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에 대한 일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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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로 쓰려다가 너무 길어졌네요. 글로 올립니다.
세계화에 대해 일반론으로 저는 이렇게 봅니다. 첫째로 세계화는 전세계의 부를 증가시킨다고 봅니다. 실질적인 부를 놓고 볼 때, 그렇습니다. 둘째로 세계화는 평화를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이유는 세계화를 통해 정보가 흐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경제가 엮여 있어서, 다른 나라가 타격을 입으면, 나 또한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경제적 이익에 따라 타국에 호의를 갖는 사람들이 일부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부를 증가시키고 평화를 만드는게 반드시 그런 건 아닐 것입니다. 기본적인 경향성이 그렇다는 것이고, 다른 요인들도 작용하기 때문에 개별판단할 일이고, 세계화가 잘 안 되는 어떤 장애물이나 위험요소들이 있을 때 오히려 부가 감소하고 평화를 해칠 수도 있는 거라 봅니다. 마치 운동을 하면 건강해지는게 기본적인 경향성이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닌 것처럼요.
셋째로 세계화를 "공산주의"와 관련지어 생각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회주의이지만, 공산주의도 그중 일종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렇습니다. 마르크스 공산주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세계주의인 걸로 압니다. 즉 독일 노동자가 아니라, 유럽 노동자를 가리키는 것이며, 나아가 세계 노동자를 가리키는 거란 거죠. 실제 역사는 국가주의적 공산주의였지만, 이념적 지향성은 세계주의적 공산주의라는 것입니다. 더 일반적으로, 사회주의란 것도 국가주의가 아니라, 세계주의를 지향하는 수가 있는 거라 봅니다. 미국을 놓고 보면, 공화당과 민주당으로 나눈다고 할 때, 민주당을 세계주의에 더 가깝다고 생각할 수 있겠고요. "인권"이나 "환경"이란 것도 생각해보면, 그건 세계주의적 성격을 갖게 되기 쉬운 거라 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공산주의가 아니더라도, 세계주의가 되면, 평등을 향해 나아가는 면이 있게 되는 거라 봅니다. 한 국가를 놓고 보면 양극화이지만, 전세계를 놓고 보면 평등에 가까워지는 면이 있는 거라 봅니다. 무역으로 인해 가난한 나라의 노동력이 쓰임을 받고, 그들의 부를 늘리게 된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심지어 외국에서 자본 투자가 이뤄져서 그 빈국의 노동력을 이용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를테면 베트남은 경제성장을 했고, 그것은 세계화 덕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선진국, 그 한 국가를 놓고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건 단순하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선진국의 노동자가 베트남의 노동자와 임금이 유사해지는 것, 그것이 세계화입니다. 그리고 평등 즉 평평해지는 것이지요.] 만약에 그 유사한 임금을 선진국 노동자가 거부한다면, 그 노동자는 실업자가 됩니다. 선진국 노동자는 선진국에 살기 때문에, 더 높은 물가를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트남 노동자보다도 불리한 면이 있습니다. 물론 좋은 인프라로부터 혜택도 얻지만, 선진국의 노동이 전반적으로 더 비싸기 때문에 그로인해 더 높은 물가가 됩니다. 그리고 선진국에서 잘 팔리는 제품이나 서비스라는게 상대적으로 더 고급화되어 있기 때문에도 생활 비용이 증가합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걸 떠나서, 단순하게 말하자면, 선진국의 서민 노동자들이 베트남 노동자와 임금이 비슷해지는 것, 그것이 세계화의 의미인 거라 볼 수 있고, 그렇다면 당연히 반발이 일어나기 쉬운 거라 봅니다. 이 임금이 비슷해지는 경향을 막는 방법 중 하나가 관세겠지요. 즉 세계화에 역행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이민이란 것도, 이민을 마치 전세계가 한 국가인 것처럼, 그렇게 받아들이면, 그것도 평등을 향한 거라 봅니다. 소득이 비슷해지는 거죠.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미국이나 유럽으로 몰려들면, 결국 선진국의 서민들과 소득이 유사해지는 거라 할 수 있습니다.
