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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농사짓기 시작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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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841 회 작성일 24-11-05 12:4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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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농경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냥 술마시려고 농사가 시작된게 아니냐는 썰을 궁금해하는 댓글이 있었다.


오늘은 인류가 농사짓기 시작한 이유를 알아보자.




"그냥 술마시려고 농사지은거 아냐?"


Venus-de-Laussel-vue-generale-noir.jpg 인류가 농사짓기 시작한 이유는?
25,000년 전 후기 구석기 시대의 "로셀의 비너스".  악기를 굳이 거꾸로 든 여인일까? 혹시 술잔을 든 여인은 아닐까? 
Venus-de-Laussel-detail-corne.jpg 인류가 농사짓기 시작한 이유는?







Hordeum_vulgare_illustration_(01b).png 인류가 농사짓기 시작한 이유는?

Hordeum vulgare 

 야생 보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들에 의해 소비되었다. 보리는 추위에 강하고,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로서 오늘날엔 거의 전 세계에 걸처 널리 재배된다. 


Sheaf_of_wild_barley.jpg 인류가 농사짓기 시작한 이유는?
야생보리 Hordeum spontaneum


800px-Composite_Sickles_for_Cereal_Harvesting_at_23,000-Years-Old_Ohalo_II,_Israel.jpg 인류가 농사짓기 시작한 이유는?



23,000년 된 곡물 수확용 낫
 2만 3천년 전의 유적지에서 보리를 갈아먹은 흔적이 출토되었으며, 보리가 적극적으로 길들여졌다는 증거 또한 지금으로부터 1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리는 에머밀, 외알밀 등과 함께 인류의 대표적인 1차 가축화 작물(Founder crops) 이다. 
 그리고 보리처럼 당을 함유한 모든 곡물은 방치하면 자연스레 발효될 수 있다. 인류가 최초로 발견해낸 뒤 적극적으로 전수한 화학작용은 아마 발효였을 것이다. 
Raqefet_Cave_rock_mortars.jpg 인류가 농사짓기 시작한 이유는?

 죽과 같은 형태로 발효된 보리, 그러니까 원시적 맥주의 가장 오래된 증거는 무려 1만 5천년 전에서 1만 3천년 전 사이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찮게도 이는 지난 시간에 다뤘던 영거 드라이아스 이전 첫번째 정착의 시대다.

Israel_Museum_Stone_Age_Artifact.jpg 인류가 농사짓기 시작한 이유는?


 본격적인 농경민이 되기 이전부터, 나투프 인들은 반정주 생활을 영위했고, 동굴 속 잔치에서 발효된 보리죽을 먹었다. 아마 이들은 수확한 곡물 낟알들을 말려서 장기보관하다가, 섭취할 때는 뜨거운 물에 넣어서 여러 종류의 견과류나 생선들과 섞어 죽처럼 끓여먹었을 것이다. 
 건조된 보리들이 언제나 완벽한 보존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동굴 속으로 가끔 빗물이 스며들고, 습기가 차곤 했을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싹튼 보리, 엿기름이 발견되었을 것이다. 

1024px-Grünmalz.jpg 인류가 농사짓기 시작한 이유는?


 몰트라고도 부르는 이 맥아는 단 맛이 났다. 곡물이 물을 만나면 당화 과정을 통해 녹말이 당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속에 좀 더 오래 방치된 어떤 낟알들은 거품을 뿜어대며 요상한 맛을 내기 시작했다. 마치 과일이나 꿀이 빗물에 젖어 오랫동안 방치되었을 때 나는 미묘한 톡 쏘는 맛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걸 마신 사람들은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Stèle_Mercenaire_syrien_18ème_dynastie_Neues_Museum_image_éclaircie_et_perspective_corrigée.jpg 인류가 농사짓기 시작한 이유는?
빨대는 맥주 건더기를 걸러 먹기 위해 발명됐다.


 이 걸쭉하고 보글거리는 탁한 액체가 바로 오늘날 맥주의 먼 조상이다.

 지난 시간에 다룬 괴베클리 테페에서도, 돌로 만든 거대한 대야 속에서 보리와 물이 섞여있던 증거가 발견되었다. 몇몇 학자들은 이것이 초창기 맥주였으리라 확신했지만, 그냥 곡물을 물에 불려먹었던 걸수도 있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똑똑한 괴베클리 테페의 옛사람들이 맥주를 만들어 마셨을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하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가보지 않는 이상은 모르는 일이겠다.
1024px-Göbekli_Tepe,_Urfa.jpg 인류가 농사짓기 시작한 이유는?
괴베클리 테페


 여튼 알콜성 음료는 초기 정착지 어디에서나 그 증거가 발견된다. 9천년 전의 중국 유적지에서도 과실주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확실한 것은, 모여있는 인간들은 언제나 술을 마셨다는 것이고, 모여있는 생활은 농사를 짓도록 더 강한 압력을 가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들은 정말 술을 마시려고 농사를 지은 걸까? 

 술은 초창기 정착민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큰 사회적, 종교적 의미를 가졌던걸까?

그것은 분명 중요한 물음이겠지만, 동시에 한 두 마디로 결론내릴 수는 없는 주제다. 

여기서는 분명 그 중요성을 인정은 하되, 인류가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이 기실 인류 그 자체보다 오래됐다는 한가지 사실 또한 언급해야겠다. 
9780520275690.jpg 인류가 농사짓기 시작한 이유는?


