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브르] 탄생 200주년 기념『파브르 식물기』국내 최초 완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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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르 식물기
정가 : 25,000원
정보 : 464쪽
"파브르 탄생 200주년 기념 국내 최초 완역본"
<파브르 곤충기>의 집필로 유명한 장 앙리 파브르가 그 3년 전인 1876년에 <파브르 식물기>를 발표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파브르가 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지극한 관심으로 식물을 깊이 관찰하고 연구했다는 사실도. 찰스 다윈이 “견줄 데 없는 최고의 관찰자”라고 찬사를 보낸 파브르의 시선은 식물과 동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살아가는 생명의 이치로 향한다. 그에게 인간의 속도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식물의 세상은 생명의 조화를 담은 작은 우주와 같았다. 사려 깊은 시선과 유려한 문장으로 자연이라는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식물과 곤충, 동물이 맺는 관계로부터 시작해 조금씩 깊은 곳으로 향하는 파브르의 글은 단순한 과학적 지식의 나열이나 인위적인 분류법과는 달리 마치 식물의 삶 속에 들어가 함께 시간이라도 보낸 듯 생생하게 다가온다.
파브르 탄생 200주년을 기념한 국내 최초 완역본 <파브르 식물기>가 알라딘 북펀드를 통한 수많은 독자분들의 뜨거운 성원 속에서 드디어 출간되었다. 초판 속의 본문 일러스트를 그대로 살렸고, 식물학을 전공한 조은영 번역가가 현대의 과학적 사실과 다른 서술에 꼼꼼히 주석을 다는 등 한층 정확하게 원고를 보완했다. 표지 일러스트를 그린 식물세밀화가 이소영이 "내가 읽은 가장 모범적인 식물기이자 파브르가 지구 환경 위기 시대의 인류에게 보내는 한 권의 조언"이라 추천했으며, 역자 조은영이 "많은 고전이 그러하듯 파브르의 책도 우리에게 "그래, 원조란 이런 것이지!"의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고백하건대 이 책을 작업하면서 나는 지금까지 현대 생물학 도서를 읽고 옮기면서 감탄했던 내용과 표현을 이 오래된 책의 문장에서 수없이 발견하는 실로 놀라운 경험을 했다. (...) 유행하는 최신 장르영화의 1960년대 원조 작품을 보았을 때 기분이랄까."라고 번역 후기를 전했다.
20세기의 위대한 자연주의자 장 앙리 파브르는 《파브르 곤충기》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가 식물학 박사 학위를 받고 식물을 깊이 연구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의 책 《파브르 식물기》는 지상 생명의 아름다운 조화를 흥미진진한 서사로 보여주는 과학 고전이다. 찰스 다윈이 “견줄 데 없는 최고의 관찰자”라고 극찬한 파브르의 시선은 그전까지 배경과 도구로 취급되었던 식물을 마이크로코스모스의 당당한 주인공으로 격상한다.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올랐던 그의 문장은 친근한 비유와 다양한 사례를 곁들여 식물의 구조와 기능 등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지식을 흥미롭게 설명한다. 파브르 탄생 200주년을 맞아 국내 최초 완역본으로 출간하는 《파브르 식물기》를 통해 독자는 새로운 시선으로 식물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으며, 나아가 희미해진 자연과의 접점을 선명하게 체험하는 놀라운 경험을 누리게 될 것이다.