넷째로 매우 중요한 것인데, 세계화는 경쟁을 늘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화가 아니었다면, 한 국가 내에서 "독과점"을 했을 만한 산업인데, 세계화로 인해 경쟁을 하게 되는 수가 있는 것입니다. 폐쇄를 해놓고 국가 내에서 독과점을 하면, 그러한 기업은 폭리를 취할 수 있습니다. 가격을 높여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사야 하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그 독과점 기업이 기술개발을 하지도 않고 서비스 수준을 높이지도 않아도, 사람들은 사야 합니다. 즉 어느 기업으로 과도히 분배가 이뤄지고, 그 기업이 실력도 키우지 않고 효율도 높이지 않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와 결탁하기도 쉬울 것입니다. 결국 국가내에서만 해결하면 될 일이기 때문에, 부정부패가 일어나는 것이죠. 반면에 세계화는 이러한 것을 정화시키는 경향이 있는 거라 봅니다. 국내에서 독과점을 하지 못합니다. 국내시장이라면 약간의 유리함을 갖고 있긴 하지만, 아무튼 외국의 제품/서비스와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앞서 공산주의가 이념적으로 세계화를 지향한다고 이야기했는데, 마찬가지로 경제적 자유주의자들도 세계화를 지향하게 되는 것은 세계화가 경쟁을 늘리고 독과점을 줄이기 때문이라 봅니다.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는 그 반대일 수 있는 것이겠고요.
세계화는 전체 부를 증가시키고, 평화를 향하는 경향이 있고, 경제적 평등 즉 전세계 사람들의 소득을 비슷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고, 독과점을 없애고 경쟁을 늘려서 보다 자유시장에 가깝게 만들고 그에따라 실력은 늘고 부정부패는 줄어드는 경향이 있는 거라 봅니다. 임금소득만 그런게 아니라, 자본소득도 그렇다고 봅니다. 자본시장이 세계화로 개방되어 있으면, 자본수익률이 유사해지는 경향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개방이 안 되어 있고, 오직 자기 나라에만 자본을 쓸 수 있다면, 국가간 자본수익률 격차는 커지기 쉽겠죠.
세계화에 역행하는 것, 탈세계화는 이 반대의 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이 큰 거라 봅니다. 전체 부를 감소시키고, 평화에 역행하고, 선진국 노동자와 개도국 노동자의 소득 격차를 키우고, 경쟁이 줄어들고 독과점으로 실력도 없으면서 많이 분배받는 안일한 기업들이 늘어나기 쉬운 거라 봅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이야기할 것은 도덕입니다. 편의상 환경도 도덕에 포함시켜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세계화로 인해 부가 늘어나고, 그로인해 이로움을 누리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사람들은 그 다음에 어떻게 하는가 하면, 생활 수준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서, 공동체에 더 높은 도덕을 요구할 가능성이 큰 거라 봅니다. 도덕이란 많은 경우 부와 관련되어 있다고 봅니다. 가난하면 챙기지 못할 도덕이 있는 거란 거죠. 부유하면 챙길 수 있는 도덕이 있는 거란 거죠. 도덕이란 부가 증가하면, 더 높은 수준을 추구할 수 있게 되는 거라 봅니다. 그런데 그러한 도덕 중 일부는 국가를 매개로 하지 않더라도, 개인적으로 추구할 수 있습니다. 시장에서 유기농 채소를 구입하면 됩니다. 돈을 더 줘야 하는데 여유가 있으니 괜찮습니다. 시장에서 공정무역을 통한 상품을 구입하면 됩니다. 그 시장에서 도덕을 구입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부족하고, 어떤 도덕은 국가 규제를 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도덕 수준을 높인다는게 곧, "비용 증가"를 의미하게 되는 거라 봅니다. 이제는 개인 돈을 써서 도덕을 구매하는게 아니라, 공동체의 돈을 써서 도덕을 구매하는게 됩니다. 정부가 직접 돈을 지불하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은 정부는 그저 규제를 할 뿐이고, 시장에서 그 비용을 감당해야 합니다. 가격이 높아지는 것이지요. 그렇게 높아진 가격을 "서민"도 구매해야만 합니다. 