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퇴직연금 20년] ②"법정연금 걸맞게 퇴직연금 운용도 공적 성격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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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자 "정보 부족" 문제 해결하고, "규모의 경제" 이익 실현할 수 있게 만들어야
가입자 대신해 적립금 투자 관리하는 "기금형 중개조직" 도입해야
퇴직연금(PG)
[제작 이태호] 사진합성, 일러스트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우리나라의 퇴직연금은 사용자에게 보험료 납부 의무를 부과하는 법정 연금이다. 사실상 국민연금과 비슷한 "준(準) 공적연금"이다. 퇴직연금이 발전한 서구 국가 대부분이 산업별 노동조합과 산업별 고용주 단체가 단체협약에 근거해서 퇴직연금을 운영하는 등 의외로 법제화되어 있지 않은 것과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근로기준법에 따라 사업주는 1년 이상 고용한 노동자 월 소득의 8.33%를 외부 민간 금융회사에 퇴직연금으로 적립해놓아야 한다.
이처럼 정부는 노동자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법에 따라 무조건 퇴직연금에 가입하도록 강제해놓았다. 이에 반해 가입자 각자에게 투자책임을 맡기는 등 관리 운용 측면에서는 거의 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다.
퇴직연금 운용에서도 공적인 성격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오는 까닭이다.
실제로 21대 국회 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가 시민대표단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절반 가까운 46.4%가 퇴직금(퇴직연금) 일부를 별도 기금으로 적립·운용해 연금으로 받도록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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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세종로사거리 출근길 시민들
◇ 평균 이상 월급쟁이들, 국민연금에 필적하거나 더 많이 퇴직연금 보험료 내는데…
현재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9%이다. 직장인은 회사와 반반씩 낸다.
게다가 국민연금에는 소득 상한이 있다. 2023년 기준으로 국민연금 소득 상한은 월 소득 590만원이다. 따라서 월 590만원 이상, 연봉으로 따지면 7천80만원 이상의 급여를 받는 근로자는 모두 동일하게 월 53만1천원(590만원×9%)의 보험료를 낸다. 근로자 본인은 보험료의 절반을 짊어지니 국민연금 보험료를 가장 많이 내는 근로자는 월 26만5천500만원을 부담한다. 대기업 회장이나 약 7천만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과장급 직원이나 똑같다.
이런 소득 상한으로 월 급여 900만원 이상의 직장인의 경우 실제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5.9%에 그친다. 퇴직연금보다 훨씬 낮다.
이에 반해 퇴직연금은 소득 상한이 없다. 본인 소득의 8.33%를 무조건 적립하게 된다.
따라서 웬만한 대한민국 월급쟁이들은 국민연금에 맞먹는 혹은 그보다 더 많은 금액의 보험료를 퇴직연금에 내는 셈이다.
대략 본인의 연봉이 7천500만원이 넘는다면 국민연금보다 퇴직연금 보험료를 더 많이 납입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도 퇴직연금에 대한 관심이 턱없이 낮다. 과거 퇴직금처럼 퇴직연금을 장기투자 자산이 아닌, 월급에서 일정 부분을 적립해뒀다가 퇴직할 때 받는 "목돈" 정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 직장인은 민간 금융사들에 맡긴 퇴직연금이 부실하게 운용되고, 수익률이 형편없는데도 항의하지 않는다. 강제 가입이어서 탈퇴도 못 해 오히려 가입자는 늘어난다.
퇴직연금 활성화를 위한 IRP 프로젝트 추진 업무 협약식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20일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퇴직연금 활성화를 위한 IRP 프로젝트 추진 업무 협약식에서 참석자들이 협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2023.9.20 [email protected]
◇ 국민연금처럼 가입자 대신해 적립금 투자 관리하는 "기금형 중개조직" 도입해야
퇴직연금에는 확정급여형(DB; Defined Benefit)과 확정기여형(DC; Defined Contribution)이 있다. 회사에 따라 둘 중 하나를 택하거나 둘을 혼합한다.
둘 다 고용주인 회사가 퇴직연금 사업자(민간 금융기관)에게 다달이 보험료를 내서 적립하는 것은 같지만, 운용 결과를 누구 책임지느냐에 따라 갈린다.