1부
1장 산호와 나무
2장 식물의 개체
3장 장수하는 나무
4장 식물의 기본 요소
5장 식물계의 세 가지 범주
6장 쌍떡잎식물의 줄기 구조
7장 나무의 나이테
8장 수피
9장 외떡잎식물의 줄기 구조
10장 뿌리
11장 막뿌리
12장 줄기의 다양한 형태
13장 눈
14장 이동성 눈
15장 접붙이기
16장 잎
17장 잎의 움직임
18장 식물의 잠
19장 잎의 구조
20장 상승 수액
21장 생명의 화학
22장 이산화탄소의 분해
23장 하강 수액
24장 식물의 호흡
2부
1장 종의 보전
2장 꽃
3장 꽃덮개
4장 결실 기관
5장 꽃가루
6장 꽃과 곤충
7장 열매
8장 씨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수령이 오래된 나무 중에서도 심재가 단단하지 않은 나무는 줄기의 속이 비어 있다. 안쪽이 썩으면서 생긴 구멍이다. 그렇지만 매년 새로 가지를 내는 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긴 세월에 속이 문드러지고 유충이 우글거리는 텅 빈 버드나무가 머리 위로 무성한 잎을 자랑하는 것만큼 영문 모를 일이 또 있을까? 속은 버려진 시체처럼 썩어가는데 겉은 나 몰라라 마냥 생기발랄한 저 행태를 어찌 이해한단 말인가. 하지만 기이할 것은 없다. 저 안쪽에 틀어박힌 목재는 어차피 나무의 번영에 일말의 이바지도 하지 못하는 형편이 아니었던가. 지나간 세대의 유물은 썩어 없어졌어도 줄기의 둘레만 건재하면 나무는 괘념치 않는다. 넘치는 생명력은 오직 몸통의 바깥을 둘러 존재하기에 시간의 공격에 내부는 허물어졌어도 매년 젊은 세대의 힘으로 회춘하면서 꿋꿋이 몇 세기를 살아가는 것이 나무다. 집합적 존재로서 조직에 부여된 특권 덕분에 나무는 사실상 가장 모순된 면모를 한 몸에 지니게 되었다. 나무는 노인이자 청년이고, 죽은 자이자 산 자다.
- 1부 7장 <나무의 나이테> 중에서
모든 동물은 숨을 쉰다. 즉, 일정량의 공기를 몸속으로 들여보내 새롭게 보충하는 것이다. 몸속에 들어온 공기는 음식이 제공한 탄소 연료를 태워서 몸에 필요한 열을 유지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열을 생산해 운동과 기계적인 일로 바꾸려고 동물의 메커니즘은 마치 산업용 엔진처럼 탄소를 태운다. 가연성 물질을 적절히 태우지 않고는 우리 몸에서 근육 섬유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엄격한 의미에서, 산다는 것은 곧 소모한다는 것이며, 숨을 쉰다는 것은 곧 태운다는 것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생명의 불꽃이라는 말이 흔한 비유로 사용된다. 그러나 그 비유라는 게 실은 과학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뿐이다. 공기는 그 안에 산소가 들어 있기 때문에 불꽃을 태운다. 공기는 같은 방식으로 동물도 태운다. 공기는 불꽃이 열과 빛을 내게 하고 동물이 온기를 발하고 일하게 한다. 공기가 없으면 불꽃은 꺼진다. 공기가 없으면 동물은 죽는다. 이런 맥락에서 동물은 용광로에 연료를 때서 작동하는 성능 좋은 엔진에 비유할 수 있다. 동물은 먹고 숨을 쉬어 열을 내고 움직인다. 음식의 형태로 연료를 넣고 호흡이 제공한 공기 속 산소로 몸속 깊은 곳에서 연료의 탄소를 태우는 것이다.
- 1부 22장 <이산화탄소의 분해> 중에서
그 시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려주마. 너희는 대여섯 명이 몰려다녔고, 교사였던 나는 나이가 가장 많았지만 선생이라기보다는 동료이자 벗으로 함께했다. 그대들은 충동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소년이었고 봄날의 젊은 수액으로 가득 차 있어 온 세상에 마음을 열고 배움에 그토록 열심일 수가 없었다. 우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이야기를 해가며 난쟁이 엘더와 산사나무가 자라는 들길을 걸었다. 꽃무지는 산방꽃차례로 활짝 핀 꽃 위에 올라 일찍부터 짙은 향내에 취해 있었다. 우리는 진왕쇠똥구리가 앙글의 모래투성이 고원에 모습을 드러내고 고대 이집트인들이 세계의 상징이라 여긴 똥 덩어리를 굴리기 시작했는지, 산기슭에 흐르는 냉천의 개구리밥 깔개 아래로 아가미가 산호의 작은 가지를 닮은 어린 영원newt이 나왔는지, 개울에서 우아하게 헤엄치던 큰가시고기가 하늘빛과 보랏빛 혼인색을 둘렀는지, 갓 돌아온 제비가 춤을 추며 공중에 알을 뿌리는 각다귀를 습격하느라 초원의 풀 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날고 있는지, 올리브나무 땅에 사는 주얼드라세타eyed lizard 도마뱀이 사암을 파고 만든 굴 입구에 퍼렇게 점을 뿌린 풀빛 옆구리를 내보이며 일광욕을 즐기는지, 물속에 알을 낳기 위해 론강으로 올라오는 물고기 떼를 따라 지중해에서 내륙까지 쫓아온 붉은부리갈매기가 광기 어린 웃음소리를 내며 떼 지어 날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더 말해야 할까? 나는 이 모든 것을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그저 동물의 세계 한복판에 있다는 이유로 경험할 강렬한 기쁨을 좇아 봄날에 다시 깨어난 것들이 벌이는 형언할 수 없는 축제에 참여하여 아침을 보내려 했던 것이다.
