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깔 변(弁)과, 송사할 변(辡)에서 파생된 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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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쉽게 변하지
사람은 쉽게 안 변해
- BIG Naughty, Y0UNG, Ryan S. Jhun 사, IVE 노래, Payback 중
지난 시간에는 변화의 변할 변(變)와 연애의 그리워할 련(戀)에 같이 있는 어지러울 련(䜌) 자를 주제로 다루었다. 그런데 변할 변이 굳이 소리를 䜌에서 가져와야 할까? 음이 "변"인 다른 한자를 써도 되지 않을까?
이 생각은 옛날에도 누군가 한 모양이다. 옛날 춘추전국시대의 유물인 증후을묘에서 발굴된 종에 써진 變 자는 아래와 같이 생겼다.
글자의 왼쪽에 있는 것은 말씀 언(言) 안에 동그라미를 찍은 것으로 소리 음(音)에 해당한다. 오른쪽에 있는 글자는 고깔 변(弁)자로, 지금의 弁과는 조금 다른데 弁에는 다른 형태로 覍이 있기 때문이다. 곧 증후을묘에서는 變을 지금과 같이 䜌+攵으로 나타낸 게 아니라 音+弁으로 나타낸 것이다. 초나라의 다른 유물에서는 䜌을 쓰기도 하기 때문에 초나라에서는 變을 쓰지 않고 音+弁만 쓴 건 아니지만, 어쨌든 변할 변의 음을 䜌 대신 弁으로 쓰기도 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옛날 사람들이 䜌 대신 弁으로 변할 변의 소리를 나타냈다면 지금 變 자가 이토록 복잡하지는 않을 텐데 아쉽다.
고깔 변(弁)에서 음을 가져온 변할 변(音+弁)이 變에 밀려 도태된 것처럼, 弁에서 음을 가져온 다른 한자들도 현대에는 거의 쓰이지 않으며 그나마도 다른 글자의 이체자들이 많다. 그렇지만 현대에 弁은 다른 용도로 많이 쓰이고 있는데, 辨(분별할 변)·辮(땋을 변)·辯(말씀 변)·辦(힘쓸 판)·瓣(꽃잎 판) 등을 약자로 모두 弁으로 쓸 수 있다. 이는 중국이 아니라 일본의 영향으로, 일본에서 辨·辯·瓣의 신자체를 弁로 정하고 辮과 辦이 들어가는 글자는 모두 弁으로 바꿔쓰게 했기 때문이다. 이 다섯 글자는 모두 음이 변이나 판이고 좌우에 辛(매울 신)이 두 개 들어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매울 신 두 개가 들어가 있는 글자는 辡(송사할 변)이라 한다. 이 다섯 글자 모두 辡이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다. 그리고 辡은 한자의 뜻을 구성하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다섯 글자 중에서도 일찍 쓰인 적이 있는 辯과 辨을 살펴보자.
수호지진묘는 1975년 후베이성 윈멍현 수호지에서 발굴된 진나라 시기의 묘로, 이 유적에서 발굴된 죽간에 辛과 辯이 쓰여 있었다. 둘을 비교하면 辯은 辛 두 개와 말씀 언(言)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잘 보인다. 지금은 두 辛 사이에 言을 쓰지만 당시에는 밑에 言을 쓰는 차이가 보인다. 그러나 이미 글자가 많이 상형문자에서는 멀어져서 자원을 찾기 쉽지 않으니 더 예전에 쓰인 辨과 辛자를 살펴보자. 먼저 辛이다.
어떤 물체의 형체를 본뜬 것 같기는 한데 뭘까? 정설은 무언가를 찔러 쪼개는 칼이나 바늘로서 죄인의 머리에 문신을 새기는 형벌용 도구를 가리킨다고 본다. 이에서 죄나 형벌, 또는 형벌을 받으니 괴롭다는 뜻이 파생되었고, 거기에서 다시 맵다, 심하다는 뜻이 파생되었다. 다음은 辨이다.
