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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안성기"운동못해살찐것…박찬욱․봉준호작품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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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460 회 작성일 24-05-25 10:0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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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지난 9월

30

일 국민배우 안성기가 투병 이후 처음으로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이 있는 서울 중구 명보아트홀에서 긴 인터뷰를 했다.

photo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배우 안성기(

70

)를 생각하면 굵은 주름 가득한 미소가 떠오른다.




세월을 온전히 받아들인 주름이 만들어낸 표정은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빵빵하게 "늙지 않는" 배우들 틈에서 그 주름은 나이테처럼 "배우 안성기"를 증명해주었다.




얼마 전 어색한 가발을 쓰고 부은 듯한 그의 얼굴이 공개되면서 혈액암 투병 사실이 알려졌다.




하회탈 같은 미소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낯선 모습은 충격이었다.







그의 건강에 대한 걱정과 격려가 쏟아지던 지난 9월 말 서울 중구 명보아트홀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 장소는 그가

12

년째 이사장을 맡고 있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사무실이었다.




아픈 중에도 그는 재단 행사에는 빠짐없이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투병 사실이 알려진 후 언론과 인터뷰는 처음이다. 그로서는 쉽지 않은 자리였을 것이다.







그는 검정색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약속 시간에 정확히 나타났다. 모자 밑으로 민머리가 보였다.




"가발보다 모자가 훨씬 낫다"는 말에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의 웃는 얼굴에서는 주름도 날렵한 턱선도 볼 수 없었다.




"얼굴이 부어 보인다"고 했더니 "부은 게 아니라 살이 쪘다"고 말했다.




그는 "운동을 못 하니까 체중이 늘더라"면서 "항암치료를 끝냈고 얼마 전부터 가벼운 운동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아프기 전까지는 탄탄한 근육을 자랑했다.

40

년 넘게 매일 1시간씩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다진 몸이었다.






2019

년 영화 "사자"에서 구마사제 안신부 역할을 할 때만 해도 근육질 몸을 숨기고 왜소해 보이기 위해 애써야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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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혈액암 투병 2년… "잘 받아들였다"








부드러운 중저음의 카리스마 넘치던 그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잠기고 쉰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




지난 9월

15

일 배창호 감독 데뷔

40

주년 특별전 행사에서도 그는 잠긴 목소리로 인사말을 하다 후배 김보연이 폭풍 눈물을 흘리는 바람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해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그날 언론들은 "안성기 혈액암 1년 투병" 뉴스를 앞다퉈 내보냈다.




이에 대해 그는 "1년이 아니라 2년 됐다"고 바로잡았다.

2020



10

월, 입원 사실이 알려지면서 건강이상설이 돌았다. 당시 "과로 탓"으로 넘겼지만 이미 그의 몸에 암세포가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처음 혈액암 진단을 받고 몇 차례 항암치료를 받은 후 괜찮아졌어요. 6개월 후에 보자고 해서 갔더니 그렇게 됐어요. 가장 센 항암치료를 끝내고 회복하는 중입니다." 그가 전한 현재의 상황이다. 그는 치료 기간 입맛을 잃어 식사 때가 돌아오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고 했다. 암 환자들의 경우 진단을 받은 후 분노, 우울 등 다양한 심리 변화를 겪는다. 그는 어땠을까.







"잘 받아들였어요."







"나이가 6에서 7로, 학년이 바뀌니까 이제 남은 인생의 절대 숫자가 줄어드는구나 싶고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안성기"다운 대답이었다.




"모범생" "배우 같지 않은 배우" "스캔들 없는 배우", 그를 설명하는 단어들이다. 모두 "자기절제"의 결과들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주변의 증언은 넘친다.




배우 박중훈은 한 인터뷰에서 "스님보다 더 사리가 많이 나오실 분"이라고 말했다.




