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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들은 우리를 눈송이라고 부른다》 - 쓸데없이 예민한 사람들의 불평이 세상을 진보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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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505 회 작성일 24-06-13 18:0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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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꼰대들은 우리를 눈송이라고 부른다저자 해나 주얼/출판 뿌리와이파리/발매 2024.02.16.

원제: We Need Snowflakes (직역하면, 우리는 눈송이가 필요하다)

저자: 해나 주얼(워싱턴포스트 비디오·대중문화 저널리스트)

책의 목차

서문

서론

제1장 눈송이의 기원

제2장 눈송이는 무엇을 원하는가?

문화전쟁의 박수 위기

오벌린대학 푸드코트의 사건 아닌 사건

미주리대학의 눈보라

예일대학의 대단히 인종주의적인 핼러윈

제3장 표현의 자유와 눈송이

제4장 ‘철회 문화’라는 말은 다시 듣고 싶지 않다

제5장 지난 세대의 ‘강인함’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제6장 농담은 계속해도 되나?

제7장 젠더 패닉

제8장 눈송이는 자본주의에 해롭다

결론

감사의 말

옮긴이 후기

참고문헌

서평

2024년 2월 2일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이 책은 ‘눈송이’를 주제로 삼는다. 눈송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미국에서 “요새 젊은이들을 애지중지 응석받이로 자란 자기집착적이고 유약하고 예민하고 쉽게 질색하는 유리멘탈 MZ로 폄하하는 멸칭”이라고 책 표지에서 설명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눈송이’들의 정치적인 주장을 무시하고 짓밟기 위해 이 용어가 남용되고 있다고 한다. 원래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개인의 가치에 주목하기 위해 아름답게 쓰이던 눈송이라는 용어는, 트럼프 대통령이 상징하는 대안 우파들이 자신들이 반대하는 집단, 특히 ‘요즘 젊은이’들을 폄하하는 용어로 전락하고 말았다.

더욱이, 《바른 마음》으로 화제를 일으킨 조너선 하이트가 그레그 루키아노프와 같이 쓴 《나쁜 교육》에서 젊은이들이 잘못된 양육 때문에 ‘세 가지 비진실’을 굳게 붙들고 있다는 주장을 하면서 눈송이들은 대안 우파뿐만 아니라 주류 좌파들의 비판도 직면하게 되었다.

글쓴이 주얼은 이러한 눈송이의 의미를 혁명적으로 뒤집어버리고자 한다. 그래서 원제가 “우리는 눈송이가 필요하다.”다. 젊은이, 그 중에서도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젊은이들을 무시하고 짓밟아버리기 위한 나쁜 이름인 눈송이의 의미를 빼앗아, 눈송이를 “타인과 공감할 줄 알며 고상하기까지 한 인물”(25p)로 재정의하려는 노력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눈송이는 선하며 정의롭고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진보하게 하는 가능성의 세대로 표현된다.

이 책의 특징은 눈송이라는 용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오히려 좋은 의미로 재정의하려는 데에 있다. 그래서 하이트와 루키아노프가 제시하는 세 가지 비진실, 곧

1.    유약함의 비진실: 죽지 않을 만큼 고된 일은 사람을 더 약하게 한다.

2.    감정적 추론의 비진실: 늘 자신의 느낌을 믿어라.

3.    우리 대 그들의 비진실: 삶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투쟁이다

에 눈송이들이 빠져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중요한 차이점은 그게 비진실이 아니고 진실이라는 데 중점을 맞추는 것이다. 따라서 하이트와 루키아노프와는 달리 주얼의 관점에서 눈송이들의 행동은 정당한 것이 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주얼은 하이트와 루키아노프가 강조하는 인지행동치료와는 달리, 일상생활에서 소수자들이 미처 다수자들의 악의 없이 당하는 미세공격 때문에 흑인의 수명이 백인보다 짧아지는 등 사람들이 자기와 다른 견해에 노출됨으로 말미암아 겪는 실제적인 문제에 주목하게 한다. 미세공격이란 말이 낯설어서 예를 하나 들어 보면, 한국계 미국인에게 누가 “영어 잘 하시네요. 어디서 배우셨어요?”라고 질문한다면 마치 “당신은 미국인이 아니시네요.”를 암시하는 미세공격을 하는 셈이다.

유약함과 감정적 추론의 ‘진실’은 PTSD 치료에서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PTSD 치료를 대놓고, 혹 은연중에 거부하는 대안 우파들은 결코 PTSD를 앓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이트와 루키아노프가 강조하는 인지행동치료는 좀 낫다. 실제 치료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주얼이 지적하는 대로, 그건 의사가 정교하게 행하는 치료지 일상생활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일반인이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PTSD 환자들에게 필요한 또 다른 것은 그들을 향한 감정적 지지고, 눈송이들의 유약함과 감정적 추론의 진실은 그 때문에 PTSD 환자들에게 필요하다. 이와 같은 무조건적 지지와 사랑은 회복탄력성을 단련하는 데에도 중요하다. 그래서 듣기 싫은 말을 적극적으로 거부할 기회를 마련하는 강연 철회나 안전 공간 등이 필요할 수 있다. 회복탄력성은 그저 스트레스 상황에 사람을 노출시킨다고 자연히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회복탄력성이 강인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된 회복탄력성을 갖추지 못한 채 마음 속에 상처를 그저 묻어둔 것에 불과할 수 있다.

그래서 주얼의 말대로 눈송이가 필요하다. 왜 예민하고 화내고 불평하면 안 되는가? 예민하고 화내고 불평하지 않으면 소수자들의 수명이 깎여 나간다는데?

