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을 맞아 써보는 나의 남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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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편은 무르다.
내가 뭘 먹자 하면 싫다고 하는 법이 좀처럼 없다.
내가 뭘 사고 싶다고 하면 말리는 법이 없다.
입히지도 않을 로아 아바타가 몇 개인지 셀 수 없지만
그럼에도 매번 로얄크리 충전하고 싶다 하면 얼른 사라고 한다.
아묻따 사주는 대로 입고 신는다. 그래도 가만히 지켜보면 마음에 드는 건 저러다 닳겠다 싶을 때까지 주구장창 입고 신는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투정하는 법이 없지만, 입거나 신지는 않아 관찰 끝에 물어보면 그제사 이유를 말해준다.
순한 건지 내가 어려워서 말을 못하는 건지 종종 헷갈릴 때도 있지만
나랑 싸울 때를 생각해보면 후자는 아닌 것 같아 다행이다 싶다.
2.
남편은 단호하다.
어쩌다 한번 친정엄마를 보러 가는 괴롭고 먼 길을
무릎뼈가 부러져도 다리가 저려와도 어떻게든 운전을 해 준다.
내가 지보다 면허를 2년은 먼저 따고 연수도 내가 시켜줬는데...
위아래가 없어졌는지 운전은 잘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천오백킬로를 혼자서 운전한다.
꼬우면 힘센 사람이 운전대 잡으면 된다는데, 단호한데 얍삽하기까지 한다.
마음이 힘든 사람이 쉬어야 한다지만 매번 고맙고 미안하다.
이 다음의 귀경길은 내 마음이 좀더 편해지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3.
남편은 게임을 좋아한다.
게임을 못하게 하는 여자를 만날 거면 결혼을 하지 않았을 거라 한다.
때로는 게임한테 지는 마음이 들어 서운할 때도 있지만
잘못된 말은 아니라서 반박할 수가 없다.
그렇게 게임이 좋으면 현질도 좀 해가면서 하라 해도 맨날 인게임 골드를 모아 전설아바타만 산다.요즘은 자꾸 날 검은사막으로 꼬셔서 못이기는 척 하고 있는데 재미없어 하는 걸 오늘 들켰다.
4.
남편은 당뇨 환자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증세가 있었는데 본인이 인정하기 싫었다고 한다.
결국 몇 달 사이 바짝 말라버린 몸으로 간 건강검진에서
어마어마한 당화혈색소와 공복혈당수치에 의사가 놀라 바로 전화해서 입원을 권유했고
입원은 하지 않았지만, 퇴사하고 입원한 것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다행히 한 달 만에 빠르게 차도가 올라오고 있다.
그렇게 방탕한 식생활을 오랜 시간 했음에도 간과 신장은 건강하다길래 인간 드루이드 답다 했다.
식이, 운동만큼 스트레스관리가 혈당조절에 중요하다고 큰 소리 치더니
설날을 맞아 간 시댁에서 어머님의 앞뒤가 다른 잔소리에 욱해버린 며느리와
그 모습을 보고 기가 막힌 어머님 사이에서 새색시마냥 곱게 말하는 남편이 대견하기도 하고
많이 힘들었겠지 싶어 보답하고자 어제보다 검은사막을 열심히 하는 나.
남편이 즐거워하는 모습이 좋으니까 난 오늘도 졸면서 미스틱을 키우고각성 자이언트가 얼마나 재미있어 보이는 지 같이 알아 봐준다.하지만 내일은 로아 주간리셋 전날이니, 상노탑은 돌자고 조용히 꼬셔야겠다.
5.
남편은 대문자F다.
T의 연애 유튜브를 보며 맞장구치는 나를 공감하지 못하는 남편과
그런 남편에게 넌 왜 모든 것에 공감을 못하냐며 F의 연애를 보여주자 조용히 지켜본다.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만남을 이어온 걸까.
첫 만남에 둘이 같은 카페모카를 시켜서 인연인가 했지만
남편은 휘핑크림을 빼달라 하고, 난 그 휘핑을 내 꺼에 같이 얹어 달라 했을 때
취향과 성향이 이렇게도 다를 수 있음을 눈치 챘어야 하는데
팍팍하게 살던 나에게 상상 그 이상의 다정함을 보여준 게 잘못이다.
이젠 너무 멀리 와버렸다.
여전히 같이 즐길 영화가 없어 연례행사처럼 극장을 가고
게임만 했다 하면 하루가 멀다 하고 피터지게 싸우고
운전을 했다 하면 서로에게 제발 자라고 한다.
그래도 둘 다 각자의 종교에 적만 뒀지 안가는 거 똑같고 헌금 아까워 하고같이 술 한 잔 기울이며 욕하는 정치인도 같아서
mbti고 나발이고 서로 할 말 다 하며 살아도 가정의 평화가 유지되는 것 같다.
6.
남편의 유튜브 알고리즘이 변했다.무한도전, 박병진용사, 각종 게임유튜브로 점철됐던 그의 알고리즘에당뇨 관리, 좋은 마음을 갖는 법 이런 썸네일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나보다 짜게 먹고 달게 먹고 많이 먹고 몰아서 먹던 못된 습관을 가졌던 남편은나의 식습관을 감히 코칭하고, 그 좋아하던 저녁 반주를 끊었다.어제보다 조금 더 건강하고 덜 울고 더 웃으면 되지.
이런 말을 수십 수백 번 반복하는 꼰대같은 내 말을운이 좋으면 살아갈 시간이 살아온 만큼 정도만 남은, 인생의 물리적, 의학적 변곡점을 돌면서
어찌됐건 저찌됐건 이제사 조금씩 들어주기 시작한 남편에게 고마움을 남기며 글을 맺는다.
