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해전, 최강국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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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제2차 세계대전 해양 전쟁의 대서사
미국의 대표적인 해양화가 이언 마셜의 삽화 53점이 수록된 역작
40여 년간 한결같이 예일대에서 역사를 강의하며 현 시대의 가장 위대한 역사학자로 불리는 폴 케네디가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써낸 훌륭하고 매력적인 근간, 해양패권 흥망의 세계사를 출간했다. 이 책은 바다에서 펼쳐지는 제2차 세계대전사로, 6대 해군 강국이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승리를 위해 어떻게 움직였고, 그 균형추가 어떻게 이동했는지를 추적하며, 바다에서 벌인 전투와 군사 활동, 수송 선단과 상륙작전 등을 매우 상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실제 여러 군함들과 해양 전쟁의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들을 남긴, 미국의 대표적인 해양화가 이언 마셜의 아름다운 삽화 53점이 함께 수록되어 있는 것도 매우 기념할 만하다.
1939년 이전에 상당한 해군력을 보유한 주요 국가는 영국, 미국, 프랑스(연합군), 일본, 이탈리아, 독일(추축국) 6개국이었다. 영국 해군은 세계 최강이었지만 미국 해군을 약간 앞섰을 뿐이었고, 일본과 이탈리아와 독일, 이 세 해군은 바다의 현상을 뒤바꾸려는 미래의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1939년 9월에 발발한 유럽 전쟁은 영국과 프랑스 해군이 독일 해군을 압도한 까닭에 제한적인 전쟁이었다. 히틀러가 북서 유럽 전역을 정복한 이후로 해군력의 균형이 바뀌었으나, 영국 해군은 고군분투하며 바다에서 이탈리아와 독일의 합동 공격을 막아냈다. 그 뒤 일본이 태평양에서 미국과 영국 기지를 공격하면서 해군력의 균형에 훨씬 더 극적인 변화가 닥쳤고, 그로 말미암아 진정한 세계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 이후로 2년 이상 바다를 장악하려는 다툼이 세계 주요 대양과 해역에서, 육지와 하늘에서 치열하게 벌어졌다. 1942년은 해군의 역사에서 ‘전투가 가장 잦은 해’였으나, 지중해에서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해군의 전황은 결코 연합국에 유망하지 않았다. 연합국이 승리하려면 변화가 필요했고, 1943년에야 비로소 움직임이 시작됐다. 그리고 마침내 그 승패가 결정 났다.
해양 전쟁 이후 시작된 새로운 세계 질서의 개편
해양패권의 역사를 심도 있게 추적한 기념비적 대항해
역사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요약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연합국에 최종적인 승리를 안겨준 열쇠는 간단히 정리될 수 있다. 미국과 대영제국이 전투원과 군수품을 두 대양의 건너편으로 끝없이 실어 나른 덕분에 연합군이 이탈리아와 독일과 일본을 분쇄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해군력과 생산성 혁명이라는 두 요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군은 조금도 속도를 늦추지 않고 전진을 계속했다. 1943년에는 수송 선단 호송 함대의 격전, 지중해와 태평양에서의 상륙전, 노르웨이 해안에서 독일 순양함의 침몰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 전까지 잠재된 형태로만 존재하던 미국의 생산력이 마침내 모든 전쟁 무대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된 해’였다. 이듬해 군수품이 전선에 봇물처럼 흘러들며, 레이테만과 노르망디에서 승리를 거두는 데 일조했다. 군사 장비의 생산 뒤에는 어떤 때보다 강력한 재정 지원과 세금 인상이 있었다. 모든 경쟁국을 위축시킬 정도로 활황을 맞은 미국 경제 덕분에 연합국의 해군력 우위는 보장된 것이었다.
이처럼 이 책은 해전의 승리가 연합군의 승리로 이어진 단계들을 찾아내고, 그 단계들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추적하면서 우리가 몰랐던 전쟁의 이면들을 파헤친다. 저자는 해군의 군사적 작전만이 아니라 교역과 외교, 재정 정책 및 혁신적 과학기술까지 언급하면서, 해양패권과 전쟁의 승리로 이어진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해 나간다. 결국 1945년 바다에서의 승리가 확정된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의 명백한 승전국은 미국이었고, 그것이 새로운 세계 질서 개편의 시작이었다.
이로서 저자는 1936~1946년까지 10년 사이에 세계무대에서 활약해오던 해군 강대국들의 전략적 풍경이 다음의 4가지 관점에서 완전히 달라졌음을 짚어낸다. 첫째, 이탈리아, 독일, 일본, 프랑스의 해군이 소멸되며 유지되어오던 다국적 균형이 사라졌고, 둘째, 대포를 장착한 군함(수상함)의 시대가 끝났다. 셋째, 원자폭탄이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군의 효용성과 역할에 의문이 던져졌고, 넷째, 미국이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세계 바다를 지배하는 새롭게 개편된 국제 질서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바다에서 펼쳐지는 강대국의 흥망성쇠 연대기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읽는 진정한 승리의 조건
폴 케네디는 연대기적 구성을 취하면서도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고 설명하는 식에서 벗어나 다각도의 관점들을 탁월하게 반영하고자 노력한다. 먼저 1장에서는 본론에 들어가기 전 당시 세계정세의 흐름에 대해 전체적인 개괄을 훑는다. 2장에서는 1939년 이전의 군함과 해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전체 스토리의 관문을 열고, 3장에서는 해군력에서 중요한 지리적 조건과 경제력이라는 두 가지 요건에 대해 다룬다. 4~6장에서는 1939~1942년 전환점에 이르기 직전까지의 본격적인 해전을 다룬다. 이 부분은 가장 중요한 ‘사건의 역사’에 해당한다. 그리고 7~8장에서 승패가 결정된 1943년의 극적인 해전과 심층적 분석을 이어가고, 그 뒤 9~10장에서 다시 1944~1945년 사이에 벌어진 마지막 해전 이야기와 함께 영미 해군력이 어떻게 변모되었는가를 자세히 분석한다. 끝으로 11장에서는 최종적인 결산을 통해 대해전이 세계사 전개에 어떠한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우리는 대개 큰 국가, 큰 조직이 역사를 이끌어간다고 생각한다. 또한 주체자들의 신중한 계획을 통해 역사적 구조물이 형성된다고 여긴다. 하지만 역사 속 중요한 순간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 속에 크고 작은 다양한 주체들의 복잡한 관계망이 존재함을, 그리고 결코 설계해놓은 방향대로가 아니라 우연히 혹은 지속적으로 형성된 작은 충격과 변수들에 의해 결정되어 왔음을 알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전쟁의 시작과 끝 사이에서 우연과 선택이 얽히는 흥미로운 인과관계의 사슬을 추적하는 작업은 매우 유의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전히 우리는 전쟁이 진행 중인 시대에 살고 있다. 세계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또 앞으로도 계속될 패권 전쟁 속에 놓여 있다. 그렇기에 세계적인 노학자가 불타는 관심사와 연구열로 방대한 자료들을 모아 펴낸 해양 전쟁 역사서를 통해 전쟁이 우리의 역사를 어떻게 만들고 바꿔왔으며, 강대국은 어떻게 성장했고 쇠락했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은 중요하다. 이 책이 과거를 깊이 있게 제대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미래를 예측하는 초석이 되어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