인터뷰에 배석한 신영균예술문화재단 김두호 상임이사는 "

12

년 동안 화내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한결같다. 그야말로 천사표다. 아플 때도 재단 행사에는 꼭 자리를 지키고 할 일을 절대 남한테 미루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천사표를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화가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해가 됩니다. 화가 안 나니 사람들과 부딪칠 일도 없어요. 종교의 힘인 것도 같아요. 순응하며 살려고 노력하다 보니 다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는 가톨릭 신자이다.




영세명은 "사도 요한"이다. 그는 "결혼하면서 더 잘 살아야겠다 싶어 영세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5세 때 아역배우로 연기를 시작해 한 길을 걸었다.




숱한 배우들이 떴다 사라지는 동안 한결같은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그는 한국 3대 영화제인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모두 석권했다.




그것도 백상대상은 7번, 대종상은 5번으로 역대 주연상 최다 기록을 갖고 있다.






1982

년 대종상을 시작으로

1990

년대,

2000

년대,

2010

년대에 걸쳐 주연상을 수상한 유일한 배우이기도 하다.












"인기 말고 연기"








65

년을 한곳에서, 더구나 변화무쌍한 영화판에서 잡음 한 번 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의 이름 앞에 붙은 "국민배우"라는 수식어는 단지 시간의 축적만으로 얻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팬클럽도 없고 죽자 사자 하는 팬도 없고 국민이 팬이니 국민배우가 맞는 것 같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은근한 연탄불 같다"고 말했는데 배우 안성기야말로 한국 영화사를 따뜻하게 만든 연탄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1957

년 영화제작자였던 아버지(안화영)의 친구인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연기를 시작해

150

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했다. 정확한 숫자는 그도 알지 못했다.







"아역배우로

70

편 정도 찍었어요. 최근에는 세 보지 않아서 전부 몇 편인지 모르겠어요.

150

편은 넘는 것 같습니다."







1957

년부터

1968

년 "느티나무"까지 아역

10

여년 동안

70

편을 찍었으니 그의 어린 시절은 영화 빼고는 할 얘기가 없다.




밤샘 촬영이 많은 그를 안 재우려고 화투를 가르쳐줘서 어른들 틈에서 화투 치던 일, 여배우의 큰 의상 가방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가 촬영을 펑크 낸 일 등 영화와 관련된 기억들이 전부이다.




아역배우가 귀한 시절이라 촬영 현장에서는 그를 데려가기 위한 쟁탈전이 수시로 벌어졌다.






3~4

편씩 겹치기 출연을 하는 것은 보통이었다. 한 번은 지방 촬영이 지연되자 다른 촬영 현장의 제작 부장이 쫓아와 "안성기를 못 데려가면 나를 죽이라"면서 테이블에 칼을 꽂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1959

년 "십대의 반항"으로 그해 샌프란시스코 영화제에서 소년특별연기상을 받는 등 언론에서는 "천재 아역배우"라고 떠들썩했지만 그는 "연기가 뭔지도 몰랐고 연기를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그땐 못 했다"고 했다.




정작 연기에 대한 열정을 키운 것은 영화판 밖에 있을 때였다.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아역배우의 수명이 다하자 자연히 배역이 없어졌다. 대본 대신 교과서를 잡았지만 기초가 없으니 헤매야 했다.




간신히 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과에 들어가서

ROTC

로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왔지만 영화판은 그를 잊은 지 오래였다.






1980

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로 성인 연기를 시작하기까지 영화판을 기웃거리며 "백수"로 지냈다.




그는 그때를 "인생의 암흑기인 동시에 소중한 자산"이라고 했다. 그는 "어려움을 겪어봐야 어려운 사람을 더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기는 일시적인 것이다"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공백기의 좌절과 방황이 "인간 안성기"와 "배우 안성기"를 키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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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불어 좋은날(

1980

)









그는 어려서부터 반짝 스타들의 부침을 수없이 지켜봤다.




"배우는 특별해야 해" "배우는 뭔가 달라야 해". 이런 허세로 자신을 무너뜨린 배우들도 많이 봤다.




그 당시 한국 영화의 위상은 높지 않았다. 그는 영화계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고 한다.




