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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점의 포식자-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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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999 회 작성일 24-12-09 10:0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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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점의 포식자-6

 

6. 도망치다

“한영주.”

더운 숨을 실은 목소리가 영주의 이마에서 흩어졌다.

입은 것이라고는 브래지어와 팬티밖에 없어서 더는 벗을 것도 없고, 더는 몸을 가려 줄 것도 없다.

하지만 영주는 굳이 가리려 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기분이 너무 좋다.

제 이마에 닿는 더운 숨결도 기분이 좋고 제 등을 쓸어내리고 있는 커다랗고 차가운 손도 기분을 좋게 만들고 있다.

“으응…….”

아랫입술을 꾹 누르자 저절로 벌어진 입안으로 남자의 혀가 밀고 들어왔다.

“응, 읍…….”

입안을 한 차례 훑은 남자가 다시 영주의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놓으며 속삭였다.

“다리 벌려.”

전에도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기분이다.

[다리 벌려]

언제였을까, 그건.

기억들이 단편적으로 흩어져 제대로 모이지 않는다.

꿈을 꾸고 있는 것도 같고, 깨어 있는 것도 같은 기분이다.

출렁이는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몸이 흔들린다.

다리를 벌리고 싶은데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벌리지 못하고 있을 때 남자의 손이 알아서 허벅지 사이로 파고들어 왔다.

“하으응…….”

허벅지 사이로 파고든 손이 아직까지 입고 있는 팬티 위를 꾹 눌렀다.

“읏…….”

영주가 허리를 비틀었다.

손끝이 팬티를 누르며 더 깊이 찔렀다.

숨결은 목덜미를 지나 쇄골에서 멈췄고 또 다른 손이 영주의 옆구리를 쓸어내렸다.

손의 느낌이 좋다.

바로 앞까지 다가온 얼굴을 자세히 보려고 영주가 애를 썼다.

시야가 흐릿하지만 남자가 잘생겼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잘 안 보여…….’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시야가 너무 뿌옇다.

“으응, 읍…….”

남자의 숨이 다시 영주의 입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녀의 입술을 전부 삼킨 남자의 숨결이 입안으로 밀려들더니 뒤이어 젖은 혀가 그녀의 혀를 감아올렸다.

입천장을 찌르고 치열을 훑어가며 혀뿌리까지 밀고 들어가 탐닉하는 남자의 키스에 영주의 머리가 열기로 달아올랐다.

가뜩이나 숨이 가쁜데 저를 덮고 있는 남자의 체온이 뜨겁다.

손은 차가운데 체온은 뜨거운 신기한 남자다.

혀를 뽑기라도 할 듯 거칠게 변해 가는 키스를 퍼부으며 남자의 손이 영주의 허리를 꽉 쥐었다.

“하으읏……!”

입술을 놓아주더니 이내 젖무덤에 잇자국을 내고 유두 주위에 타액의 흔적을 남기며 남자가 그녀의 젖가슴을 탐했다.

타액이 묻어 있는 유두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비틀며 반대쪽의 유두를 잘근거리며 잇자국이 나도록 씹어댄다.

“하응, 으응…….”

혀끝이 제 유두를 굴리다 유륜과 함께 통째로 삼키고 씹어대자 영주의 벌어진 입술에서 뜨거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영주가 허리를 비틀며 들어 올리자 그녀의 큰 젖가슴이 출렁거렸다.

“그렇게 좋아? 꼭지가 지금 다 섰어. 한영주, 빨아 주는 게 좋아 죽겠어?”

좋냐고? 당연히 좋다.

열기로 발갛게 달아오른 눈을 게슴츠레 뜨고 영주가 웃었다.

“웃어?”

그럼 웃지. 울까?

기분이 좋으니까 웃지. 이상한 인간이다.

왜 웃는다고 뭐라고 하지?

“더 빨아 줘?”

‘더 빨아 줘.’

