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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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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790 회 작성일 24-06-15 16:5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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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풀이로 쓰고 있는 글입니다.
진도가 지지부진 하여, 공개된 곳에 올리면 모티베이션이 되지 않을까 하여 올려봅니다.
보든지 말든지 해주십시오.

[씨육수]

-1-

헬스장의 요란한 음악소리는 그의 취향과 맞지 않았다.  
그는 자부심을 가질 만한 실력을 가진 성형외과 의사로, 트렌디한 코성형을 찾는 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존재였다.

두번째 세트, 7 - 8 - 9, 10회. 50키로의 벤치프레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중량, 부상의 우려가 없는 세트 편성.
그는 성실하고 조심스러웠기에, 언제나 그에게 가장 알맞은 운동을 정확히 수행하는 것을
선호하였다.

가장 사람이 뜸한 밤 11시의 헬스장. 시끄러운 음악소리와는 대조적으로 적막한 공간.
그의 바쁜 하루는 언제나 이곳에서 마무리되었고, 그는 이 고독함에 안정감을 느끼곤 했다.
런닝 머신을 탄다. 발랄하지만 시끄러운 여자 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의 손을 거친 환자일지도 모른다.
이 허접한 음악보단 런닝 머신에 설치된 티비를 켜고 이어폰을 끼는 것이 나을 듯 했다.

속도와 경사를 세팅하고, 채널을 뒤적거린다. 악성 재고를 양품인 양 추켜세우는 홈쇼핑 채널과, 좋은일은 결단코 알려주지 않는 뉴스 채널을 뒤로한다.
그는 그에게 특정 방향의 사고를 주입시키는 미디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틱. 틱. 다른 채널. 다른 채널.

"이 씨육수란 것은 말이야, 족발집의 대들보 같은겨."

까무잡잡한 피부의 장년 남성이 말한다.

"아무리 좋은 재료로 만들어도, 씨육수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제대로된 맛이 안 나.
요즘에도 새로 족발집 연다는 사람들이, 몇백만원을 현금으로 싸들고 와서
얻어가려고 한다니깐."

사장을 인터뷰하던 리포터는 그의 말을 듣고, 다소 과잉된 어투로 그의 대응을 물어보았다.

"어떻게 했냐고? 아니, 당연히 돌려보냈지. 우리가 이 육수를 지금 35년째 끓이고 있어. 자식같은 거라니깐?"

- 씨육수.
족발을 끓이고 남은 육수를 덜지 않고, 그대로 끓인다. 다음 족발을 그 육수에 끓이고,
그것을 반복한다. 수년에서 수십년까지 이것을 반복하면 씨육수가 된다.
누군가는 이 비위생적인 과정에 경악할 것이고,
누군가는 더욱 오래된 씨육수로 만든 족발을 찾아 전국곳곳을 돌아다닐 것이다.
오래된 씨육수에서 대장균이 검출되었다는 뉴스야 당연히 있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 집은 물건이 없어 못 파는 맛집이다.

그는 이런 쓸데없는 정보를 좋아했다. 방향성이 없는 정보는 그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았고, 그것을 참고해 결정을 내리는 것은 그 자신의 선택이었으니.
운동을 마무리하고, 따듯한 물에 피로를 씻어내며, 문득 생각한다.

"..씨육수라....".

역시, 조금 역하게 느껴졌다.

-2-

"조금 더 경과를 지켜보실까요? 아니면 복원수술 쪽으로 생각해보시겠어요?"

반대편에 앉아, 의기소침하게 바닥을 쳐다보고 있는 여성에게 물었다.
동그란 얼굴형에 미처 젖살이 빠지지 않아 실제보다 통통해 보이는 듯하다.
수수한 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밝은 갈색의 머리카락이 숙인 그녀의 얼굴을 가렸다.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무릎위에 맞잡아 꼼지락거리는 손. 불신, 초조, 불안.

그녀의 상황에 처한 손님들은 대개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나 역시 의례적으로 대응한다. 위로, 염려, 그리고 약간의 전문가적인 단호함을 섞어
드러낸다. 이 표정을 짓고 있는게 그나마 잽싸게 넘어가는 요령이다.

"...조금 더 상황을 보고싶어요."
짧은 침묵을 깨고 그녀가 말한다.

"염증이 상당히 심해졌어요. 방치할수록 복원수술은 어려워집니다. 괜찮으시겠어요?"
의도적으로 미간을 좁혀 염려를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염증을 완화시킬 항생제 처방을 작성한다.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 역시 어느정도는 짐작하지 않을까.

