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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시간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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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567 회 작성일 24-06-01 20: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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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꽤 오랫동안 "삶이 너무 재미가 없다"라는 인생틀 안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사실 30대가 되면 누구나 으레 느끼곤 하는 생각이긴 합니다만, 저는 조금 더 나아가서 "너무 재미가 없기 때문에 이 삶은 무가치하다"는 판단에 이르러 있었습니다.

그 말이 무슨 소리인고 하니, 제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효용의 손실 -- 만원 지하철을 타는 것부터 소개팅 나가서 까이는 것 등 매우 매우 사소하지만 분명한 마이너스 효용 -- 이 분명히 아무리 작아도 존재하는데, 만약 제가 삶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효용이 "0" 이라면 저는 제 삶을 영위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없겠지요.

위와 같은 사고를 고려한지는 수 년이 훌쩍 넘었지만, "내가 삶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효용은 최대 0 이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한 것은 올해 초부터였습니다. 안락사나 다른 작은 고통의 선택지가 있었더라면 서슴없이 골랐을 정도로, 삶이 전혀 힘들지 않았지만 삶은 정말 끔찍하게 재미가 없어서 이 이상은 즐기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돈과 시간으로 행복을 사는 도전"을 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왜, 항상 하는 말이 있잖아요? 대학생은 시간이 있지만 돈이 없다, 직장인은 돈이 없지만 시간이 없다. 그럼 돈과 시간을 모두 가지게 된다면 행복해지지 않을까?

저는 소비벽이 약한 편이라 (엄밀히 말하면 돈을 아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굉장히 귀찮아해서 모조리 정가를 주고 구매하지만, 애초에 사고 싶은 물건이 없는 타입) 사실 돈을 버는 것으로는 행복을 누릴 수 없으니 "돈과 시간"을 같이 소비하면 무엇인가 될지도 모른다는 안일한 생각이었죠.

보다 절박하게 말하면 이러다 갑자기 충동적으로 삶을 끝 맺게 될 수도 있으니, 그 전에 하고 싶은 건 다 해보자라는 생각에 가까웠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회사에 휴직계를 제출하고, 그간 모아둔 돈을 마음껏 소비하면서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말 그대로 돈지랄이라고 할만한 것들도 종종 해보았는데, 여행간다고 3박4일로 숙소를 잡아놓고 막상 가니 귀찮다고 1박만 묵고 그냥 서울로 도로 와버린다던가, 비행기를 탈 때 가격을 두 배 더 주고 아시아나를 탄다던가, 읽지도 않을 책을 10권씩 사기도 했죠.

시간도 원없이 날려보았습니다. 일주일 동안 외출한번 안하고 매일 잠만 늘어지게 자고, 유투브 잠깐 보고 다시 잠드는 일상을 반복해보기도 하고, 그 외의 날들도 "건설적인" 일은 없이 카페가서 폰겜하고, 집 와서는 스팀겜이나 하면서 지냈죠.

몇 달 간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심리상담도 비싸게 한번 받았고, 해외 여행도 여러 번 갔고 (재미없어서 숙소도 버리고 일찍 돌아왔지만), 필요 없는 물품들도 많이 사고, 또 거기에 원래라면 받았을 월급을 받지 않고 지냈으니 이것도 지출으로 치면 매 달 천만원 이상을 순지출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었던 셈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이 "돈과 시간으로 행복을 사는 기간"에 저는 매달 천만원을 써서 얼마만큼의 효용을 얻은 셈이죠.





그렇게 저는 돈을 쓰고 싶은 만큼 쓰고, 시간을 쓰고 싶은 만큼 썼지만, 이 기간 제가 얻은 효용이 천만원의 값어치를 하는 것인가? 이런 삶이라면, 나는 여느 하루를 수만 개로 확장하고 싶은가? 라는 물음에는 부정적인 답변을 제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분명 매일 늦잠자는 생활이 죽을만큼 싫지는 않았지만, 원래 출근하면서도 스트레스를 별로 받지 않았고 -- 애초에 시작하게 된 계기가 일에 지쳐서가 아니라 삶이 재미없어서니까 -- 이 실험 생활 기간에 제가 받은 효용은 그냥저냥 버틸만은 한데 적극적으로 바랄만한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이죠.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살았는데 어떻게 재미가 없을 수도 있을까? 그 해답은 과거 상담사 분이 이미 제공해주었습니다. 다수의 검사와 상담을 통해 여러 진단을 받았는데, 그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제가 감정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뒤떨어진다는 점이었어요.
그러니까, 단순히 매우 약한 공감 능력(예를 들면 이태원 참사라거나, 주변인 누군가가 돌아가셨을 때 하나도 슬프지 않지만 슬퍼해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슬퍼하는 척 하는 것들)을 떠나서, 제가 느끼는 감정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에요.
정말 예시를 위한 예시로는, 만약 제가 왼쪽 갈비뼈가 찌르르하고 눈 아래가 뜨거워지고, 목이 메이는 감정을 느낀다면, "나는 지금 슬프구나"하고 인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은 슬픔을 느껴야 마땅한 상황이니 지금 나는 슬플 것이다"라고 추론해서 이름표를 붙인다는 얘기죠.
그런데 감정이란 게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감정만 느끼리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사람마다 당연히 느끼는 감정이 다를텐데요. 그러면 저는 이제 현재의 상황에 감정의 분류를 끼워맞추기 위해 실제 제가 느끼는 감정과 무관한 딱지를 찾게 됩니다. 이건 죄책감이라고 하자. 하지만 나중에 긴 대화를 통해 이해해보니 그 감정은 죄책감이 아니라 아쉬움이었더라고요.




제가 정말 느끼고 있는 감정조차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 수나 있을까요. 제가 바라는 대로 생활한다고 해서 그게 효용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자명했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절대적인 가치 척도를 품고 살아간다면 간편하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죠. 하물며 감정조차 모르는 제가 제 잣대를 여기저기 들이대봤자 무엇이 제가 진정 바라는 것인지 알기란 요원했지요.
그래서 그간 저는 이해하기 쉽고, 남들이 수치화해둔 행복지수를 좇았습니다. 그게 연봉이건, 3대 중량이건, 게임 티어건, 하다못해 인간관계에서도 사람들을 이해하기가 몹시 어려우니 기계적으로 "이 사람은 1달 간 몇 번 연락한다" 식으로 분류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련의 행동들은, 뭐 게임과 운동은 나름 즐거울 때도 종종 있었습니다만, 결국 삶의 동기를 부여하는 데에는 실패한 것 같습니다.




Pixar
Your "purposes." Your "meanings of life." So basic.

사실 그냥 살아가는 거지, 효용과 동기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삶을 어떠한 방식이건 찬미할 수만 있다면, 제가 무엇을 하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겠죠.
그런데, 삶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는 능력이, 왠지 저한테는 조금 부족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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