도덕, 안전, 환경 규제를 하면, 기업들은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인력을 더 쓰거나, 재료비를 늘리거나 등을 하게 되는데, 그로인해 상품 가격이 상승합니다. 그 비싼 상품을 서민도 구입해야 합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듯 세계화는 선진국의 서민 노동자와 개도국의 노동자의 소득이 비슷해지게 만듭니다. 즉 안 그래도 세계화로 인해 경제적으로 더 열악해지는데(혹은 더 위험해지는데), 여기에 도덕에 의한 비용 증가까지 강제로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한 비용 증가는 명시적인 것보다, 암묵적으로 은밀하게 이뤄지기 쉬운 것이고요. 여기서 터져나오는게 탈세계화인 것인 거라 봅니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탈도덕화". [탈세계화와 탈도덕화]가 동반되기 쉬운 것이고, 그로인한 정치 정당의 움직임 중 일부를 가리켜서 극우라 말하게 되기 쉬운 거라 봅니다. 기후변화도 도덕이라 해석할 수 있다고 봅니다. 넓은 의미로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탈탄소 기후규제를 하지 않고 화석연료쓰겠다는 것은 단순하게 말해 "탈도덕화"라 할 수 있습니다. 소위 친환경으로 했다면,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고 그럴만할 것입니다. 그러나 서민들은 그게 안 좋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유가 너무 없으니까요. 그런데 유기농 채소 구입하듯, 개별 구입하는거라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국가를 통해 모두 일괄적으로 규제를 하는 식이라면, 서민들도 그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것은 고소득 부유층의 경우입니다. 세계화로 인해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진 사람들이 도덕을 추구하는 이유 중 일부는 부유층에 대한 반감에 있다고 봅니다. 즉 도덕적 우월감을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에 비해 내가 재산과 소득이 적지만, 그래도 나는 도덕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야라는 정체성과 자존감을 원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부유층 중에도 세계화로 인해 많은 이득을 챙기는 사람들이 많은 거라 봅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도 그러한 도덕을 충족하면서, 혹은 동의하고 지지하고 지원하면서, 힘을 합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힘을 합치는 이유는 도덕 때문이 아니라, 세계화로인한 경제적 이득 때문인 것이지요.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볼 때에는요. 그들은 도덕적 우월감을 필요로 하는 자기보다 더 상류의 사람들이 없거나 적기 때문에, 그들이 도덕을 추구할 개연성은 낮은 거라 봅니다. 대중과 접점이 많고 대중으로부터 평판을 갈망하는 어떤 명예욕이나 혹은 인류를 향한 선한 욕구가 자아에 부착되어 있는 일부를 제외하곤 말이죠. 그들 부유층은 세계화가 자신에게 경제적으로 이롭기 때문에 중류층 내지 중산층과 도덕화에 힘을 합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일부 부유층은 세계화를 통해 이득을 별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탈세계화를 해야 국내에서 독과점을 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일 수 있고, 그러면 그들은 탈세계화 ・ 탈도덕화를 하려는 서민들과 힘을 합치게 될 수 있는 거라 봅니다. 여기서 일론 머스크는 예외라 봐야겠죠. 그는 세계화를 통해 커다란 이로움을 얻는 인물이니, 원래 민주당이어야 합니다. 그는 한편으로는 도덕화에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트럼프와 협력하여 국가정책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어올려는 경제적 유인도 생긴 거라 이해합니다. 지금은 사이 좋아보이지만, 갈등을 겪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얘기인데, 빼먹은 걸 덧붙이자면, 도덕화라는 것은 "관료주의"에 친하다는 것입니다. 