뭔가 辛 비슷한 글자가 양쪽에 있고 그 사이에 刀(칼 도)나 人(사람 인) 같은 문자가 있다. 그래서 두 辛이 상징하는 두 죄인 사이에서 칼로 나누듯이 죄를 "분별한다", 또는 두 죄인 사이에 있는 한 사람이 죄를 "분별한다"는 데에서 분별하다는 뜻이 나왔다. 이를 바탕으로 辯을 해석해보면, 두 죄인이 송사하면서 서로 "말하다"라는 뜻이 된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辯의 용례 중에 변호사(辯護士)가 있으니, 옛날이나 지금이나 辯은 법정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인가 보다.
2020년에는 왕자양(王子楊)이란 학자가 논문으로 이 통설을 반박하기도 했다. 갑골문과 금문의 辛은 끝이 곧은데 금문의 辨을 구성하는 두 글자는 휘어져 있는 데 주목한 것으로, 이 글자는 辛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辛이 아니며 옥으로 만든 기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辨과 유사한 글자로 班(나눌 반)을 들 수 있다. 이 글자는 두 옥(玉)을 가운데에 있는 칼(刀)로 나눈다는 뜻으로, 辨이 사실은 옥기를 나눈다는 뜻이라면 班과 같은 구성이 되는 것이다. 이 설에 따르면 辡은 종래의 설처럼 두 죄인이 "송사하다"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옥기에서 비롯해 이에서 파생된 辨도 뜻하는 한자가 된다.
辨과 辯은 辡에서 뜻을 가지고 해석할 수 있지만 나머지 한자들에서는 그저 음만 담당한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제 辡 시리즈들을 정리해 보자.
辡(송사할 변)
辡+刀=辨(분별할 변): 변리사(辨理士), 변명(辨明) 등, 어문회 3급
辡+言=辯(말씀 변): 대변인(代辯人), 변호(辯護) 등, 어문회 4급
辡+糸=辮(땋을 변): 변발(辮髮), 급수시험 외
辡+力=辦(힘쓸 판): 판무관(辦務官), 판제(辦濟) 등, 어문회 1급
辡+瓜=瓣(꽃잎/날름 판): 안전판(安全瓣), 판막(瓣膜) 등, 어문회 준특급
이 중 판제란 말이 낯설 수도 있는데, 요즘 흔히 쓰는 말로는 "변제"라 한다. 원래는 판제였는데, 일본에서 辦이 들어가는 한자어를 전부 辨으로 바꾸면서 변제란 말이 새로 생긴 것 같다. 일본에서는 辦이나 辨이나 모두 음이 "벤"이라서 별 탈 없이 바뀔 수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음이 달라서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진 것이다.
마지막으로 辡 시리즈들을 일본에서 왜 弁으로 쓰는지 조금 더 짚어보자. 辡 시리즈에 공통으로 들어 있는 辡이 다음과 같이 弁으로 변할 수 있다(?).
너무 억지 같기도 하고, 중국에서는 이런 식으로 간화자를 만들지 않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辡 시리즈에서 辡 쪽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辦만 간체자에서 초서체를 따라 办으로 간화했을 뿐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도 辡 시리즈들을 초서로 쓰면 거의 辡만 남고 중간 부분은 뭉그러져서 거의 구분하기 어렵게 되는 건 매한가지다.
물론 원래의 고깔 변(弁)에다가 辡 시리즈 다섯 글자를 합해서 여섯 글자를 하나로 통일하다 보니 헷갈릴 우려는 있지만 전혀 근거 없는 억지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요약
弁(고깔 변)은 일본에서 辡(송사할 변)이 들어가는 辯(말씀 변)·辨(분별할 변)·辮(땋을 변)·瓣(꽃잎/날름 판)·辦(힘쓸 판)을 대신할 수 있다.
辡(송사할 변)은 辛이 상징하는 두 죄인이 송사하는 것을 가리키며, 辨과 辯도 이에서 뜻이 비롯했다.
辡에서 辯·辨·辮·瓣·辦이 파생되어, "변" 또는 "판" 음을 나타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