남편은 무르다.
내가 뭘 먹자 하면 싫다고 하는 법이 좀처럼 없다.
내가 뭘 사고 싶다고 하면 말리는 법이 없다.
입히지도 않을 로아 아바타가 몇 개인지 셀 수 없지만
그럼에도 매번 로얄크리 충전하고 싶다 하면 얼른 사라고 한다.
아묻따 사주는 대로 입고 신는다. 그래도 가만히 지켜보면 마음에 드는 건 저러다 닳겠다 싶을 때까지 주구장창 입고 신는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투정하는 법이 없지만, 입거나 신지는 않아 관찰 끝에 물어보면 그제사 이유를 말해준다.
순한 건지 내가 어려워서 말을 못하는 건지 종종 헷갈릴 때도 있지만
나랑 싸울 때를 생각해보면 후자는 아닌 것 같아 다행이다 싶다.
2.
남편은 단호하다.
어쩌다 한번 친정엄마를 보러 가는 괴롭고 먼 길을
무릎뼈가 부러져도 다리가 저려와도 어떻게든 운전을 해 준다.
내가 지보다 면허를 2년은 먼저 따고 연수도 내가 시켜줬는데...
위아래가 없어졌는지 운전은 잘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천오백킬로를 혼자서 운전한다.
꼬우면 힘센 사람이 운전대 잡으면 된다는데, 단호한데 얍삽하기까지 한다.
마음이 힘든 사람이 쉬어야 한다지만 매번 고맙고 미안하다.
이 다음의 귀경길은 내 마음이 좀더 편해지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3.
남편은 게임을 좋아한다.
게임을 못하게 하는 여자를 만날 거면 결혼을 하지 않았을 거라 한다.
때로는 게임한테 지는 마음이 들어 서운할 때도 있지만
잘못된 말은 아니라서 반박할 수가 없다.
그렇게 게임이 좋으면 현질도 좀 해가면서 하라 해도 맨날 인게임 골드를 모아 전설아바타만 산다.요즘은 자꾸 날 검은사막으로 꼬셔서 못이기는 척 하고 있는데 재미없어 하는 걸 오늘 들켰다.
4.
남편은 당뇨 환자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증세가 있었는데 본인이 인정하기 싫었다고 한다.
결국 몇 달 사이 바짝 말라버린 몸으로 간 건강검진에서
어마어마한 당화혈색소와 공복혈당수치에 의사가 놀라 바로 전화해서 입원을 권유했고
입원은 하지 않았지만, 퇴사하고 입원한 것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다행히 한 달 만에 빠르게 차도가 올라오고 있다.
그렇게 방탕한 식생활을 오랜 시간 했음에도 간과 신장은 건강하다길래 인간 드루이드 답다 했다.
식이, 운동만큼 스트레스관리가 혈당조절에 중요하다고 큰 소리 치더니
설날을 맞아 간 시댁에서 어머님의 앞뒤가 다른 잔소리에 욱해버린 며느리와
그 모습을 보고 기가 막힌 어머님 사이에서 새색시마냥 곱게 말하는 남편이 대견하기도 하고
많이 힘들었겠지 싶어 보답하고자 어제보다 검은사막을 열심히 하는 나.
남편이 즐거워하는 모습이 좋으니까 난 오늘도 졸면서 미스틱을 키우고각성 자이언트가 얼마나 재미있어 보이는 지 같이 알아 봐준다.하지만 내일은 로아 주간리셋 전날이니, 상노탑은 돌자고 조용히 꼬셔야겠다.
5.
남편은 대문자F다.
T의 연애 유튜브를 보며 맞장구치는 나를 공감하지 못하는 남편과
그런 남편에게 넌 왜 모든 것에 공감을 못하냐며 F의 연애를 보여주자 조용히 지켜본다.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만남을 이어온 걸까.
첫 만남에 둘이 같은 카페모카를 시켜서 인연인가 했지만
남편은 휘핑크림을 빼달라 하고, 난 그 휘핑을 내 꺼에 같이 얹어 달라 했을 때
취향과 성향이 이렇게도 다를 수 있음을 눈치 챘어야 하는데
팍팍하게 살던 나에게 상상 그 이상의 다정함을 보여준 게 잘못이다.
이젠 너무 멀리 와버렸다.
여전히 같이 즐길 영화가 없어 연례행사처럼 극장을 가고
게임만 했다 하면 하루가 멀다 하고 피터지게 싸우고
운전을 했다 하면 서로에게 제발 자라고 한다.
그래도 둘 다 각자의 종교에 적만 뒀지 안가는 거 똑같고 헌금 아까워 하고같이 술 한 잔 기울이며 욕하는 정치인도 같아서
mbti고 나발이고 서로 할 말 다 하며 살아도 가정의 평화가 유지되는 것 같다.
6.
남편의 유튜브 알고리즘이 변했다.무한도전, 박병진용사, 각종 게임유튜브로 점철됐던 그의 알고리즘에당뇨 관리, 좋은 마음을 갖는 법 이런 썸네일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나보다 짜게 먹고 달게 먹고 많이 먹고 몰아서 먹던 못된 습관을 가졌던 남편은나의 식습관을 감히 코칭하고, 그 좋아하던 저녁 반주를 끊었다.어제보다 조금 더 건강하고 덜 울고 더 웃으면 되지.
이런 말을 수십 수백 번 반복하는 꼰대같은 내 말을운이 좋으면 살아갈 시간이 살아온 만큼 정도만 남은, 인생의 물리적, 의학적 변곡점을 돌면서
어찌됐건 저찌됐건 이제사 조금씩 들어주기 시작한 남편에게 고마움을 남기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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