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공한감독만이칠수있는사기,외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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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런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아주 오래 전 부터 외계인들은 죄수들을 인간의 몸에 가두어왔다. 그러나 인간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가끔은 죄수가 인간의 몸에서 나오곤 했는데, 그들은 그것을 탈옥이라고 불렀다."
이 나레이션은 영화 전체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장면였으나, 불행하게도 이 나레이션만으로 이 영화에 대한 흥미는 사라져 버린다.
이 설정이 흥미롭게 들리는 사람도 물론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외계인들이 죄수를 인간의 몸에 가두고, 죄수들이 인간의 몸에서 탈옥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전혀 궁금하지 않고 그런 내용의 영화를 시간을 들여 보고싶은 마음이 없다.
이런 흥미 제로의 상상력으로 영화를, 그것도 2부작으로 만들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한국에는 많지 않다. 최동훈 처럼 불패의 신화를 가진 감독이라면 예외다. 일단 성공하면, 쓰레기를 찍어서 내다 걸어도 투자를 받을 수 있는게 한국이다.
최동훈은 아마도 저런 내용이 재미있을꺼라고 생각했나 보다. 뭘 찍든, 자신이 거느리는 연출부와 기술, 미술팀이 알아서 좋은 그림과 이야기를 만들어 줄꺼라 믿었나 보다. 그리고 투자자들은 그가 뭘 찍든, 찍어주는 것만으로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몇년간 이 흥행 보증 수표 감독의 메가폰이 잠자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 영화는 이렇게 영화 시작 1분이 되지 않는 시간에 흘러나온 나레이션에서 이미 실패했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영화가 나레이션이나 자막 설명으로 시작되는 많은 영화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오랜 옛날, 멀고도 먼 겔럭시 저편에서..."로 시작하는 스타워즈나, 영화의 배경과 주요 상황을 적절한 설명으로 시작하는 블레이드 러너(1982), 12몽키스(1995), 노매드랜드(2020), 또한 영화가 말하려는 철학적 의미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며 시작하는
더 록(1996),
블랙호크 다운(2002) 등... 그러나 외계+인은 근래 본 최악의 오프닝 씬이다.
외계인은 분명 흥미로울 수 있는 소재다. 그런데 그들에게 죄란 의미는 무엇일까? 인간과 같은 형태의 도덕적 기준이란 것이 존재하는지, 아니면 그 보다 복잡한 기준같은게 있는지? 사람 몸을 감옥으로 "이용"하는걸로 봐서는, 분명 인간과 외계인의 도덕관과 세상에 대한 이해 방식이 다를것 같은데 어째서 범죄자는 외계인과 인간 모두에게 전형적인 의미와 표현방식으로 다루고 있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것에 관심이 있다. 그저 편리하게 죄를 지은 외계인을 처벌한다는 식의 얄팍한 깊이의 스토리에 도저히 발을 담그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외계+인이라는 영화가 만약 공포 장르로 제작되었다면, 인간의 몸이 죄수들의 감옥으로 사용된다는 설정이 조금은 흥미롭게 다가올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SF장르로써 이 설정엔 그 어떤 철학적 고민의 흔적도 느낄 수 없고, 흥미 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공상과학영화가 빈약한 공상과 비과학으로 점철되어 있다면 과연 그것을 공상과학영화라 불러야할 이유가 있을까? 이건 장르가 사기다.
성공한 감독만이 칠 수 있는 사기, 그것이 이 영화의 모든것이라 말하고 싶다. 이는 관객에 국한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영화의 투자와 제작에 관여된 모든 이들을 포함해서 하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