- 2부 1장 <종의 보전> 중에서
몇 가지 예만 보아도 똑같은 기관이 열매마다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띠는지 알 수 있다. 심피의 안쪽 표피가 콩의 꼬투리에서는 평범한 표피로 남지만, 복숭아와 살구에서는 지극히 단단한 “돌”이 되고 호두와 아몬드에서는 딱딱한 껍데기가 되며 사과에서는 가죽질의 집이, 오렌지와 레몬에서는 과육 알갱이들을 둘러싼 섬세한 막이 된다. 이렇게 다른 것이 모두 구조상 내과피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내과피가 아예 사라져서 흔적도 남지 않을 때가 있다. 멜론, 수박, 호박, 오이, 박처럼 박과 열매 대부분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예를 들어 멜론은 바깥으로 껍질의 거친 틈바구니에 의해 갈라진 얇은 외과피 조각이 나타난다. 나머지는 중과피로 바깥쪽은 초록색이고 먹을 수 없지만 안쪽은 달콤하고 입에서 살살 녹는다. 그러나 중과피 안쪽에 내과피는 없다. 씨방이 생장할 때 심피성 잎의 안쪽 표피는 발달하지 않는다.
- 2부 7장 <열매> 중에서
식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과학 고전
자연과의 접점을 잃어버린 기후 위기 시대의 인류에게
150년 전 파브르가 다정한 조언을 건네다
20세기의 위대한 자연주의자 장 앙리 파브르는 《파브르 곤충기》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가 식물학 박사 학위를 받고 식물을 깊이 연구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의 책 《파브르 식물기》는 지상 생명의 아름다운 조화를 흥미진진한 서사로 보여주는 과학 고전이다. 찰스 다윈이 “견줄 데 없는 최고의 관찰자”라고 극찬한 파브르의 시선은 그전까지 배경과 도구로 취급되었던 식물을 마이크로코스모스의 당당한 주인공으로 격상한다.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올랐던 그의 문장은 친근한 비유와 다양한 사례를 곁들여 식물의 구조와 기능 등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지식을 흥미롭게 설명한다. 파브르 탄생 200주년을 맞아 국내 최초 완역본으로 출간하는 《파브르 식물기》를 통해 독자는 새로운 시선으로 식물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으며, 나아가 희미해진 자연과의 접점을 선명하게 체험하는 놀라운 경험을 누리게 될 것이다.
1. 왜 파브르는 ‘곤충기’ 출간 3년 전, ‘식물기’를 출간했을까?
— 자연과 괴리된 현대인에게 서로 얽히고 의존하는 생명의 이치를 전하다
파브르는 자연과학 제일의 가치인 ‘관찰’의 대가답게 몇십 년 동안 지구 전체 동물 가운데 4분의 3이나 차지하는 곤충의 삶을 꾸준히 주시하며 이에 대한 글을 10권의 책으로 썼다. 그 유명한 《파브르 곤충기》다. 이와 더불어 수억 년 동안 곤충과 함께 공진화해온 식물이 그의 관심사와 맞닿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그의 박사 학위 논문 또한 〈도마뱀난초의 괴경에 관한 연구〉가 아니던가. 《파브르 곤충기》 제1권이 출간되기 3년 전인 1876년에 파브르는 이 책 《파브르 식물기》를 출간했다. 앞서 1867년 출간했던 《나무의 역사(Histoire de la Buche)》에 2부가 추가된 구성이었다.