그런데 혀가 풀려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지금 영주가 낼 수 있는 소리라고는 헐떡이는 신음소리가 전부다.

“흐으응, 응, 하읏…….”

남자가 영주의 유두를 입안에 넣고 잘근잘근 씹었다.

씹고 빠는 것을 반복하는 사이에 영주의 양쪽 유두는 유륜까지 이미 흥건히 젖고 발갛게 붉은 물이 들었다.

얼마나 씹어댔는지 이제는 혀만 닿아도 아릴 정도가 되었을 때 남자가 겨우 젖가슴에서 입술을 뗐다.

타액에 젖어 번들거리는 유두가 꼿꼿하게 서 있는 것을 영주도 선명하게 느꼈다.

머리는 몽롱한데 전신의 감각은 솜털이 솟는 것까지 전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해졌다.

“계속 해?”

뭘 계속한다는 걸까.

계속 빨아 준다는 걸까? 하지만 이젠 유두가 아프다.

너무 세게 빨고 또 씹어 대서 발갛게 변한 유두가 욱신거린다.

“아, 아, 니…….”

아니요, 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그보다 더 빨리 남자가 다시 그녀의 젖가슴을 물어뜯었다.

“하으응! 흐아! 아아!”

며칠 굶은 개가 먹이에 달려들 듯 젖가슴에 매달린 남자가 게걸스럽게 살점을 물고 빨았다.

“하윽! 응! 흐으응!”

고개를 젖힌 채로 정신없이 신음하며 허리를 흔들고 있을 때 팬티가 다리 아래로 벗겨졌다.

“질질 쌀 정도로 좋아, 한영주? 응?”

영주의 다리를 벌린 남자가 무릎을 꿇고 그녀의 허벅지를 꽉 잡았다.

간신히 고개를 든 영주의 뿌연 시야에 초점이 잡혔다.

그리고 그 초점 끝에 남자의 사타구니 위로 사납게 머리를 쳐들고 있는 것이 뚜렷하게 보였다.

그것만 이상할 정도로 뚜렷하게 보였다.

“씨발. 아프고 지랄이야.”

제 성기를 손에 쥔 남자가 욕설을 내뱉었다.

“이거 보여? 너 때문에 이렇게 부었잖아. 터질 것 같다고. 당장 밀어 넣고 싸지 않으면 돌아버릴 정도야.”

남자의 손에 쥐어진 귀두가 요도를 뻐끔거리며 말간 것을 뚝뚝 떨어뜨렸다.

끄덕거리는 성기에서 영주가 눈을 떼지 못했다.

요도가 뻐끔거리는 귀두는 붉은색이고, 손에 쥐어진 기둥에는 시퍼런 핏줄이 불거진 채로 휘감겨 있다.

그 아래에 어린아이 주먹처럼 굵은 두 개의 고환이 주름을 팽팽하게 부풀린 것도 보였다.

“사람 돌아버리게 만드는 데 재주가 있어, 한영주.”

남자는 잔뜩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그 눈빛에 열기가 몰려 있다.

“볼 때마다 내가 얼마나 미치는지 알기나 해?”

거친 숨을 흘리며 남자가 제 성기를 손으로 훑었다.

그의 손안에서 꿈틀거리던 성기가 꿈틀거렸다.

그렇게 몇 번이나 손으로 훑었을까.

츄푹. 소리와 함께 귀두에서 흰 정액이 뿜어져 나왔다.

귀두에서 뿜어 나온 정액이 영주의 음모와 사타구니에 잔뜩 뿌려졌다.

“그래서 얼쩡거리지 못하게 했는데, 잘도 나타났네. 누가 허락도 없이 내 꿈에 나타나라고 했어. 내 꿈에 난입한 이상 각오는 하고 있겠지? 무단 침입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잖아.”

무단 침입, 꿈, 난입.

그 단어들이 무슨 뜻인지 지금 이 몽롱한 머리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정액이 치덕치덕 묻은 사타구니 사이가 간지럽고 뜨겁다.

