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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웠어요, 제오페구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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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196 회 작성일 24-11-21 00:3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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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내가 응원하는 팀이 우승한다는 건 정말 꿈과 같은 일일 겁니다. 팀을 잘 고른(?) 사람에게는 그게 흔한 경험일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그 기다림이 너무 고달프죠. 짧게는 몇 년이겠지만, MLB 시카고 컵스의 염소의 저주처럼 108년이 지나서야 우승을 맛보는 경우도 생기는 거고요. 아니면 아예 한평생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우승하는 걸 못 보기도 하고요.  


저 같은 경우, 제가 온힘을 다해 응원한 선수나 팀이 우승한 경험을 돌이켜보면 마지막은 2008 인쿠르트 스타리그 송병구 선수였습니다.  


그러다 2022년, 처음으로 응원하는 팀이 생겼습니다. 네, 바로 T1이었습니다. 저는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롤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페이커라는 선수의 존재는 알고 있었고, T1의 존재 역시 알고 있었지만 롤을 시청하기 시작한 건 상당히 늦게 입문했습니다. 제가 정확히 언제부터 롤을 보기 시작했고, 또 언제부터 그리고 왜 T1을 좋아하게 됐는지 떠올리고 싶어도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T1에 대한 호감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T1의 우승만을 바라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일례로 제가 양대인 감독님에게 분노를 잘 안 하는 이유는 ‘돌려 돌려 돌림판’ 시절엔 롤을 라이트하게만 봤기 때문에 당시의 분위기를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페이커라는 선수가 대단한 역사를 써왔다는 건 나무위키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사실 제 눈으로 직접 본 적은 없었습니다. LCK 결승을 아예 안 봤던 건 아닌 것 같은데, 어찌됐든 제 머릿속에 남아 있는 페이커의 첫 우승은 2022 스프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첫 우승이 알고 보니 페이커의 열 번째 우승이더군요.  


2022 롤드컵 결승전에서도 T1을 응원하긴 했지만, 온힘을 다해 응원했냐고 물으면 솔직히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T1이 우승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응원은 했던 것 같은데... 그 당시만 해도 데프트가 우승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나쁜(?) 생각이 잠깐잠깐 들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정말로 온힘을 다해 응원했던 결승은 바로 다음 해인 2023 롤드컵 결승전이었습니다.  


2008년 11월 1일, 인쿠르트 스타리그 결승전

2023년 11월 19일, 2023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사실 그 사이에도 응원했던 팀이나 선수가 좋은 성적을 거둔 적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축구 국가대표팀 벤투호가 16강에 진출한 것도 너무 짜릿했고, 메시가 월드컵 우승을 한 것도 기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됐든 벤투호는 8강에서 아쉽게 멈췄고, 메시의 우승은 기쁘긴 했지만 온힘을 다해 응원했다고 하긴 어려웠습니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간절히 우승을 바랐던 팀이 우승하는 경험은 무려 15년 만이라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2022년 결승 이후로 너무 힘들었던 시간을 보상받는 기분이었고, 팀의 네 번째 우승이었지만 제가 본 T1의 첫 우승컵이었습니다.  


그리고 2023년보다 더 기대감이 없었던, “제발 롤드컵만이라도 진출하자”라고 생각했던 2024 롤드컵 2연속 우승은 너무 짜릿했습니다.  


제우스, 오너, 페이커, 구마유시, 케리아


롤드컵 역사상 역대 최고의 팀(이라고 들었던)을 이렇게 보내는 건 참 마음이 아픕니다. 중간중간 언해피라던가 뭔가 언질이라도 줬으면 혹시나 했을 텐데, 너무 후다닥 지나가버린 것 같아 참 허무하기도 합니다.  


저는 제우스 선수를 비난하는 팬분들을 모두 이해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같은 리그 내에서, 그것도 팀의 핵심 선수가 우승 경쟁을 하는 다른 팀으로 가는 걸 온전히 이해하길 바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애초에 그렇게 쿨하게 보내줄 선수였다면 그렇게 열렬히 좋아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조금 다른 예일 수도 있지만, 황인범 선수가 FC서울로 잠시 임대 왔을 때 대전 팬분들에게 양해를 구했던 모습이 스쳐 지나가면서,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좀 더...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여전히 남습니다.  


앞으로 저는 제우스 선수를 비난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응원하는 일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딱 남의 팀, 남의 팀 선수처럼 대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난 시즌의 도란 선수처럼? 정말 잘할 때는 잘한다고 무섭다고 할 것이고, 못하면 못한다고 할 것입니다. 만약에 다음 시즌 롤드컵에서 LCK 팀이 다 떨어지고 LPL + 한화만 남는다면, 그때는 한화를 응원하겠죠. 제우스가 아니라 한화를요.  


2024 결승전 전에 T1 응원글을 쓸까 하다가 뭔가 부정 탈 것 같아서 안 썼었고, 결승 후에도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바쁨 때문에 못 쓰고 있었습니다. 은연중에 생각했던 게 “제오페구케 엔트리가 확정되면 그때 한 번 더 써야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이 글을 쓰는 시점이 이렇게 슬플지는 생각을 못 했던 것 같네요.  


제오페구케의 마지막 응원글이라는 게 슬프긴 하지만, 그래도 그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15년만에 온힘을 다해 응원했던 팀이 우승했던 그 도파민은 잊지 못할겁니다.


고마웠습니다. 제오페구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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