DB형은 회사가 민간 금융기관과 "계약"을 통해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하는 것으로, 운용책임을 회사가 지기에 운용실적에 따라 회사의 퇴직급여 지급 부담금이 달라진다.
노동자는 퇴직 때 개인의 급여와 근무 기간 등에 따라 사전에 확정된 퇴직급여를 받을 뿐이어서 수익률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퇴직금 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DC형은 개인이 민간 금융기관(퇴직연금 사업자)과 "계약"해 직접 투자상품을 선택하고 운용하며, 회사는 해마다 노동자의 퇴직연금 계좌에 연간 임금의 1/12 이상을 부담금으로 넣어주기만 한다. 각 개인이 투자상품을 정하는 만큼 운용실적에 따라 같은 급여를 받는 노동자라도 최종 퇴직연금 금액은 달라진다.
DC형은 개인이 운용하는 만큼 비교적 자율성이 높아서 법으로 정한 사유에 따라 중도 인출이 가능하고 부담금을 추가 납부할 수 있다.
반면 DB형은 중도 인출이 불가능하고 법정 사유에 한정해 담보대출만 할 수 있다.
IRP(개인형 퇴직연금, Individual Retirement Pension)는 퇴직 또는 이직으로 수령한 퇴직급여를 보관, 운용할 수 있는 계좌다. 노동자가 회사를 그만두면 퇴직연금 적립금이 IRP로 옮겨진다. 그래서 퇴직연금을 수령하려면 IRP 계좌를 만들어야 한다.
IRP는 DC형과 똑같이 개인이 각자 선택에 따라 계좌에 들어있는 적립금을 운용할 수 있고 비과세 혜택도 주어진다.
문제는 투자 전문가에게 투자를 일임하는 국민연금과 달리, DB형이든 DC형이든 퇴직연금 운용과정에서는 투자 정보가 부족한 가입자(회사 혹은 근로자 개인)가 민간 금융기관과 계약해서 스스로 다양한 투자상품 중에서 어디에 투자할지를 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 보니 정보의 홍수 속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헤매기 마련이다. 위험성과 변동성 높은 실적 배당형 상품에 투자했다가 자칫 원금마저 까먹을 위험 때문에 대부분은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골라서 장기간 방치해놓기 일쑤다. 수익률이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우리나라 퇴직연금 실정과는 달리 퇴직연금이 발달한 다른 국가들은 가입자를 대신해서 적립금을 관리하고 투자를 결정하는, 전문성을 갖춘 별도의 "중개 조직"이 있다.
이처럼 전문가로 구성된 중개 조직이 가입자를 대신해서 적립금 관리·운용을 대리하면서 퇴직연금 사업자(민간 금융기관)를 상대하는 것을 "기금형"이라고 하고, 중개 조직을 거치지 않고 가입자가 직접 퇴직연금 사업자를 상대해서 투자상품을 선택하는 것을 "계약형"이라고 한다.
다른 나라 퇴직연금은 기금형만 있거나 기금형과 계약형이 모두 있는데, 둘 다 있는 경우에도 기금형이 더 많다.
근로자 일반을 대상으로 하는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국가치고 기금형이 없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 때문에 현재 민간 금융기관만 사업자로 참여하고 있는 국내 퇴직연금 시장에 국민연금공단 같은 공공기관이 기금형 사업자로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국민연금공단 내부에 국민연금과 별도로 퇴직연금 기금운용본부를 설치해서 집합적으로 기금을 운용하게 함으로써 가입자의 정보 부족 문제를 해소하고 투자과정에서 규모의 경제 이익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단체 "내가만드는복지국가"의 오건호 정책위원장은 "퇴직연금이 노후 대비 자산으로 자리매김하려면 납입금이 차곡차곡 쌓여서 적립금이 불어나야 한다"며 "이를 위해 퇴직연금 운용을 국민연금공단에도 맡길 수 있게 하면 운용 수수료도 낮추고 수익률을 훨씬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도 "퇴직연금은 가입 여부가 자유로운 사적연금이 아니라 공적 목적을 지닌 제도로, 그런 면에서 국민연금공단이나 근로복지공단 등 공공기관이 적립금 운용에 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국민연금공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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