시장에서 유기농 채소를 사는건 관료주의와 별 관련은 없지만, 그러나 많은 도덕은 결국 관료를 통해 전체에 강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정부를 놓고 볼 때에도 그렇고, 기업을 놓고 볼 때에도 그렇고, 대학을 놓고 볼 때에도 그렇고, 어딜 가나 도덕화는 관료주의를 자극하고 강화하는 경향이 있는 거라 봅니다. 그런데 바로 그 관료주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라 봅니다. 경제와 무관한 것에 있어서도 관료주의를 싫어하는 자유주의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정치적 자유주의자, 문화적 자유주의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도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에 손을 들어줬을 가능성이 큰 거라 봅니다. 이상하죠. 민주당이 리버럴이고 리버럴이 자유주의를 의미하는 것인데, 거꾸로 민주당이 관료주의가 되어 규제를 늘어놓는다는게 말이죠. 이름은 껍데기일 뿐, 실질을 놓고 세상 돌아가는 걸 봐야 한다고 봅니다. 그들이 도덕화에 힘을 쓰는 이유 중 하나가 상류층과 비교할 때의 도덕적 우월감 때문이라 했는데, 그뿐만은 아닙니다. 또다른 이유는 결국 서민들 중 일부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인 것이지요. 그래서 과반을 넘기기 위함인 것이지요. 그들이 표가 모자랄수록, 더더욱 도덕에 대한 집착이 커지기 쉬운 거라 봅니다. 이때 도덕이란 시장에서 유기농채소를 개인 돈으로 지불해서 얻는 그런 도덕이 아니라, 도덕에 의한 이로움은 정치적으로 타겟된 개인이 챙기고, 비용과 위험은 국가나 시장 전체가 지불하는 식이어야 할 것입니다. 트랜스젠더 화장실을 만든다고 할 때, 비용은 국가가 세금으로 대는 식인 거죠. 그런 식의 것들을 하나하나 해주면서, 표를 모으는 겁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볼 때, 비용에 비해 효과는 적다면, 그로인해 정치적으로 정당이 밀릴 수 있는 것이겠죠. 민주당이 표를 늘리기 위해서는, 도덕화에 있어서 비용 대비 효과, 즉 효율을 살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게 일종의 버블이 있었던 것이고, 이번에 미국에서는 그 버블이 터진 거라 해석할 수 있다고 봅니다. 도덕은 돈이 듭니다. 규제는 돈이 듭니다. 누군가는 돈을 지불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유주의자의 반발을 낳죠. 비용과 반발을 놓고 볼 때, 정치적 이득이 더 커야 합니다. 현실을 놓고 볼 때 도덕에는 중용이 필요한 것이며, 어느 정도가 적정선인지 물을 때, 저 비용 대비 효과를 봐야 하는 것이며, 순전히 특정 정당의 정치적 이익만 놓고 보더라도 그렇게 판단하는게 적절하다고 봅니다. 도덕에 대한 원론적인 견해를 이야기하자면, 공자보다는 노자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이렇게 봅니다. 마치 소금처럼 도덕이 전혀 없는 것도 불건강하고, 너무 심한 것도 불건강하고, 현실적 여건하에 중용을 찾아야 하며, 그 중용이란게 정치적으로는 양 세력간 대립에 의한 균형 또는 오락가락에 의할 수 있는 거라 봅니다.
세계화에 대해 일반론으로 저는 이렇게 봅니다. 첫째로 세계화는 전세계의 부를 증가시킨다고 봅니다. 실질적인 부를 놓고 볼 때, 그렇습니다. 둘째로 세계화는 평화를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이유는 세계화를 통해 정보가 흐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경제가 엮여 있어서, 다른 나라가 타격을 입으면, 나 또한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경제적 이익에 따라 타국에 호의를 갖는 사람들이 일부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부를 증가시키고 평화를 만드는게 반드시 그런 건 아닐 것입니다. 기본적인 경향성이 그렇다는 것이고, 다른 요인들도 작용하기 때문에 개별판단할 일이고, 세계화가 잘 안 되는 어떤 장애물이나 위험요소들이 있을 때 오히려 부가 감소하고 평화를 해칠 수도 있는 거라 봅니다. 마치 운동을 하면 건강해지는게 기본적인 경향성이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닌 것처럼요.