전체 여성의 20%가 성형수술을 한다.
그 중 약 30%가 코수술을 희망한다.
그 중 약 30%에게 부작용이 발생한다. 변인을 고려해야겠지만.
다소 러프한 계산이다만, 100명의 여성 중 1.8명은 코수술의 부작용을 경험하는 셈이다.
보형물 주위의 염증으로 코의 상피세포가 녹는다. 주변 조직은 단단히 굳어 콧대를 영구적으로 치켜 올린다.
흔히 말하는 "성괴", "돼지코". 주어진 것 이상의 아름다움을 탐한 댓가로는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설마하니 백 명 중 두 명이나 되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되묻고 싶다.
당신의 코가 어느 날 흉측한 돼지코로 바뀐다면 멀쩡히 일상생활이 가능하겠느냐고.
인간의 얼굴에 돼지의 코를 단 그녀들은, 대부분 바깥에 나오는 것을 심히 꺼린다.
어두운 방의 조그만 거울 속, 어떤 화장을 해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욕망의 낙인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세상에서 잊혀져간다.
거리에서 그녀들을 마주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아까의 환자에게로 돌아가보자.
과연 그녀는 이런 부작용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지 몰랐을까.
손가락 몇 번만 까닥거리면 전문지식이 넘실거리게 검색되는 시대이다.
구축코의 원인, 조치,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의 생생한 후기까지도 즉시 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째서 복원수술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두려운 것이다. 어렵게 얻어낸 자신감을, 특출나지도 않은 아름다움을 포기할 수 없다.
언제고 처참히 추락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스스로 선택한다.
그 선택에 나의 책임이 없음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상황이 악화될수록 늘어나는 치료비는 반가운 덤이고.

-3-

내밀한 컴플렉스를 가진 이는 아름답고 당당한 이에게 약하다.
친절하되, 조금은 오만한 것이 좋다. 그것이 가장 설득력 있다.
나 또한 저리 될 수 있으리란 암묵적인 메시지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큰 키에 조막만한 얼굴. 견갑골까지 내려오는 풍성한 검은 머리와 날렵한 맵시.
흔히 단점으로 여겨지는 까무잡잡한 피부조차 그녀에겐 매력을 더해주는 요소일 뿐이다.

나긋나긋하지만 확신에 찬 말들로 시술을 설명하고, 견적에 추가한다. 트리플 마진이 넘어가는 시술을 전례없는 기회로 포장한다.
외모라는 이름의 암묵적 권력이 좁은 유리 파티션을 채우고, 독대한 뱀과 참새는 불공정한 계약에 동의한다.

달리 말하면, 조 실장은 매우 유능한 직원이라는 이야기.

그녀가 맡은 환자들은 아주 높은 확률로 비싼 프로그램에 동의했고, 자연스레 병원 측은 그녀에게 견적 상담 업무를 몰아주었으며, 월급을 상회하는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그러한 상황이 반복되자, 신기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점심 메뉴를 정할때 그녀의 픽으로 선정되는 경우가 많아졌고, 귀찮은 수술실 뒷정리 업무를 맡는 빈도도 줄어들었다.

언젠가 한 번, 그녀보다 경력이 긴 데스크 직원이 그녀에게 사소한 훈계를 한 일이 있었다.
인상적인 것은 다음 날 점심의 일이다.
보통 직원들은 단체로 점심을 주문하거나, 당번을 정해 인근 식당에서 포장된 식사를 받아오곤 하였는데, 둘의 해프닝이 있었던 다음 날,
아주 우연케도 모든 직원들이 밖에 나가 밥을 먹는 것에 뜻이 모였다.
아주 공교롭게도 잠시 화장실에 가기 위해 데스크 직원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데스크 직원은 이직을 통보해왔다.

앞서, 조실장이 수술실 뒷정리 업무에서 차츰 제외되었다고 하였다. 수술실이 스스로 깨끗해질리는 없으니, 그것은 곧 귀찮은 업무를 더 많이 배정받은 누군가가 있었다는 말이다.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한다는 말이 있다.
진정한 실력자는 사소한 일에도 전력을 다한다는 의미의 격언이다.
허나, 세상에서 가장 치밀한 사자라도, 귀찮게 엉기는 파리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전력질주를 하진 않을 것이다. 그저 꼬리를 휘휘 둘러 쫓아내려 하겠지.
눈에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 미생물. 예컨대, 곰벌레 한 마리라면 어떨까.