욱신거리는 질구에 남자의 손바닥이 닿았다.

“하읏…….”

잘 뻗은 손가락이 그녀의 음순을 벌리고 묻어 있던 정액을 안쪽 주름에 문질러 가며 펴 발랐다.

손가락이 음순을 열어젖히고 안쪽으로 밀고 들어오자 영주의 허리에서 열꽃이 번졌다.

이런 이물감은 처음이다.

정액을 묻힌 손가락이 질구를 꾹꾹 눌렀다.

“하윽, 으응, 으응…….”

안쪽 깊숙한 곳까지 손가락이 파고들 때마다 영주가 숨을 헐떡였다.

지금 제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분간이 가지 않는다.

다만 남자의 손이 저를 멋대로 만지고 다리를 끌어 올려도 순순히 따라갈 뿐이다.

남자가 그녀의 두 다리를 들어 올려 어깨에 얹었다.

들린 엉덩이와 함께 질구가 벌어졌다.

하얀 정액을 묻힌 채로 벌어진 질구가 숨을 쉬듯이 벌름거렸다.

“한영주.”

남자가 다시 한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하루 사이에 가장 많이 이름이 불린 날이 아닐까 싶다.

성기의 끝이 질구에 맞춰졌다.

남자가 붉은 혀로 입술을 핥으며 느리게 웃었다.

“꿈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 말과 함께 남자의 성기가 그녀의 안으로 단번에 밀고 들어왔다.

“아아아!”

뿌리 끝까지 뻑뻑하게 밀고 들어온 성기가 그녀의 안을 그득 채웠다.

아래가 벌어지는 낯선 고통보다는 아랫배를 가득 채운 묵직함이 주는 버거운 감각이 영주를 더 지독하게 짓눌러 왔다.

“씨발, 왜 이렇게 좁아?”

남자는 미간을 찡그리며 허리를 얕게 쳐올렸다.

“하아윽!”

“윽! 조이지 마.”

“하응! 아! 아!”

어떻게 조이지 말란 말인가.

남자가 성기를 쳐올릴 때마다 몸이 바짝바짝 죄어드는데 조이지 말라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린가.

“아아아!”

길게 성기를 빼냈던 남자가 다시 퍽 쳐올리자 영주가 허리를 비틀며 다리를 흔들었다.

남자는 점점 속도를 올렸다.

그때마다 사정없이 찔리며 영주의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흐응! 아! 아아! 흐아앙!”

어스름한 조명 아래에서 영주가 허리를 휘며 소리를 질렀다.

어깨에 얹었던 그녀의 다리를 내린 남자가 대신 발목을 쥐고는 한껏 벌리고 제 허리를 거칠게 쳐올렸다.

있는 힘껏 벌어진 사타구니에 남자의 하체가 퍽퍽 부딪쳐 왔다.

정액이 펴 발린 질구 안으로 남자의 성기가 밀려 나왔다 다시 찔러 들어갔다.

“하읏! 응! 흐으응! 응!”

몸과 함께 흔들리는 젖가슴을 영주가 제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하응! 흐아아! 아아아!”

두 손으로 가슴을 주무르며 영주가 쾌감에 몸을 맡겼다.

아래가 박힐 때마다 전신에 전기가 통했다.

짜릿하고 뜨겁다.

“아아! 하앗! 아아아! 아!”

그녀의 발목을 꽉 잡고 위로 올린 남자가 사납게 허리를 밀어붙였다.

질구를 터트릴 것처럼 밀어붙이는 남자의 힘에 눌린 채로 영주의 몸이 엉망으로 흔들렸다.

이어져 있는 구멍에 불이 붙은 것 같다고 영주가 생각했다.

불이 붙다 못해서 녹아내릴 것 같았다.

“아아아! 하아앙! 흐아아!”

