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친환경 제품은 사치?…고물가에 위축되는 '착한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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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생산 공산품보다 배 이상 비싸기도…판매 상점들도 한숨
대나무 칫솔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정진 기자 = 직장인 박모(30)씨는 최근 온라인으로 장을 보다 평소와 달리 친환경 세제가 아닌 일반 세제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박씨는 2021년 자취를 시작한 뒤로 생분해 수세미, 샴푸바 등 친환경 제품을 사용해왔지만, 요즘엔 고물가로 인해 이런 제품들이 특히 부담스럽게 느껴진다고 한다. 고민 끝에 일반 세제를 선택한 덕분에 박씨는 몇천원을 아낄 수 있었다.
지속되는 고물가에 박씨처럼 "착한 소비"를 망설이는 이들이 늘고 있다.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는 제품이나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착한 소비" 제품의 경우 대량 생산되는 공산품보다 평균 가격이 많게는 배 이상 비싸기 때문이다.
직장인 함모(34)씨는 "전반적인 생활물가가 올라가면서 제품이 얼마나 환경친화적인지보다는 가격이 얼마나 저렴한지를 보게 된다"며 "다시 공산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
5년째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브랜드에서 샴푸·샤워젤 등 샤워용품, 화장품을 구입해 써왔다는 직장인 이모(29)씨도 최근 가격이 저렴한 공산품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가 평소 사용하는 브랜드의 경우 100g짜리 샴푸 1개가 1만9천∼2만6천원이다. 편의점이나 마트 등에서 판매되는 일반 샴푸 650∼750㎖ 1개가 평균 6천∼8천원대인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쓰레기가 배출되지 않는 샴푸바의 경우에도 1개월 정도 쓸 수 있는 양이 평균 1만원 내외로 가격대가 높은 편이다.
이씨는 "물가가 너무 올라 소비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해당 브랜드 제품을 계속 사서 쓰는 게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로 웨이스트 상점 '알맹상점'
[촬영 김정진]
친환경 제품을 판매하는 "제로 웨이스트"(zero-waste) 상점들도 덩달아 한숨이 깊어졌다.
제로 웨이스트란 자원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재사용이 가능한 제품을 사용하거나 포장지 등 폐기물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재활용하는 환경 운동이다.
2020년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문을 연 "알맹상점"의 이주은 공동대표는 "지난해 여름쯤부터 다른 제로 웨이스트 상점들의 폐업 소식을 자주 듣고 있다"며 "체감상 전국에 있던 상점의 30%는 사라진 것 같다"고 상황을 전했다.
그는 "저희도 코로나19 이후로 큰 폭은 아니지만 매출이 줄었다"면서도 "친환경 제품은 사용하는 분들의 충성도가 높은 편이기 때문에 고물가 상황에서도 환경을 생각하는 손님은 여전히 많이 있다"고 했다.
지난달 31일 오후 7시께 알맹상점에는 손님 7∼8명이 버려진 맥주병으로 만든 컵, 폐현수막을 재활용해 만든 봉투 등 상품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직장인 성모(39)씨는 "10년 전 제로 웨이스트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고 5년 전부터 친환경 소비를 실천하려 노력 중이다. 물가가 높아져도 최대한 지속해 나가려 한다"며 웃어 보였다.
이 대표는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는) 처음이 어렵지 한 번만 해보면 생각보다 괜찮다는 걸 알게 된다"며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일단 용기를 내보면 내가 덜 소비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어떤 용기를 내면 더 환경에 무해하게 살 수 있을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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