세상엔 이런 저런 것들이 있는 법이다.
악역이든 주역이든 시원하게 소화해 낼 조 실장이 있고,
‘지나가는 사람3’의 역할을 맡기기조차 시원찮게 느껴지는 정쌤이 있다.
곰벌레의 가장 큰 특징은 어떤 환경에서도 생존해 낸다는 점이다.
150도 이상의 고온, 절대영도에 가까운 저온, 극단적 탈수, 극심한 방사선 노출,
6000기압 이상의 압력. 놀랍지 않은가.

정쌤의 가장 큰 특징은, 그녀에게 아무에게 특징이 없다는 점이다.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은 체형. 평균보다 조금 작은 키. 흐릿한 인상에 안 좋은
의미로 도드라지는 작은 눈. 병원에 나오기 시작한지는 꽤 되었건만, 그녀가
누군가와 즐겁게 어울리는 것은 잘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고독을 자처하는 스타일인 것은 아니다.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었다. 주말에 방영한 연애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에
대한 진지한 토론회에도 한 마디씩 거들었고, 진상 손님들을 비방하는 데에도 끼어들곤
했으니까.

애달픈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언제나 겉도는 인상을 주는 이유를 콕 찝어 무엇이라
이야기하기는 어려웠다.
자신감 없고 작은 목소리 때문이었을지, 언제나 흐름을 반 박자 느리게 따라가는 둔감함 때문이었을지. 그녀가 그저 그저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일지.
중요한 것은, 그녀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다. 딱히 잘 하는 일은 없었지만, 기본적으로 성실했고, 위험을 감지했을 때 입을 꾹 닫고 땅바닥을 바라보고 있는 능력만은 탁월했기에.

-4-

22세 여성. 비염 개선을 위한 비중격 성형. 보형물 삽입 없이, 자가 조직으로만 시술 희망.

내 손에 들려 있는 종이는 그리 이야기하고 있었다. 견적 상담에 앞서 환자가 스스로 작성한 설문지이다. 만성 비염을 치료하고 싶다고 강조하면서도, 미용적인 효과에 은밀한 관심을 드러내는 타입. 노골적으로 성형을 희망하는 부류보다 이런 유형이 더 많다. 자신의 욕망을 수동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들. 마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직접 표현하는 것이 죄라도 된 것 마냥. 이런 이들을 대하는 건 매우 조심스런 일이다. 연약한 배를 보호하기 위해 한껏 웅크린 고슴도치 같다.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조 실장의 손에는 다른 내용의 종이가 들려 있었다. 그녀가 같은 손님과 상담한 후에 작성된 차트지엔, 보형물 삽입을 통해 콧대를 세우고, 두 개의 레이어로 자가 조직을 이식하여 코 끝까지 성형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서명이 적혀있다. 비염 치료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그녀의 수완엔 항상 감탄하고 만다.  

“코끝이네요. 3중 고정 희망하시고... 실장님 수고 많으셨네요.”

  머릿속으로 객단가를 헤아린 후, 진심을 담아 인사를 건넨다. 그녀는 정말이지 소중한 인재다.

“네, 원장님. 진료희망일 확인하시고, 일정 잡아주시면 예약해 놓을게요.”
  
  그녀가 살짝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애교 섞인 목소리지만, 쓸데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은은한 시트러스 향이 난다. 그녀가 걸친 것이니, 나조차도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회사의 향수일 것이다.

  “확인할게요. 더 얘기할게 있나요?”

  대화가 끝났음에도 내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는 그녀에게 묻는다. 그녀는 용건이 끝난 후,
잠시간 자리를 비우지 않고 가만히 상대방을 응시하는 습관이 있다.
  
  “아뇨, 그것만 좀 부탁드릴게요.”
  
  “향수 좋네요. 저번이랑 다른 것 같은데. 잘 어울려요.”

  가벼운 칭찬이 별 일 아니라는 듯, 그녀는 눈웃음으로 답례한 후, 그제야 자리를 비웠다.
  매력적인 이가 자신의 장점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것은 되레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조 실장은 그것을 너무나 잘 안다. 따라서 그녀는 친절하고, 예의바르다. 자신의 의도를 숨기고, 상대를 먼저 배려한다. 화려한 악세사리는 걸치지 않지만, 명품 향수를 뿌린다. 보이지 않는 권위. 그녀의 조용한 시선은, 고슴도치의 숨겨둔 속살을 제도 모르게 드러내게 만들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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