식물을 다루는 책으로는 이례적이게도 《파브르 식물기》에는 곤충뿐만 아니라 산호와 해파리 등 다양한 동물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파브르는 식물과 동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유하는 생명의 이치에 주목했다. 그의 눈에 땅 위에는 생명의 조화를 담은 작은 우주, 마이크로코스모스가 펼쳐져 있었다. 이 책을 시작하는 1장 〈산호와 나무〉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식물은 동물의 자매다.”
파브르는 이 책의 1부에서 식물의 현재를 조명하고 2부에서는 식물의 미래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자연의 전체적인 서사 속 식물과 동물의 관계에서부터 시작한 식물의 이야기는 점차 깊숙한 곳까지 독자를 이끈다. 식물계 전체의 범주와 각 범주의 상세한 특징, 식물을 구성하는 기본 구조인 뿌리‧줄기‧잎의 화학적 특성과 기본 요소 등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이 모든 특징들이 땅 위의 다른 생명체에게 미치는 영향을 짚어낸다. 서로서로 얽힌 생명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간 외울 것투성이로만 느껴졌던 식물에 대한 각종 과학적 사실이 단순한 자료의 나열이 아닌 자연의 맥락 속에서 길어 올려진 것임을 생생하게 이해하게 된다.
누구보다 높은 자연에 대한 이해와 유려한 문장을 동시에 겸비한 파브르의 책은 오늘날 자연과의 접점을 잃어가다 끝끝내 기후 위기를 맞이하게 된 현대인들에게 많은 질문을 남긴다. 빼어난 관찰자였던 파브르는 인간의 속도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곤충과 식물의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누구보다 그 관계성에 주목했던 과학자다. 식물 또한 동물과 마찬가지로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자연이라는 거대한 맥락 속 식물과 곤충 나아가 인간까지 돌아보게 하는 그의 글은 다시금 자연주의적인 태도가 필요해진 지금 시대와 조용히, 그리고 오래 공명하고 있다.
눈은 가족의 일원이자 공동체의 주민이자 식물 사회의 단위체다. 그러나 이런 미성숙한 상태로는 갓 태어난 이 연약한 시민이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듬해 봄에 잎이 달린 가지가 되기 전에는 나무의 전반적인 활동에 참여하지 못한다. 그때까지는 그저 젖먹이 어린애로 지내며 공동체의 희생으로 먹고살아야 한다. 포대기에 싸인 갓난아기나 둥지 속 새끼 새처럼 많이 먹고 튼튼하게 자라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다. 노동은 모두 잎이 무성한 새 가지, 즉 그해에 돋아난 가지에 온전히 맡겨진다. 이 가지가 공동체를 부양한다. 뿌리를 통해 흙에서 빨아올리고 잎을 통해 대기에서 끌어내린 원료를 배합해 끈적한 수액을 만든다. 식물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이 수액으로 창조된다. 해가 바뀌면 한 해 동안 수고한 가지는 말하자면 은퇴를 선언하고 휴식에 들어간다. 그리고 지금의 눈이 잎과 가지로 자라서 이듬해 새로운 눈이 대체할 때까지 부지런히 공동의 일을 수행한다. 그렇다면 나무는 여러 세대가 해마다 차례대로 업무를 이어받는 조직체와 다름없다.
- 1부 2장 <식물의 개체> 중에서
먹고 먹히는 이 일련의 과정 중에 누구의 노동이 가장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가? 인간은 몸의 재료를 양에게서 빌렸다. 양은 이미 준비된 상태로 그 재료를 인간에게 넘겨주었다. 한편 양은 몸의 재료를 식물에서 추출했다. 식물 안에서 재료는 이미 상당히 농축된 상태였다. 오직 식물만이 최초 공급원에서 재료를 직접 흡수할 수 있다. 식물은 먹을 수 없는 것들에서 먹을 것을 만든다. 식물은 숯과 공기와 물을 먹고 기적처럼 동물의 식량으로 바꾼다. 그러므로 탄소, 산소, 수소, 질소를 조합하여 유기물질을 만들고 지구의 모든 창조물에 꾸준히 성찬을 베푸는 것은 바로 식물이다.