이렇게 소리를 지르다가는 목이 쉬어 버릴지도 모르는데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큰 소리를 내본 적은 거의 없다.

이렇게까지 지독한 쾌감도 처음이다.

몸 안으로 치고 들어오는 지독한 압박감에 고통스러우면서도 그것이 제 질벽을 긁고 나갈 때의 시원함, 그리고 다시 치고 들어올 때의 숨 막히는 열기가 그녀의 머릿속을 온통 지배했다

.

“씨발, 한영주……!”

거친 소리를 내며 남자가 성기를 그녀의 깊은 안쪽까지 쑤셔 박았다.

그와 함께 그녀의 안에 뜨거운 것이 울컥거리며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잔뜩 부은 구멍에서 성기를 빼낸 남자가 그녀의 몸을 뒤집고 그 등에 몸을 겹쳤다.

그리고 두 손으로 젖가슴을 꽉 움키고는 정액으로 가득한 엉덩이 골에 아직도 단단한 성기를 문질러댔다.

“내 좆이 서지 않을 때까지 할 거니까, 이 악물고 버텨.”

귓가에 남자의 거친 숨소리 섞인 선전 포고가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그 선전 포고처럼 남자의 몸이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

“…….”

영주가 코코아가 담긴 컵을 두 손으로 들고 홀짝 마셨다.

영주는 원래 이렇게 지독하게 단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코코아보다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좋고, 라테보다는 에스프레소를 좋아한다.

그러나 지금은 단것을 마시고 싶다.

아니, 단것이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이 미친 상황을 넘길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지금은 간절하게 당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단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어울리지 않는 코코아를 마시는 남자가 있다.

바로 설이현이다.

“그 개새끼, 잡히면 죽여 버리던가 해야지.”

여기서 말하는 [그 개새끼]는 설주원이다.

지금 이 집에 설주원은 없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설주원은 없고 이 집에는 영주와 이현 단둘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그리고 대신 이현의 휴대폰에 짧은 동영상 파일이 첨부된 메시지가 와 있을 뿐이었다.

[이건 일부에 불과해. 전체 재생 시간이 1시간 40분짜리 원본이 있으니까 알아서 잘 생각해.]

그 [맛보기] 영상 안의 벌거벗은 채로 끌어안고 짐승처럼 섹스를 한 당사자들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코코아를 마시고 있는 두 사람이다.

대충 옷은 입었다.

그러나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아 영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쁜 새끼. 설주원 이 개새끼.’

코코아를 마시며 영주가 수도 없이 설주원을 욕하고 또 욕했다.

‘그딴 새끼를 믿은 내가 바보지. 어쩌다가 그런 새끼를 믿어서…….’

사진만 찍는다는 말에 홀라당 넘어가 약을 탄 맥주를 마시고 결국에는 1시간 40분 동안 섹스를 했었다.

전부 다 기억이 나는 건 아니다.

영주가 기억하는 건 그중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5-6분 정도? 그게 전부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이현의 침대에 누워 있었고, 침대는 난장판이었고 그녀의 몸은 더 난장판이었다.

아직도 셔츠에 스치는 유두가 따끔거린다.

얼마나 물고 빨았는지 샤워를 하는 내내 아파서 혼났다.

몸 전체에 설이현이 저를 물고 빤 흔적이 한가득이다.

지난밤에는 둘 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은 인정한다.

전부 그 빌어먹을 설주원 때문이다. 그 인간이 대체 자신들에게 먹인 것이 뭔지 모르겠다.

얼마나 지독한 약이면 그 지경까지 가게 했을까.

게다가 지금 머리까지 아프다.

“사진만 찍는다고 했어요.”

영주가 괜한 변명을 해 봤다.

물론 자신도 피해자지만 [나도 피해자]라고 말해 봤자 설이현에게는 아무 소용 없을 것이다.

아무리 찔러도 바늘이나 들어갈까.