셋째로 세계화를 "공산주의"와 관련지어 생각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회주의이지만, 공산주의도 그중 일종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렇습니다. 마르크스 공산주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세계주의인 걸로 압니다. 즉 독일 노동자가 아니라, 유럽 노동자를 가리키는 것이며, 나아가 세계 노동자를 가리키는 거란 거죠. 실제 역사는 국가주의적 공산주의였지만, 이념적 지향성은 세계주의적 공산주의라는 것입니다. 더 일반적으로, 사회주의란 것도 국가주의가 아니라, 세계주의를 지향하는 수가 있는 거라 봅니다. 미국을 놓고 보면, 공화당과 민주당으로 나눈다고 할 때, 민주당을 세계주의에 더 가깝다고 생각할 수 있겠고요. "인권"이나 "환경"이란 것도 생각해보면, 그건 세계주의적 성격을 갖게 되기 쉬운 거라 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공산주의가 아니더라도, 세계주의가 되면, 평등을 향해 나아가는 면이 있게 되는 거라 봅니다. 한 국가를 놓고 보면 양극화이지만, 전세계를 놓고 보면 평등에 가까워지는 면이 있는 거라 봅니다. 무역으로 인해 가난한 나라의 노동력이 쓰임을 받고, 그들의 부를 늘리게 된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심지어 외국에서 자본 투자가 이뤄져서 그 빈국의 노동력을 이용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를테면 베트남은 경제성장을 했고, 그것은 세계화 덕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선진국, 그 한 국가를 놓고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건 단순하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선진국의 노동자가 베트남의 노동자와 임금이 유사해지는 것, 그것이 세계화입니다. 그리고 평등 즉 평평해지는 것이지요.] 만약에 그 유사한 임금을 선진국 노동자가 거부한다면, 그 노동자는 실업자가 됩니다. 선진국 노동자는 선진국에 살기 때문에, 더 높은 물가를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트남 노동자보다도 불리한 면이 있습니다. 물론 좋은 인프라로부터 혜택도 얻지만, 선진국의 노동이 전반적으로 더 비싸기 때문에 그로인해 더 높은 물가가 됩니다. 그리고 선진국에서 잘 팔리는 제품이나 서비스라는게 상대적으로 더 고급화되어 있기 때문에도 생활 비용이 증가합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걸 떠나서, 단순하게 말하자면, 선진국의 서민 노동자들이 베트남 노동자와 임금이 비슷해지는 것, 그것이 세계화의 의미인 거라 볼 수 있고, 그렇다면 당연히 반발이 일어나기 쉬운 거라 봅니다. 이 임금이 비슷해지는 경향을 막는 방법 중 하나가 관세겠지요. 즉 세계화에 역행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이민이란 것도, 이민을 마치 전세계가 한 국가인 것처럼, 그렇게 받아들이면, 그것도 평등을 향한 거라 봅니다. 소득이 비슷해지는 거죠.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미국이나 유럽으로 몰려들면, 결국 선진국의 서민들과 소득이 유사해지는 거라 할 수 있습니다.
넷째로 매우 중요한 것인데, 세계화는 경쟁을 늘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화가 아니었다면, 한 국가 내에서 "독과점"을 했을 만한 산업인데, 세계화로 인해 경쟁을 하게 되는 수가 있는 것입니다. 폐쇄를 해놓고 국가 내에서 독과점을 하면, 그러한 기업은 폭리를 취할 수 있습니다. 가격을 높여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사야 하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그 독과점 기업이 기술개발을 하지도 않고 서비스 수준을 높이지도 않아도, 사람들은 사야 합니다. 즉 어느 기업으로 과도히 분배가 이뤄지고, 그 기업이 실력도 키우지 않고 효율도 높이지 않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와 결탁하기도 쉬울 것입니다. 결국 국가내에서만 해결하면 될 일이기 때문에, 부정부패가 일어나는 것이죠. 반면에 세계화는 이러한 것을 정화시키는 경향이 있는 거라 봅니다. 국내에서 독과점을 하지 못합니다. 국내시장이라면 약간의 유리함을 갖고 있긴 하지만, 아무튼 외국의 제품/서비스와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앞서 공산주의가 이념적으로 세계화를 지향한다고 이야기했는데, 마찬가지로 경제적 자유주의자들도 세계화를 지향하게 되는 것은 세계화가 경쟁을 늘리고 독과점을 줄이기 때문이라 봅니다.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는 그 반대일 수 있는 것이겠고요.
세계화는 전체 부를 증가시키고, 평화를 향하는 경향이 있고, 경제적 평등 즉 전세계 사람들의 소득을 비슷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고, 독과점을 없애고 경쟁을 늘려서 보다 자유시장에 가깝게 만들고 그에따라 실력은 늘고 부정부패는 줄어드는 경향이 있는 거라 봅니다. 임금소득만 그런게 아니라, 자본소득도 그렇다고 봅니다. 자본시장이 세계화로 개방되어 있으면, 자본수익률이 유사해지는 경향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개방이 안 되어 있고, 오직 자기 나라에만 자본을 쓸 수 있다면, 국가간 자본수익률 격차는 커지기 쉽겠죠.