- 1부 21장 <생명의 화학> 중에서
과거나 지금이나 식물은 배경과 도구로 취급되어 동물만큼 생명체로서 관심을 받지는 못하는 형편이다. 그걸 잘 알아서일까? 파브르는 “식물”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책을 뜬금없이 수생동물인 히드라로 시작한다. 그러더니 폴립과 산호로 넘어가 책의 첫 장에서 속없이 동물 이야기만 한다. 이 책이 식물기인가 동물기인가 의심이 드는 순간 첫 장이 끝나며 이렇게 선언한다. “식물은 산호의 폴립으로 이루어진 폴립 공동체와 같다.” “히드라와 산호의 태곳적 역사가 그대들을 이 책의 주제인 식물로 안내한다.” 얼른 식물에 관해 얘기하고 싶어 죽겠다!
이후로도 동물은 이 책에서 수시로 등장하며 식물과의 비교 대상이자 식물의 세계로 인도하는 안내자가 된다. 식물의 구조나 행동을 동물, 더 나아가 인간에 빗대는 것은 내용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사람들에게 멀고도 가까운 식물이란 존재를 소개하는 최고의 전략이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2. 땅 위의 코스모스를 오롯이 담아낸 과학 고전
— 복잡하고 외울 것 많은 과학이 아닌 생생한 삶의 원리로서의 과학
파브르가 알려주는 식물 이야기는 단순한 과학적 지식의 나열과 다르다. 인위적인 구획에 따라 분류하거나 일방적으로 분절시켜 설명하지 않는다. 그의 글은 마치 식물의 삶 속에 들어가 함께 시간이라도 보낸 듯 생생하다.
다가올 미래를 책임질 자라나는 아이 격인 ‘눈’을 키워내면서 동시에 이제 제 할 일을 모두 마쳐 썩어버린 심재로 인해 속이 빈 나무의 모순적인 상황은 마치 세대 변화가 끝없이 이어지는 인간 사회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번식을 위해 풍작을 이룬 나무가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고 ‘해거리’라는 쉼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마치 재충전을 위해 안식년을 가지는 우리네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어린 식물의 뿌리를 빛을 향해 세워두었을 때 “차라리 죽고 말겠다는 기세”로 굴하지 않고 땅을 파고드는 모습 속에서는 고집쟁이의 면모를 바라보게 된다.
“산방꽃차례로 활짝 핀 꽃 위에 올라 일찍부터 짙은 향내에 취해” 있는 꽃무지와 “공중에 알을 뿌리는 각다귀를 습격하느라 초원의 풀 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날고 있는” 제비에 대한 묘사는 생명이 만들어내는 풍경 속 식물과 동물의 유기적인 관계를 아름답게 그려낸다. 파브르가 들려주는 식물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우리는 자연과 인간의 연결을 새삼 깨닫게 되고 그 속에서 생명이 공유하는 이치를 깨닫게 된다. 모든 생명체의 “기원, 성질, 겉모습이 어떠하든 언제나” 같은 물질의 변형이라는 사실을 복잡하고 외울 것 많은 과학적 이론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생생한 삶의 원리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이테는 한 세대의 눈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제조 연월이 최근인 목질층은 수피에 가까운 줄기 바깥에서 발견되고 오래된 층일수록 줄기 안쪽에서 발견된다. 중심에 가까울수록 오래 묵은 목재라는 말이다. 미래의 새싹이 해마다 제 몫의 목질층을 생산하여 한 겹 한 겹 윗세대를 감싸기 시작하면 결국 지금의 가장 바깥층도 줄기 깊숙이 파묻히는 날이 올 것이다. 한 나무를 이루는 모든 연식의 물관부 가운데 나무에 당장 가장 쓸모 있는 부위는 단연코 제일 바깥쪽 부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목질층을 통해서 올해의 잎이 토양과 소통하기 때문이다. 이 층이 파괴되면 나무 전체가 죽을지도 모른다. 지금 안쪽 깊이 틀어박힌 물관부도 소싯적에는 줄기 가장자리에서 동시대 잔가지들의 교류를 전담했다. 그러나 과거의 잔가지는 어느새 굵게 자라버렸고, 그 옛날 열심히 만들어 바친 물관부는 줄기 중심부로 밀려들어 가 곁다리 임무에도 감지덕지하는 처지가 되었다. 바깥을 감싸는 물관부는 한창 일할 나이라 땅에서 나뭇가지까지 물과 필수 염분을 부지런히 실어 나르며 올해의 목재 생산에 일조한다. 그러나 안쪽으로 갈수록 수액이 말라버려 뻣뻣하고 리그닌에 질식해 손발이 묶인다. 줄기 한가운데 자리 잡은 늙은 물관부는 쓸모를 잃는다. 기껏해야 질긴 섬유로 뼈대의 견고함을 더할 뿐이다. 그 결과 나무는 줄기의 안에서 바깥으로 갈수록 생기가 왕성하다. 줄기 바깥쪽은 젊음과 활력이 넘치고 생산과 노동이 활발하다. 반면 줄기 안쪽은 노화와 무기력에 한없이 침잠한다.