배우가 존경받는 직업이 되기를 바랐다. 천성 탓도 있지만 그런 생각들이 그를 더 반듯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영화계에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마다 앞장선 것도 직업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그는 소속사도 없이 오랫동안 개인 매니저만 데리고 활동해왔다.




지난해에야 정우성·이정재가 만든 "아티스트컴퍼니"에 들어갔다.




김두호 이사는 "후배들이 아픈 선배를 모신 것 아니겠느냐. 이정재를 비롯해서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후배들이 많다"고 말했다.




연예부 기자 출신인 김두호 이사는 안성기가 "바람 불어 좋은 날"로 연기를 다시 시작할 때부터 인연을 맺었다.




재단을 같이 이끌고 바둑친구도 하면서

40

년 넘게 가까이서 그를 지켜본 "안성기 전문가"다.




김두호 이사는 "안이사장은 남에 대한 배려와 겸손이 몸에 뱄다. 기자 시절 인터뷰할 때도 겨우 묻는 말에나 대답하지 자기를 드러내는 것을 아주 쑥스러워했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아주 느리게 진행됐다. 그의 대답은 한참 숙성을 거쳐서야 입 밖으로 나왔고 주로 단답형으로 끝났다.











- 아프고 나서 달라진 것은 뭔가요.





"잘 살아야겠다…."







- 사람마다 "잘 산다"는 의미는 다 다른데, 안 이사장님에게 잘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 봉사."







"친구들과 잘 지내는 거…."





그의 답이 짧아질수록 질문은 더 길어졌다. 그가 힘들게 뱉은 단어 사이의 공백을 김 이사가 메워주었다.




그래도 영화 이야기를 할 때는 대답도 길어지고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최근 출연 제의는 없냐고 물으니 "시나리오가 들어온 것이 있긴 있어요. 어휴, 머리가 이래서…"라면서 말끝을 흐렸다. 현장을 아쉬워하는 마음이 진하게 느껴졌다. "하고 싶은 배역은 없느냐"고 물어보니 "박찬욱·봉준호 감독과도 작품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면서 연기 욕심을 감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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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스타(

2006

)










드라마 출연? 작품 보고…








그는 임권택, 이장호, 배창호, 정지영 감독 등 한국 영화의 전성기를 열어젖힌 감독들의 절정기를 함께했다.




강우석 감독과는 "실미도"로

"1000

만 관객" 시대를 열었다. 거지부터 대통령까지 "안성기는 한국인을 연기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다양한 배역을 맡았다.




자신의 연기에 아쉬움은 없을까. 그는 "눈물이 없어요. 눈물샘이 원래 작대요. 펑펑 우는 배우들 보면 부럽죠"라고 답했다.




가장 힘든 촬영을 묻는 질문에 그는

1990

년에 개봉한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을 꼽았다.







"계곡 신을 찍는데 촬영감독이 쉬었다 찍자는 걸 그냥 물속에서 기다렸다가 촬영을 마쳤어요. 버스를 타서도 몸이 덜덜 떨리는데

30

분 동안 안 멈추더라고요."







그는 "애정 신도 어렵다"고 했다. 당대의 여배우들과 숱하게 영화를 찍었지만 여배우를 안는 장면은 끝까지 적응되지 않은 일 중 하나라고 했다. 그는 가장 즐겁게 촬영한 영화로 박중훈과 호흡을 맞춘 "라디오스타", 부패 경찰 역의 "투캅스"를 꼽는다. 음모와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보다 유머가 있고 따뜻한 영화를 찍을 때 마음도 편하고 즐겁다. 그는 "라디오스타"의 일편단심 매니저 "박민수"가 자신과 가장 닮았다고 했다. 그는 "영화의 본질은 감동"이라고 믿는다. 돈 내고 영화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직업윤리이다.

TV

드라마 등 영화 외 출연을 안 한 것도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앞으로도 드라마는 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으니 "작품을 봐야죠"라고 의외의 대답을 했다. 김 이사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답변이다"라면서 "생각이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소망 이상으로 한국 영화의 위상은 높아졌다.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 영화의 발전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고 했다.