지금 설이현의 입장에서는 자신은 설주원과 공범에 불과하다는 것을 영주도 안다.

실제로 공범이었다.

갤러리를 받기로 약속도 했었다.

공범이지만 피해자인 미묘한 입장이지만, 그런 것까지 신경 써 줄 설이현이 아니다.

“저기요. 설 회장님.”

망설인 끝에 영주가 이현을 [설 회장]이라고 불렀다.

그는 실제로 회장이고, 그렇다고 설이현 씨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어색했다.

오빠라고 부를 수도 없다.

오빠도 아니고 말이다.

‘헉!’

설 회장님이라고 부르자마자 그가 저를 노려보자 영주가 얼른 시선을 돌렸다.

‘설마 죽이진 않겠지.’

기억은 단발이지만, 엄청나게 뜨겁고 사나웠던 남자가 지금은 저렇게 차갑고 매몰찬 눈을 하고 있다.

역시 사람은 취하면 달라지는 법이다.

“제가 공범처럼 느껴지겠지만 저도 사진만 찍는 줄 알았어요. 그런 식으로 약을 탈 줄도 몰랐고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는 생각도 못했어요. 나도 여잔데 그런 동영상이 다른 사람 손에 있는 게 찜찜하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빨리빨리 줄 거 주고, 동영상을 돌려받고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면 되잖아요.’

평상시에 카리스마로 그룹을 이끈다는 설이현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려고 할까.

이건 공개되면 치명적이긴 하다.

그냥 사진도 아니고 1시간 40분짜리 섹스 동영상에, 상대는 죽은 아버지가 입양한 피 안 섞인 여동생이다.

그것도 입양 무효 소송이 진행 중인 여동생.

스캔들 중의 스캔들이 될 것이다.

“누가.”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미간을 찡그린 채로 영주를 노려보며 이현이 입을 열었다.

짜증이 잔뜩 섞인 목소리였다.

“이 집에 들어오라고 허락을 했지? 내가 해 줬었나?”

“그건 아닙니다.”

“그러면 무단 침입이라고 봐도 좋은 거지?”

‘지금 상황에서 무단 침입 따질 때는 아닌데… 하여간에 성격 하고는…….’

“어떻게 처분을 내릴 건지는 조금 더 고민해 볼 테니까 일단 내 눈앞에서 사라져.”

코코아 컵을 내려놓은 이현이 선반을 열었다.

그리고 선반 안쪽 가득 들어 있는 약병 중에서 하나를 꺼내 약 몇 알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아마 두통약일 것이다.

지금 영주에게도 두통약은 필요하다.

하지만 약을 나눠 달라는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내가 나오라고 할 때까지 방에서 나오지 마. 지금부터는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알아들었어?”

‘왜 그래야 하지?’

아니, 대체 왜 그래야 하는 건데?

무슨 일을 복잡하게 하려고 그러는 걸까.

“그냥 설 사장님께 원하시는 것을 드리고 동영상을 받아서 폐기 처분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현명한…….”

“입 닥쳐.”

영주가 어깨를 움찔거렸다.

잊고 있었다.

그래, 이 남자는 포식자 중에서도 최상위 포식자다.

그런데 피식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아래쪽에 서식하고 있는 피식자에게 이런 꼴을 당했으니 기분이 얼마나 나쁘겠는가.

하필이면 그 섹스의 대상이 자신이라서 저 남자는 지금 극도로 험악한 기분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그 새끼부터 처리해야 하니까 그때까지 내 앞에서 얼쩡거리지 마.”

[처리.]

그 단어가 유난히 소름 끼친다.

설주원이 원하는 건 간단하다.

SC건설.

그 사장직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에 불과하다.

거기에 더해서 아파트나 빌라 한 채 정도. 설 회장이 물려준 전체 재산에 비하면 그야말로 개미 눈알만큼도 안 되는 것을 설주원은 바라고 있을 뿐이다.

