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AI시대에도 통역사 역할 분명…기계로 대체될 영역 제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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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순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장 "한국어는 통번역 어려운 고맥락 언어"
"진짜 전문가 되려면 AI 의존 말고 나만의 고유영역 개척해야"
인터뷰하는 곽순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원장
[한국외대 제공]
(서울=연합뉴스) 안정훈 기자 = "기계의 통역이 인간 통역을 가장 빠르게 대체할 수 있는 분야로 의료 분야가 꼽히곤 합니다. 그런데 과연 환자가 자신의 목숨이 달릴 수 있는 중요한 통역에서 기계만을 믿을 수 있을까요?"
곽순례(64)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원장은 18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인공지능(AI)을 통한 통·번역이 대두되고 있는 시대에 "인간 통역사"의 역할은 여전히 대체될 수 없는 전문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중동학회 회장이기도 한 곽 원장은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팔레스타인 등 다수의 중동 국가 정상회담 및 국회의장 간 회의 통역을 수행한 아랍어 전문가다. 올해 2월부터는 국내 통번역 전문가 양성의 산실인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원장을 맡아 후배들을 길러내는 데 힘쓰고 있다.
그는 "한국어의 특징은 고맥락 언어라는 점"이라며 "우리는 일반적으로 대화할 때 주어를 빼서 대화하고 문맥을 통해 이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고맥락 언어는 통번역에서 굉장히 어려운 언어에 속해요. 이러한 언어적 특성 때문에 기계가 처리할 수 있는 영역이 제한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곽 원장은 번역에 대한 책임과 보안을 위해서라도 인간 통역사의 가치는 유효하다고 봤다.
곽 원장은 "우리나라에서 3대 기업 중 한 곳에서 번역을 의뢰받은 적 있었는데, 번역료는 300만원이었는데 번역 내용이 유출될 시 위약금이 10억원이었다"며 "그만큼 비밀 엄수는 통번역계에서 핵심적인 가치"라고 전했다.
AI 번역기에 내용을 올리면 텍스트로 번역 능력을 학습하는 AI 특성상 보안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곽 원장의 설명이다.
곽 원장은 거대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한 챗GPT나 "AI 번역기" 딥엘(DeepL)과 같이 고성능 AI를 기반으로 한 "기계 통역사"들이 대중화되더라도 실력이 탁월한 통역가들은 꾸준히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통역사라는 위치를 발판으로 더 많은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미국 국무부 최초의 소수인종 출신 통역국장을 맡은 이연향 씨를 예시로 꼽았다.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89학번인 이씨는 2000년대 초반부터 국무부 한국어 통역관으로 활동하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비롯해 현재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고위직 통역을 맡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 통역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에는 영어, 불어, 독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아랍어 등 8개 언어 통번역 전공이 개설돼 있다.
지난 4∼5일 이틀간 열린 "한·아프리카 정상회의"에 참여한 17명의 통역사 중 곽 원장을 포함해 모두 14명이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출신이었다고 한다.
곽 원장은 실력 있는 통역사가 되기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AI에 의존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곽 원장은 "번역할 때 아무리 AI를 사용하지 말라고 해도 학생들이 몰래 사용하는 것을 모두 통제할 수는 없다"며 "진짜 전문 통·번역사가 되기 위해선 기계의 도움 없이 문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홀로 책임질 수 있는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단순히 언어에 대한 전문가를 넘어 자신만의 전문 분야를 개척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외국어에만 능통하다고 해서 국제회의 같은 곳에서 통번역가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곽 원장은 "신입생으로 들어오면 통번역에만 너무 몰입하지 말고 의료나 금융, 협상 등 나만의 전문 분야를 틈틈이 공부하라고 이야기하곤 한다"며 "자기에게 맞는 분야에서 고유의 영역을 개척해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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