세계화에 역행하는 것, 탈세계화는 이 반대의 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이 큰 거라 봅니다. 전체 부를 감소시키고, 평화에 역행하고, 선진국 노동자와 개도국 노동자의 소득 격차를 키우고, 경쟁이 줄어들고 독과점으로 실력도 없으면서 많이 분배받는 안일한 기업들이 늘어나기 쉬운 거라 봅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이야기할 것은 도덕입니다. 편의상 환경도 도덕에 포함시켜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세계화로 인해 부가 늘어나고, 그로인해 이로움을 누리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사람들은 그 다음에 어떻게 하는가 하면, 생활 수준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서, 공동체에 더 높은 도덕을 요구할 가능성이 큰 거라 봅니다. 도덕이란 많은 경우 부와 관련되어 있다고 봅니다. 가난하면 챙기지 못할 도덕이 있는 거란 거죠. 부유하면 챙길 수 있는 도덕이 있는 거란 거죠. 도덕이란 부가 증가하면, 더 높은 수준을 추구할 수 있게 되는 거라 봅니다. 그런데 그러한 도덕 중 일부는 국가를 매개로 하지 않더라도, 개인적으로 추구할 수 있습니다. 시장에서 유기농 채소를 구입하면 됩니다. 돈을 더 줘야 하는데 여유가 있으니 괜찮습니다. 시장에서 공정무역을 통한 상품을 구입하면 됩니다. 그 시장에서 도덕을 구입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부족하고, 어떤 도덕은 국가 규제를 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도덕 수준을 높인다는게 곧, "비용 증가"를 의미하게 되는 거라 봅니다. 이제는 개인 돈을 써서 도덕을 구매하는게 아니라, 공동체의 돈을 써서 도덕을 구매하는게 됩니다. 정부가 직접 돈을 지불하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은 정부는 그저 규제를 할 뿐이고, 시장에서 그 비용을 감당해야 합니다. 가격이 높아지는 것이지요. 그렇게 높아진 가격을 "서민"도 구매해야만 합니다. 도덕, 안전, 환경 규제를 하면, 기업들은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인력을 더 쓰거나, 재료비를 늘리거나 등을 하게 되는데, 그로인해 상품 가격이 상승합니다. 그 비싼 상품을 서민도 구입해야 합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듯 세계화는 선진국의 서민 노동자와 개도국의 노동자의 소득이 비슷해지게 만듭니다. 즉 안 그래도 세계화로 인해 경제적으로 더 열악해지는데(혹은 더 위험해지는데), 여기에 도덕에 의한 비용 증가까지 강제로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한 비용 증가는 명시적인 것보다, 암묵적으로 은밀하게 이뤄지기 쉬운 것이고요. 여기서 터져나오는게 탈세계화인 것인 거라 봅니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탈도덕화". [탈세계화와 탈도덕화]가 동반되기 쉬운 것이고, 그로인한 정치 정당의 움직임 중 일부를 가리켜서 극우라 말하게 되기 쉬운 거라 봅니다. 기후변화도 도덕이라 해석할 수 있다고 봅니다. 넓은 의미로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탈탄소 기후규제를 하지 않고 화석연료쓰겠다는 것은 단순하게 말해 "탈도덕화"라 할 수 있습니다. 소위 친환경으로 했다면,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고 그럴만할 것입니다. 그러나 서민들은 그게 안 좋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유가 너무 없으니까요. 그런데 유기농 채소 구입하듯, 개별 구입하는거라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국가를 통해 모두 일괄적으로 규제를 하는 식이라면, 서민들도 그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것은 고소득 부유층의 경우입니다. 세계화로 인해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진 사람들이 도덕을 추구하는 이유 중 일부는 부유층에 대한 반감에 있다고 봅니다. 즉 도덕적 우월감을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에 비해 내가 재산과 소득이 적지만, 그래도 나는 도덕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야라는 정체성과 자존감을 원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부유층 중에도 세계화로 인해 많은 이득을 챙기는 사람들이 많은 거라 봅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도 그러한 도덕을 충족하면서, 혹은 동의하고 지지하고 지원하면서, 힘을 합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힘을 합치는 이유는 도덕 때문이 아니라, 세계화로인한 경제적 이득 때문인 것이지요.