그걸 줘 버리면 되는데, 이 남자는 그것도 주지 않을 생각인 것이 분명하다.

영주는 사람의 표정에서 그의 감정을 꽤 잘 읽는 편이다.

설이현은 지금 화가 나 있고, 설주원과 타협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둘 중에 누가 이길지는 모르겠지만 영주의 입장으로는 설주원이 이기는 것이 낫다.

***

“왜 전화를 안 받아, 정말.”

방으로 돌아온 영주가 주원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 받지 않는다.

벌써 수십 번째 통화를 시도했지만 지금은 아예 휴대폰의 전원을 꺼놓았다.

“돌아버리겠네.”

대체 뭘 어떻게 할 생각인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것만이라도 알면 속이 이렇게 답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 동영상은 나도 찍혔단 말이야, 이 인간아.”

정말 그걸 공개하진 않겠지?

“하아…….”

영주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그 새끼부터 처리해야 하니까.]

그 말이 아무래도 심상찮다.

‘어떻게 처리하려는 걸까. 설마 죽이는 건 아니겠지…….’

재벌가에서 사람 하나 죽이는 건 쉽지 않을까.

사고로 위장해서 사람 하나 한강으로 던지는 것쯤이야 아마 식은 죽 먹기일지도 모른다.

‘나도 그렇게 한강 다리에서 던지려나?’

모골이 송연해졌다.

[너한테 관심이 많아, 이현이가.]

설주원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

정말 관심이 많았으면 앞에서 얼쩡거리지 말라는 말은 안 했을 거다.

설주원이 착각한 거다.

관심이 많은 게 아니라 그냥 어쩌다 그 앞에서 얼쩡거린 것 때문에 짜증을 낸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같이 자 버렸네…….’

어찌 되었건 그 남자와 같이 잔 건 사실이다.

‘설마 임신이 되진 않겠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제 다리 사이의 상태를 보니 콘돔을 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 식으로 첫 경험을 하다니… 최악이야. 게다가 자칫 잘못하면 임신 주기인데…….’

아주 산 넘어 산이다.

어떻게 하면 일이 이렇게 꼬일 수 있을까.

제일 껄끄러운 남자와 잤고, 최악의 상황에서는 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할 수도 있고, 여기에 사정이 더 안 좋아지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도 있다.

‘자기 팔자 자기가 꼰다더니, 딱 내 꼴이네.’

설주원과 손을 잡는 게 아니었다.

물론 손을 잡은 게 아니라 강제로 질질 끌려왔지만, 어쨌든 죽어도 못한다고 버텼어야 했다.

그러지 못한 게 한이고, 엄마에게 나름 효도한다고 한 것이 이 꼴이 되어 버렸다.

띠링-.

그때 문자 음이 울렸다.

벌떡 일어난 영주가 얼른 발신자를 확인했다.

설주원이었다.

문자 내용을 볼 것도 없이 영주가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지금 문자를 보냈으니 전화를 받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뚜르르-. 뚜르르-.

수신음이 네 번이 지나기 전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이게 대체……!”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영주가 소리 지를 때였다.

[사, 살려 줘! 살려 줘 영주야!]

“여보세요?”

이게 무슨 소릴까? 살려 달라고?

농담으로 여기기엔 설주원의 목소리가 정말 절박하게 들렸다.

[살려 줘! 지금……!]

통화는 거기서 끊어졌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다시 걸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전원이 꺼져 있어…….]라는 멘트뿐이다.

“헉…….”

휴대폰을 내려놓는 영주의 손이 덜덜 떨렸다.

‘설마…….’

아니라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만약 예상이 맞다면?

[일단 그 새끼부터 처리해야 하니까.]

설이현이 설주원을 찾아냈나?

그래서 지금 설주원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갔다면?

설주원에게는 설이현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섹스 동영상이 있다.

그걸로 협박을 했지만 다른 곳에 퍼뜨리기도 전에 설이현이 보낸 사람들에게 잡혔다고 하면, 설이현은 설주원을 어떻게 할까.