 찰스 다윈은 술 취한 원숭이가 숙취에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어떠한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현대의 과학자들은 그 아이디어를 더 구체화했다. 
 그 아이디어란 인간이 술을 더 잘 마실 수 있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며, 구체화는 그것이 무려 일천만년에 걸친 장구한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호모 사피엔스는 아무리 이르게 잡아도 30만년 전에 출현했다.)
 우리는 그 이후로 꾸준히 알콜을 능숙하게 분해하는 갖가지 유전적 변이를 획득했고, 물에 희석되어 발효된 벌꿀술이나 나무옹이 속에 넣어두고 깜빡한 과일들을 즐겨먹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왜 대회합과 농경의 시작은 술을 마시기 시작한지 999만년이나 지나서야 시작된걸까? 정말로 "술" 그 자체가 강력한 동인이었다면, 술 파티와 정착은 훨씬 이전에 시작되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맥주가 갖고 있는 여러 건강상의 이점, 이를테면 풍부한 비타민 B라든가, 소화를 돕는다든가 하는 것들이 그 원인으로 지목될 수야 있겠지만... 더 낭만이 없는 오늘날의 학자들은 대체로 더 딱딱하고 재미없는 가설을 제시한다.

인구 증가에 대처하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

아마 우리가 너무나도 환경에 잘 적응한 탓, 그러니까 지구 어디에서나 인구압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란 가설이다. 

25.png 인류가 농사짓기 시작한 이유는?

우리는 영장류다. 

 영장류는 지능이 높을수록 더 복잡한 사회 체계를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 (영장류는 심지어는 다른 종의 영장류들과 연합하기도 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아예 식육목과 연합했다.)

 그리고 약 5만년 전부터 똑똑한 현생인류는 비어있는 생태 틈새를 폭발적으로 메워가며 전 지구를 정복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은 무의식적으로 진행되었을 것인데, 한 집단이 인지적 한계(150명 가량)에 도달하면 분열해 떨어져나가는 방식이 되풀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분열해 떨어져 나간 무리들은 가는 곳 마다 대형 동물들을 멸종시켰고, 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났으며, 마침내 더 풍요로운 어떤 곳에서는 반영구적인 정착생활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정착생활과 인구증가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되먹임고리를 형성했다. 

 이 때부터 인류는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부대끼며 살아가게 된 것이다.

 조금은 거북한 생활을 할지라도 더 큰 규모의 집단을 형성한 세력이 그렇지 못하지만 여유롭기야 한 세력을 잡아먹기 시작했을 것이고, 정착지의 인간들은 다른 도시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선 닥치는 대로 인구를 증가시키고, 식량 생산을 늘릴만한 방안을 찾아내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인간은 자연을 길들이기 시작했다. 길들임의 과정은 수천년에 이를 정도로 길고 지루했다. 

1024px-Raatajat_rahanalaiset.jfif.ren.jpg 인류가 농사짓기 시작한 이유는?

 처음에는 화전을 일구는 원예의 일종이었으나 점차 복잡한 관개와 수리시설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마침내 비옥한 초승달지대에서 집약적인 농경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Museum_Quintana_-_Unternberg_1.jpg 인류가 농사짓기 시작한 이유는?
Expansion_of_farming_in_western_Eurasia,_9600–4000_BCE.png 인류가 농사짓기 시작한 이유는?
농경의 확산

 집약적인 농경은 인구를 폭발적으로 늘렸다. 한 여성이 평생동안 출산하는 횟수는 수렵채집사회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고, 더 많은 인구는 또 다시 더 고도화되고 집약적인 농경을 요구했다. 

이윽고 수렵채집사회인 몇 명을 먹여살릴 수 있는 땅은 농경민 수십 수백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Fields_of_corn-Euphrates-Iraq.jpg 인류가 농사짓기 시작한 이유는?


 더 많은 인구를 가진 농경집단은 농사짓기 좋은 토지를 헐겁게 다스리는 주변의 수렵채집집단을 계속해서 밀어내었다. 어떤 수렵채집인은 아예 새로운 생활방식, 농경을 배워 저들 자신도 농경인이 되었다. 

 농경민은 수렵채집민에 비해 더 복잡한 사회구조와 더 많은 인구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고정된 지역에서 정착해서 산다는 것은, 곧 그만큼 수렵채집인의 약탈과 기습에 더 취약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800px-Ziko.jpg 인류가 농사짓기 시작한 이유는?
예리코


Jericho_Neolithic_wall_I.svg.png 인류가 농사짓기 시작한 이유는?
Jericho_Neolithic_wall_II.svg.png 인류가 농사짓기 시작한 이유는?
Jericho_Neolithic_wall_III.svg.png 인류가 농사짓기 시작한 이유는?
예리코의 요새화 과정


 특히 무거운 농작물에 비해 움직일 수 있는 가축이 약탈의 주된 대상이었다. 농경인들은 가축을 우리 안에 가두는 것으로 대응했다. 예리코와 같은 최초의 도시들에는 거대한 방책이 둘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서는 농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나서 수 천년간 방책이 거의 둘러지지 않은 부족 사회의 정착지도 많았다. 
 이들을 둘러싼 환경이 평화로웠기 때문은 아니었다.
 중동의 몇몇 선택받은 지역을 제외하면, 초기 농경인들이 지력이 쇠함에 따라 꾸준히 이동하는 소규모 부락의 원예민들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들에겐 방책을 두르고 지킬 여유가 없었고, 여러 증거는 우리로 하여금 이들의 삶이 폭력적인 분쟁으로 점철된 끔찍한 것이었으리라 추측케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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