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9일 12사단 훈련병 수료식 날, 용산역 광장에서 시민 추모분향소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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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군번은 09-76007804입니다. 2009년 2월 9일부터 논산의 육군훈련소 25연대에서 113번 훈련병으로 군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군 생활을 겪은 누구나 그랬듯이, 군대 훈련소는 말 그대로 이세계물 그 자체였습니다.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추위와 배고픔, 고통과 괴로움의 연속이었죠.
그런데 다행히 훈련소에서 만났던 저의 훈련소 소대장님은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참군인이었습니다. 그 분에 대한 썰은 예전에 아래 링크에서 풀었던 적이 있습니다. https://pgr21.com/freedom/90925
한 줄로 요약한다면, 그 분은 식사 시간 때 항상 맨 마지막으로 줄 선 훈련병 뒤에서 남은 밥을 배식받아 드시던 간부였습니다.
그 분이 계셨기에 저는 [충성]의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충성이라는 단어는 충성 忠 자에 이룰 成 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서는 충성을 일컬어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 특히 임금이나 국가에 대한 것을 이른다고 합니다. 제가 육군훈련소에서 배웠던 경례 구호도 충성이었고, 12사단 훈련병이 입대하자마자 제식 훈련에서 배웠을 경례 구호도 충성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임금은 없으니 충성의 의미에서 남은 것은 국가, 그리고 상관에 대한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일 것입니다. 운 좋게도 저는 훈련소 소대장님께서 그 단어의 의미를 솔선수범하여 보여주셨습니다. 상관께서 먼저 부하들에게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을 보여주셨기에 저 또한 경례에 그 뜻을 담을 수 있었지요. 저 분과 함께 전쟁에 나간다면 진심으로 저 분 명령에 따라 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그러나 12사단 훈련병은 이제 갓 제식 훈련을 마쳤을 9일 차에 그 충성이라는 경례를 했을 대상인 중대장에 의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입대한 지 15년이 지났어도 훈련소 시절 기억이 생생합니다. 전투복의 디자인이 개구리에서 디지털로 바뀌었고, 전투모의 모양이 챙모자에서 베레모로 바뀌었을지언정 입대 2주차의 저도, 12사단 훈련병도 똑같이 아직 사회의 물이 다 빠지지 않은 대한민국의 청년이었습니다. 저도 뒤로 돌아, 를 실수해서 조교에게 갈굼을 먹었고, 12사단 훈련병도 경례하는 팔 각도가 이상해서 "엎드려 뻗쳐"를 했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인품이 훌륭한 소대장님을 만나서 살았고, 12사단 훈련병은 그렇지 않은 중대장을 만나 얼차려를 빙자한 고문 끝에 죽었습니다.
입대한 지 9일. 입영장정이 입고 갔던 옷과 소지품이 집에 아직 소포로 도착하지도 않았을 시간. 12사단 훈련병의 부모님께서는 아들의 부고와 시신을 먼저 받게 되셨습니다. 나라 지키러 간 아들이 나라 지키다 죽은 것도 아닌, 교관에 의해 고문을 당하다가 사망했다는 소식과 함께요. 더 슬픈 것은 이 사건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벌되리라는 기대가 없다는 것입니다. 병역 미필 대통령. 전직 대통령 목을 따자며 붕짜자 붕짜를 외치고 초급 간부 시절 휘하 병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의혹을 받는 현직 국방부 장관. 12사단 훈련병 사망 사건 발생 후 보름이 넘어서야 입건하는 경찰에 이르기까지, 공정과 상식으로 이번 사건을 수사하고 책임을 물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믿을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례 구호는 예나 지금이나 충성입니다. 나라는, 상관은 병사에게 정성을 다하지 않는데 병사는 나라에게, 상관에게 정성을 다하랍니다. 비참합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현재 경찰은 해당 중대장과 부중대장을
1. 업무상과실치사(형법 제 268조) - 5년 이하의 금고 혹은 5천만원 이하의 벌금
https://www.law.go.kr/LSW//lsLawLinkInfo.do?lsJoLnkSeq=1000591728&lsId=001692&chrClsCd=010202&print=print
2. 직권남용(형법 제 123조) -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
https://www.law.go.kr/%EB%B2%95%EB%A0%B9/%ED%98%95%EB%B2%95/%EC%A0%9C123%EC%A1%B0
3. 가혹행위(형법 제 125조) - 5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https://www.law.go.kr/LSW//lsLawLinkInfo.do?lsJoLnkSeq=900045102&chrClsCd=010202&lsId=001692&print=print
등으로 입건하여 조사 중이라고 발표하였습니다. 보시다시피 최대 형량이 5년 이하의 징역 혹은 금고형입니다.
흔히 말하는 고문치사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4조의2에 해당하는데요, 이것은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합니다.
https://www.law.go.kr/%EB%B2%95%EB%A0%B9/%ED%8A%B9%EC%A0%95%EB%B2%94%EC%A3%84%EA%B0%80%EC%A4%91%EC%B2%98%EB%B2%8C%EB%93%B1%EC%97%90%EA%B4%80%ED%95%9C%EB%B2%95%EB%A5%A0
군형법도 살펴봤습니다.
https://www.law.go.kr/%EB%B2%95%EB%A0%B9/%EA%B5%B0%ED%98%95%EB%B2%95
이 사건에 해당되는 내용은 제60조의5(직무수행 중인 군인등에 대한 상해치사)가 있는 듯 합니다. 다만 12사단 훈련병이 직무수행 중인 군인인지에 대해서 법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겠습니다. 고문치사도 이번 이슈에 해당이 될지 모르겠어요. 아무쪼록 이번 사건의 가해자가 최고 형량을 선고받아 전군 지휘관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랍니다.
어찌되었건, 이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내일 추모식에 참석하는 것뿐인가 합니다. 누군가는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지요. 고인과 같은 의무를 수행했던 한 사람으로서 이렇게나마 뭐라도 하려 합니다. 12사단 훈련병 추모식은 내일 오전 11시부터 저녁 8시까지 용산역 앞 광장에서 진행됩니다. 저는 초코파이 한 박스 들고 오후 5시쯤 도착할 듯 합니다. 피지알러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석을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의 청년으로서 국방과 병역의 의무를 회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입대했음에도 불구하고 9일 만에 스러진 12사단 훈련병의 명복을 빕니다.
속마음 같아서는 벌점 먹고 비속어 써갈기고 싶네요. 명복은 무슨 놈의 명복입니까. 김훈 작가께서 <죽음의 자리로 또 밥벌이 간다>에서 하신 말씀마따나 명복은 없습니다. 현세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명복을 빈다니, 이 나라 청년 남성들은 명복을 누리려고 군대에 끌려갑니까. 명복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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