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볼 때에는요. 그들은 도덕적 우월감을 필요로 하는 자기보다 더 상류의 사람들이 없거나 적기 때문에, 그들이 도덕을 추구할 개연성은 낮은 거라 봅니다. 대중과 접점이 많고 대중으로부터 평판을 갈망하는 어떤 명예욕이나 혹은 인류를 향한 선한 욕구가 자아에 부착되어 있는 일부를 제외하곤 말이죠. 그들 부유층은 세계화가 자신에게 경제적으로 이롭기 때문에 중류층 내지 중산층과 도덕화에 힘을 합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일부 부유층은 세계화를 통해 이득을 별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탈세계화를 해야 국내에서 독과점을 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일 수 있고, 그러면 그들은 탈세계화 ・ 탈도덕화를 하려는 서민들과 힘을 합치게 될 수 있는 거라 봅니다. 여기서 일론 머스크는 예외라 봐야겠죠. 그는 세계화를 통해 커다란 이로움을 얻는 인물이니, 원래 민주당이어야 합니다. 그는 한편으로는 도덕화에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트럼프와 협력하여 국가정책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어올려는 경제적 유인도 생긴 거라 이해합니다. 지금은 사이 좋아보이지만, 갈등을 겪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얘기인데, 빼먹은 걸 덧붙이자면, 도덕화라는 것은 "관료주의"에 친하다는 것입니다. 시장에서 유기농 채소를 사는건 관료주의와 별 관련은 없지만, 그러나 많은 도덕은 결국 관료를 통해 전체에 강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정부를 놓고 볼 때에도 그렇고, 기업을 놓고 볼 때에도 그렇고, 대학을 놓고 볼 때에도 그렇고, 어딜 가나 도덕화는 관료주의를 자극하고 강화하는 경향이 있는 거라 봅니다. 그런데 바로 그 관료주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라 봅니다. 경제와 무관한 것에 있어서도 관료주의를 싫어하는 자유주의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정치적 자유주의자, 문화적 자유주의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도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에 손을 들어줬을 가능성이 큰 거라 봅니다. 이상하죠. 민주당이 리버럴이고 리버럴이 자유주의를 의미하는 것인데, 거꾸로 민주당이 관료주의가 되어 규제를 늘어놓는다는게 말이죠. 이름은 껍데기일 뿐, 실질을 놓고 세상 돌아가는 걸 봐야 한다고 봅니다. 그들이 도덕화에 힘을 쓰는 이유 중 하나가 상류층과 비교할 때의 도덕적 우월감 때문이라 했는데, 그뿐만은 아닙니다. 또다른 이유는 결국 서민들 중 일부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인 것이지요. 그래서 과반을 넘기기 위함인 것이지요. 그들이 표가 모자랄수록, 더더욱 도덕에 대한 집착이 커지기 쉬운 거라 봅니다. 이때 도덕이란 시장에서 유기농채소를 개인 돈으로 지불해서 얻는 그런 도덕이 아니라, 도덕에 의한 이로움은 정치적으로 타겟된 개인이 챙기고, 비용과 위험은 국가나 시장 전체가 지불하는 식이어야 할 것입니다. 트랜스젠더 화장실을 만든다고 할 때, 비용은 국가가 세금으로 대는 식인 거죠. 그런 식의 것들을 하나하나 해주면서, 표를 모으는 겁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볼 때, 비용에 비해 효과는 적다면, 그로인해 정치적으로 정당이 밀릴 수 있는 것이겠죠. 민주당이 표를 늘리기 위해서는, 도덕화에 있어서 비용 대비 효과, 즉 효율을 살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게 일종의 버블이 있었던 것이고, 이번에 미국에서는 그 버블이 터진 거라 해석할 수 있다고 봅니다. 도덕은 돈이 듭니다. 규제는 돈이 듭니다. 누군가는 돈을 지불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유주의자의 반발을 낳죠. 비용과 반발을 놓고 볼 때, 정치적 이득이 더 커야 합니다. 현실을 놓고 볼 때 도덕에는 중용이 필요한 것이며, 어느 정도가 적정선인지 물을 때, 저 비용 대비 효과를 봐야 하는 것이며, 순전히 특정 정당의 정치적 이익만 놓고 보더라도 그렇게 판단하는게 적절하다고 봅니다. 도덕에 대한 원론적인 견해를 이야기하자면, 공자보다는 노자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이렇게 봅니다. 마치 소금처럼 도덕이 전혀 없는 것도 불건강하고, 너무 심한 것도 불건강하고, 현실적 여건하에 중용을 찾아야 하며, 그 중용이란게 정치적으로는 양 세력간 대립에 의한 균형 또는 오락가락에 의할 수 있는 거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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