- 1부 7장 <나무의 나이테> 중에서
동물은 물론이고 식물까지 포함하여 조직된 모든 존재 안에서 생명은 산소에 의한 연속적인 분해와 연소로 유지된다. 생명이 살아가려면 끊임없이 물질을 소비하고 또 보충해야 한다. 앞에서 말한 ‘생명의 불꽃’이라는 적절하고도 아름다운 표현을 기억할 것이다. 불꽃이 빛과 열을 내며 살아 있게 하려면 등잔은 꾸준히 기름을 써가며 연료를 제공해야 한다. 생명도 다를 바 없다. 생명은 탄생의 순간에 켜져서 죽을 때가 되어야 꺼지는 훌륭한 등잔이다. 영양은 사라진 물질을 보충하고 호흡은 보충된 물질을 소비한다. 영원히 지속되는 이런 충돌의 결과가 생명이라는 존재의 활동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동물에게 산다는 것은 곧 태우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것이 식물에서도 똑같은 진리다. 산소에 굴복하여 물질을 태우지 않고서는 어떤 근육 섬유도 제가 맡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고, 어떤 세포도 목적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 1부 24장 <식물의 호흡> 중에서
3. 파브르 탄생 200주년을 맞이해 출간한 국내 최초 완역본
— 신뢰할 수 있는 번역과 아름다운 일러스트로 소장 가치를 높이다
이렇듯 완벽한 서사로 땅 위의 마이크로코스모스를 보여준 《파브르 식물기》는 국내에 성인 독자를 위한 완역본이 없다. 파브르 탄생 200주년을 맞아 최초 완역본으로 선보이는 이 책은 식물학을 전공한 조은영 번역가가 150년 전 파브르의 이야기를 현대 독자에게 꼭 맞는 적합한 우리말로 옮기고 현대의 과학적 사실과 다른 서술에 주석을 다는 등 한층 정확하게 원고를 보완했다. 영어판을 저본으로 삼되 파브르의 원전을 최대한 충실하게 반영하기 위해 프랑스어 초판과 비교하며 영어판의 오류를 바로잡았다. 프랑스어판과 영어판을 거치며 시대 상황에 맞게 바뀐 원소의 발견 개수나 연간 탄소 발생량 등의 수치는 2023년에 맞는 수치로 바꿔 옮긴이 주를 달았다.
이 밖에도 식물세밀화가이자 원예학 연구자인 이소영 작가의 아름답게 고증된 일러스트를 표지에 실어 소장 가치를 높였다. 또한 1876년 초판 원서에 수록된 일러스트를 생생하게 살려 본문과 잘 어우러지도록 배치함으로써 파브르가 관찰하고 기록했던 식물의 이미지와 구조를 그대로 살펴보며 그 묘사에 푹 빠질 수 있도록 편집했다. 다채로운 시각적 경험을 선사하는 이 책을 펼쳐 든 독자들이 풀 내음까지 상상하며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길 바란다.
《파브르 식물기》는 파브르가 지극한 애정으로 자연을 지켜보고 책을 탐독하고 사람을 살피고 생각에 침잠한 끝에 탄생한 오리지널 콘텐츠다. 많은 고전이 그러하듯 파브르의 책도 우리에게 “그래, 원조란 이런 것이지!”의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특히 이 책은 ‘호모 인도루스Homo indoorus’, 즉 ‘실내 인간’의 생활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싶어서 밖으로 나가 꽃과 나무를 보고, 또 생활공간에 식물을 들여와 가꾸고 키우는 이 시대 평범한 사람들에게 식물의 존재감을 더 확실히 돋보이게 해주는 책이 될 것이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