그는 한국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난 이유로 언어 구조를 꼽았다.




"바보"라는 욕만 해도 온갖 형용사를 붙여 수십 가지의 찰진 욕이 나오기 때문에 얼굴 표정도 풍부하고 다양하게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는 아날로그 시대부터 디지털까지 한국 영화산업의 변화를 함께했다.




제작 환경도 좋아지고 규모도 커졌다.




그의 소회는 남다를 것이었다.







"기술도 현장 분위기도 좋아지고 영화 작업이 조립품 만드는 것처럼 전문화됐어요. 필름 시대에는 한 번

NG

나면 필름 값이 드니까 욕 먹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런 부담도 없고…. 그래도 인간적인 정은 예전만 못하죠."







그가 출연한 영화 "탄생"이

11

월에 개봉한다.




 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 신부의 삶을 그린 영화로 그는 여기서 김대건 신부를 마카오로 인도하는 역관 유진길 역을 맡았다.




그의 꿈은 "정년연장"이다. 가능한 오래도록 촬영 현장을 지키고 싶다.




뒤따라오는 후배들에게 "저 나이에도 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와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잘 살아야겠다"였다.




그에게 "잘 산다"는 것은 욕망이 아니라 책임이다.




"책임감"이야말로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책임감이 그를 다시 일으키고 주름 가득한 "안성기표 미소"를 되찾아 줄 것이다.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가 답했다.







"괜찮은 사람."







한참의 침묵 끝에 나온 한마디는 묵직했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다는 말로 들렸다.









안성기 대표 출연작






황혼열차(

1957

) 모정(

1958

)

10

대의 반항(

1959

) 하녀(

1960

) 겨울나그네(

1963

) 얄개전(

1965

) 젊은느티나무(

1968

) 바람불어 좋은 날(

1980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1981

) 만다라(

1981

) 어둠의 자식들(

1981

) 적도의 꽃(

1982

) 꼬방동네 사람들(

1982

) 안개마을(

1983

) 고래사냥(

1984

) 무릎과 무릎 사이(

1984

)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1984

) 어우동(

1985

) 깊고 푸른 밤(

1985

) 이장호의 외인구단(

1986

) 겨울나그네(

1986

) 내시(

1986

) 황진이(

1986

) 기쁜 우리 젊은날(

1987

) 안녕하세요 하나님(

1987

) 달빛사냥꾼 (

1987

) 칠수와 만수(

1988

) 성공시대(

1988

) 개그맨(

1989

) 남부군(

1990

) 꿈(

1990

) 베를린 리포트(

1991

)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1991

) 그대안의 블루(

1992

) 하얀전쟁(

1992

) 천국의 계단(

1992

) 투캅스(

1993

) 태백산맥(

1994

) 영원한 제국(

1995

) 잠자는 남자(

1995

) 천재 선언(

1995

) 헤어드레서(

1995

) 축제(

1996

) 박봉곤 가출사건(

1996

) 퇴마록(

1998

) 생과부 위자료청구소송(

1998

) 인정사정 볼것 없다(

1999

) 킬리만자로(

2000

) 진실게임(

2000

) 무사(

2001

) 마리이야기(

2002

) 취화선(

2002

) 피아노 치는 대통령(

2002

) 실미도(

2003

) 아라한장풍대작전(

2004

) 묵공(

2006

) 한반도(

2006

) 라디오스타(

2006

) 화려한 휴가(

2007

) 마이뉴파트너(

2007

) 신기전(

2008

) 페어러브(

2010

) 7광구(

2011

) 부러진 화살(

2011

) 타워(

2012

) 톱스타(

2013

) 찌라시 : 위험한 소문(

2014

) 신의 한수(

2014

) 화장(

2015

) 제7기사단(

2015

) 사냥(

2016

) 사자(

2019

) 종이꽃(

2020

) 아들의 이름으로(

2021

) 카시오페아(

2022

) 한산: 용의 출현(

2022

) 탄생(

2022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3/0000033101?sid=103

















힘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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