자신의 약점을 쥔 위협거리를 설이현이 살려 둘까?

그럴 리가 없다.

증거는 당연히 없애고 만약에 있을 불미스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그 일을 아는 사람까지 전부 처리해 버릴 것이다.

그게 포식자의 방식이다.

이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설주원과, 영주 자신이다.

“설마 나까지 죽이지는…….”

식은땀이 등으로 흘렀다.

제 눈앞에서 그림을 찢고, 저를 위협하던 남자다.

조금 전에도 저를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던 남자가 아닌가.

설주원은 동영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은 그와 직접 잤다.

한마디로 목격자인 동시에 몸의 증인이다.

게다가 만약 자신이 임신이라도 하면? 그때는 사생아까지 생기게 되는데 설이현이 자신을 과연 가만히 내버려 둘까?

죽은 설 회장 때문에 십수 명의 혼외자식들이 집 안에 득실거리는 꼴을 봐왔고 설 회장이 죽자마자 그 혼외자식들을 전부 내쫓았던 설이현이, 혼외자식이라는 존재 자체를 경멸하는 설이현이 그에게 그런 자식이 생기는 걸 과연 보고만 있을까?

벌떡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온 영주가 창가로 걸어갔다.

창문에서는 정원이 훤히 보였다.

“저 사람들은…….”

마침 정원에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몇 명 들어서고 있었다.

‘누구지?’

지금 이 집에 들어온다는 건 이현이 불렀다는 뜻이다.

이현이 왜 저 사람들을 불렀을까.

뭘 하려고?

‘설마 날 어떻게 하려고…….’

설주원을 잡았으니 이제 남은 건 자신뿐이다.

자신의 입만 막으면 이 일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된다.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자신은 이런저런 이유로 설이현에게는 정말 치워 버리고 싶은 존재이리라.

치워 버리고 싶은 벌레는 직접 손으로 잡는 법이 없다.

타인의 손을 이용해서 아예 벌레를 처리하려는 것이 이현의 생각이라면,

‘도망쳐야 해.’

여기에 가만있다가는 바보처럼 당하고 만다.

지금은 무조건 도망칠 때다.

‘여기에 있으면 안 돼.’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만 한 가지는 안다.

지금 당장 도망쳐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가방, 지갑.”

다행스러운 것은 어제 이 집에 들어오며 짐을 전혀 풀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방 안에 옷도 그대로, 지갑도 전부 그대로다.

‘엄마에겐 할 만큼 했으니까. 나도 노력했어.’

결과가 바란 것처럼 되돌아오지 않았지만 자신도 할 만큼 했다.

이 정도로 노력한 딸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라. 아마 없을 거다.

그러니까 자신이 말없이 사라져도 엄마는 이해할 것이다.

이해 못해 주셔도 상관없다.

띠링-.

다시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설주원인가 싶어 얼른 휴대폰을 확인한 영주가 크게 실망했다.

[설영주 씨, 1차 서류 전형에 합격하셨음을 알려드립니다. 2차 면접은…….]

지방의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를 구하는 구인에 1차 통과했다는 문자였다.

‘난 되는 일이 없구나…….’

만약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기뻐하며 면접을 보러 갔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설주원과 손을 잡지 않았더라면 적어도 다른 갤러리 큐레이터의 길은 열렸는데 결국 그 자리도 제 발로 걷어찬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앞으로 넘어졌는데 뒤통수가 깨진 격이랄까.

“도망이나 치자.”

지금은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일단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가방을 둘러멘 영주가 몰래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층계를 내려가 아래층을 가로질러 현관을 빠져나가는 것에 성공했다.

지키는 사람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택에서 빠져나온 영주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그리고 큰길로 나와 가장 먼저 본 택시를 잡아타고 그곳을 떠났다.

설이현과 1시간 40분에 걸친 섹스를 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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