들의 기운이 마치 한나라 황실에 대한 충성심마저 능멸할 것처럼 보이자, 자연스레 우려하는 사족들이 생겨났다. 이윽고 그 우려는 중앙 조정에까지 가 닿았으니, 처음으로 황제에게 이 요사스러운 사이비 종교 세력에 대한 건의를 한 사람이 양사(楊賜)와 그의 막료인 유도(劉陶)였다. 장각의 무리들이 갖는 잠재적 위험성을 알면서도 지방의 관리들은 정보를 저들끼리만 공유할 뿐, 중앙 조정에는 보고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황제는 그들의 상소를 무시했다. 사서는 이것을 황제의 멍청함 탓이라 묘사하고 있으나, 한나라의 황제들은 전통적으로 예측불가능한 기이한 존재들이었다. 예측가능한 존재가 되어 똑똑한 사족 계층이 안정적으로 권력을 쌓아나가는 것보다는 그 편이 황제의 권력에 있어 더 유리했다. 즉흥적으로 외척을 숙청하거나 무리지어 위협적으로 몰려다니는 사족 세력의 관직길을 막아버리는 것(당고의 금)도 마찬가지의 일환이었다. 이번에는 황제가  "기이한 쪽"을 편들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황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사태는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저 기이한 것을 좇는 일군의 무리라고 생각했던 사이비 세력이 정말로 황제의 지근거리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하나의 고변이 들어온 것이다. 태평도의 일당이라는 제남사람 당주(唐周)가 상표문을 올려 장각의 음모를 밝혔다. 

 장각이 갑자년(184년) 갑자일(3월 5일)에 군세를 크게 일으켜 반란할 생각을 품었으니, 그의 수하인 마원의 등이 낙양의 환관과 내통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폭로였다. 당시 낙양에 머물고 있던 마원의는 곧바로 체포되어 거열형을 당했고, 그와 내통했다는 환관들도 마찬가지의 운명을 맞았으며, 낙양에 있던 1,000여 명의 태평도 관계자들도 빠짐없이 처형되었다. 
184년 봄의 일이었다. 
 그런데 이는 여러모로 이상한 점이 많은 고변이었다.  무엇보다 후한서 하진열전에 따르면, "마원의의 낙양봉기" 음모를 밝혀낸 것은 하남윤(오늘날로치면 서울특별시장)이자 황제의 외척이었던 하진이라 서술되어있다. 이는 당주의 고변과 하진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었음을 짐작케한다. 뿐만아니라 이 시기를 전후하여 빗발쳤던 태평도 무리에 관한 신하들의 상소문은 사실, 모두 하나같이 환관 세력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신하들은 천하의 재앙이 모두 안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지적하며 태평도에 앞서 환관들 먼저 숙청할 것을, 앞다투어 상소했다. 
 더욱이, 당주의 고변은 몇가지 핵심적인 부분에서 부실했다. 남쪽 땅에서 군세를 이끌고 업현을 치기로 했다는 마원의가 낙양에 머물고 있었다는 사실부터가 그러했다.  "갑자년"에 반란을 일으킨다는 것 자체는 그럴듯하다손 쳐도, "갑자일(음력 3월 5일)"에 반란을 일으킨다는 것도 더더욱 말이 안됐다. 농번기, 그중에서도 이제 막 파종을 할 시기였기 때문이다. 구성원의 대다수가 농민인 태평도가 봄철에 봉기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게다가, 당주의 고변은 봄에 일어났는데, 고변대로라면 반란 시기가 코앞에 있는 그 시점에 마원의는 천하의 반대편에 있을 그의 근거지를 향해, 아직 발도 떼지 못한 상황이었다. 
어쩌면 이는 특정 세력, 특히 하진과 그를 따르는 일부 사족 세력이, 때마침 지방에서 불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태평도 세력과 환관 세력을 기획적으로 엮어, 일부 사실에 과장을 뒤섞고는, 거대한 음모로 부풀린게 아닐까하는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황제는 가족과 같이 생각했던 환관들에게 (보여주기식이라도) 크게 노했고, 제사지낼 말들을 병사들에게 주었으며, 당고의 금령을 풀어 사족들의 손을 (하는 수 없이) 다시 잡았다. 하진을 대장군으로 삼아 낙양을 지키는 임무를 맡겼고, 북중랑장(北中郞將) 노식(盧植), 좌중랑장(左中郞將) 황보숭(皇甫嵩), 우중랑장(右中郞將) 주준(朱雋)에게 군을 나누어 주고는 남북으로 출진시켰다. 

태평도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참고문헌
『典略』『後漢書』『三國志』『資治通鑑』
Kaltenmark, M. (1979). The Ideology of the T"ai-p"ing ching.de Crespigny, R. (2010). Imperial Warlord: A Biography of Cao Cao 155-220 AD. Brill Academic Publishers.de Crespigny, R. (2017). Fire Over Luoyang: A History of the Later Han Dynasty 23-220 AD. (1 ed.) Brill.Loewe, M. (2022). Ways to paradise: the Chinese quest for immortality. Routledge.


*이미 직접 유튜브 영상으로 만든 글이니 퍼가시는 것은 좋지만 영상화하거나 수익창출은 하지말아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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