이 책에서는 일반적으로 언론을 통해 잡힌 눈송이들의 이미지가 사실인지를 먼저 묻는다. 기득권층에서 눈송이들의 행동을 왜곡하고 실제보다 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눈송이들은 그저 상처받을 수 있는 소수자들을 지켜주기 위해 몇 가지 행동을 했을 뿐인데 그것을 표현의 자유 침해로 위협하는 가짜 뉴스들이 범람하는 실태를 고발한다. 이 과정에서 눈송이들의 ‘권고’는 갑자기 ‘규제’로 둔갑하기도 한다. 학생들의 요구로 대학에서 강연이 철회되는 횟수가 해를 지날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여러 곳에서 등장하는데, 그게 뭐가 중요한가? 많아야 40회인데? 지금도 대학에서는 십만 가지를 넘는 강연이 행해지고 있고, 그 중에는 대안 우파들의 도발성 강연도 부지기수다.

그래서 언론이 뭐라고 떠들고 호들갑을 부리는 간에, 그 너머 실제로 무엇이 행해지는지를 꿰뚫는 혜안이 필요하다. 그게 있다면 언론의 색안경을 끼고 눈송이들을 쓸데없이 예민하다고 결론짓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그들은 쓸데없이 예민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아직도 사회를 바꾸기에는 덜 예민한 것일지도 모른다.

결론에서 주얼은 눈송이란 말은 현 체제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을 무력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지만, 마침내는 눈송이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고 더 나아지는 세계를 꿈꾸고 있다. “그러지 않다면, 우리는 다 망한 거다.”

주얼이 중간에 고민한 대로, 눈송이는 대안 우파들에게 오히려 더 잘 어울리는 말일지도 모른다. 대안 우파야말로 자신들의 주장이 반대를 받으면 소스라치게 반응하고, "백인들이 역차별받고 있다"는 자신들의 감정에 충실하며, 세상은 대안 우파라는 선과 문화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라는 악으로 나뉘어 있다는 《나쁜 교육》에서 지적하는 비진실들을 충분히 갖추고 있으니까. 그러나 눈송이라는 말이 이런 나쁜 이미지에 갇히는 것을 거부하고, 대안 우파와 비교해 젊고 새로운 좌파들에 있는 긍정적인 면을 강조해 이것으로 눈송이라는 말을 재정의하려는 시도가 새롭다. 이런 노력이 있어야 대안 우파와 젊은 좌파들이 방향만 다를 뿐 "극과 극은 통한다"는 악순환에 갇히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내용에도 비판점은 있다. 첫째는 주얼이 자신이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항상 “최악의 것”으로 단정하고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본인 스스로 하이트와 루키아노프가 눈송이들에 대해 그런 관점으로 본다고 하면서도. 주얼이 보기에는 눈송이들은 절대 선이며 눈송이들에 대항하는 사람들은 반동인데, 이에 대한 근거를 꼼꼼하게 갖추어 놓기보다는 사회 변혁을 이끈 선배들의 사례에 의존하면서 눈송이들 역시 그렇게 되리라고 희망하는 것에 가깝다. 하이트와 루키아노프의 세 가지 비진실에 반박할 때에도, 그 주장 자체를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힌 변형을 반박하고 있다. 예를 들면, 첫번째 비진실 대신, “죽지 않을 만큼 고된 일은 사람을 더 강하게 한다”를 반박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 역시 그 세 가지 비진실을 극단적으로 조작하고 있다. 주얼은 “죽지 않을 만큼 고된 일은 사람을 더 약하게 할 수 있다”라고 썼지만, 미세공격을 절대 금지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죽지 않을 만큼 고된 일은 반드시 사람을 더 약하게 한다”에 가깝다.

둘째는 아직 개념이 정확하게 잡히지 않은 미세공격성에 많이 의존한다는 점이다. 물론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들의 텔로미어가 짧아진다는 것은 훌륭한 근거겠지만, 미세공격성이 과연 소수자들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스트레스와 직접 연결될 수 있는지는 그 고리가 미약하고, 미세공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학술적인 연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주얼은 미세공격이 유발될 가능성이 있는 행동을 최대한 피하라고 하는데 그 결과가 다수자는 항상 죄인의 자리에 서서 반성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결론이다.

셋째는 눈송이식 표현의 자유가 진정한 표현의 자유인지다. 주얼은 표현의 자유가 논쟁 없이 받아들여진 적이 없고, 국가의 검열과 시민의 검열은 같은 선상에서 비교될 수 없다면서 발언 철회, 인터넷 집단 린치 등은 새 시대의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처럼 듣기 싫은 말을 강력히 거부하는 방식으로 표현되는 자유는 자신이 잘못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고칠 수 있는 가능성, 즉 자기교정성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 주얼은 인터넷과 현실에서 온갖 주장을 하는 사람을 다 만날 수 있으니 자기교정성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일까? 그러나 현실의 인터넷은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이 만나서 토론하는 곳이 아니라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끼리 뭉쳐서 한 목소리를 내는 곳으로 쪼개지고 있다.

그렇지만,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이 책은 오히려 눈송이 비판자들이 읽어봐야 한다. 주얼의 독선적인 태도에 반감이 들지 몰라도 그걸 이겨내고 읽어내야 한다. 눈송이는 결코 세상을 망치려고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려고 한다. 오히려 눈송이들이 세상을 망친다고 하는 방식으로, 눈송이 비판자들이 세상을 망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검열을 누가 하는가? 자유를 누가 빼앗는가? 누가 사람들을 착취하는가? 눈송이들인가? 눈송이 비판자들인가?

《나쁜 교육》을 이전에 읽어본 적이 있는 분이라면, 《나쁜 교육》의 메시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추천85 비추천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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