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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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피-1
시작.
“폐하!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저는 북악신을 섬기는 신녀이옵니다!”
병사들에 의해 끌려나오며 여인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그러나 그녀를 끌고 내려가는 병사들의 손에 자비는 없었다.
“폐하! 폐하! 제게 이러시면 북악신께서 노하실 것입니다!”
신당에서 끌려 나와 계단 아래까지 내려온 여인이 차디 찬 돌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폐하-!”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나는 신녀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계단 위에 남아있던 병사들이 신당에 불을 붙이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그곳은 북악신의 신당이옵니다! 저주를 받으실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신녀가 목이 터져라 외쳐도 병사들은 신당에 불을 지르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시뻘건 불길을 일으키며 타들어가는 신당을 바라보던 신녀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마침내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던 신녀가 신당이 타들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황제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신녀의 눈동자에는 형언할 수 없는 광기가 가득 물들어 있었다.
“저주를 받을 것이다. 북악신의 신당을 불태운 그 벌을 너와 네 자손이 받게 될 것이다. 머잖아 태어날 네 자식은 딸이리라.”
황제를 똑바로 바라보며 신녀가 섬뜩한 얼굴로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저주를 읊어갔다.
“네 평생에 자손은 그 딸 하나로 끝날 것이며, 네 딸은 초경을 하는 그때부터 시작하여 죽는 날까지 평생 음란한 몸을 가지고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다른 처녀들이 달거리를 할 때 네 딸은 음란한 광기가 발동하여 사내를 갈구하게 될 것이고, 네 딸은 발정난 개처럼 사내들을 끌어들일 것이며, 음탕한 창녀처럼 이 사내 저 사내에게 다리를 벌리고 그 씨를 받을 것이다.
네 마지막 자손인 네 딸은 음탕한 창녀로 죽을 것이니 그것이 네 죄의 대가다. 네가 이루어 놓은 모든 것들은 네 딸의 대를 넘어가지 못하고 끝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네가 피와 시체로 쌓아올린 모든 것은 다른 자들에게 넘어가게 될 것이다!
네 딸에게 내려진 저주는 네 딸이 그 손으로 너를 죽이지 않는 이상은 풀리지 않을 것이다! 무슨 짓을 해도, 풀리지 않는 저주가 될 것이다! 이 놈!”
그렇게 저주의 말을 퍼 부운 신녀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미친 사람처럼 신당을 향해 뛰어 올라갔다.
“잡아라!”
“잡아!”
그러나 병사들이 그녀를 붙잡기 전에 신녀는 불타는 신당 안으로 뛰어 들었다.
병사들은 무섭게 타오르는 신당 안으로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불길은 모든 것을 집어 삼키고 활활 거세게 타올랐고 이미 기둥과 지붕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곳에 있던 병사들이 본 것은 뱀의 혀처럼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춤을 추듯 미쳐 날뛰고 있는 신녀의 그림자였다.
그리고 이내 그것은 부서지는 불덩이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천박한 것. 감히 저주를 퍼붓다니. 사지를 자르지 못한 것이 한이로다.”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던 젊은 황제가 미간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망한 나라의 신 따위, 멸망하는 나라와 함께 사라지는 것이 옳은 법.”
아직도 신당을 불타오르고 있었다.
지금 불타고 있는 신당은 북연의 왕실에서 건국 이래로 섬기고 있는 북악신의 신당이다.
그리고 이 젊은 황제는 북연이 아니라 남월의 황제다.
얼마 전 북연의 국경을 무너뜨리고 도성까지 진격해와 끝끝내 북연의 도성을 함락하고 정복자 된 젊은 패왕이기도 했다.
“전부 다 타고 나면 남은 재를 치우고 그 자리에 내 동상을 세우거라.”
이 젊은 황제는 야심이 많다.
서쪽의 동악을 시작으로 황추, 서촉, 이곳 북연을 정복하고 아직 남아있는 모든 땅을 다 정복하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을 기세로 정복 전쟁을 하는 중이다.
이 젊은 남월의 황제는 그가 정복하는 곳마다 그곳 황실에서 섬기는 신의 신당을 허물고 그 자리에 자신의 동상을 세운다.
신이 아니라 자신이 그 땅을 다스린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이기 위함인 것이다.
이 젊은 정복자는 무서운 것도 없고 두려워하는 것도 없다. 그저 거침없는 파도처럼 쓰러뜨리고 죽이고 정복할 뿐이다.
지금 북악신의 신녀가 저를 저주했지만 그런 저주 따위도 믿지 않는다. 북악신이라는 것이 정말로 있다면 북연이 이런 식으로 무너졌겠는가.
자신의 군대도 막아주지 못하는 신 따위를 젊은 황제는 믿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런 신을 믿느니 차라리 자신의 칼을 믿는 것이 낫다.
게다가 [머잖아 태어날 딸]이라니.
“우습군.”
이 젊은 패왕에게는 아직 황후가 없다. 황후가 없으니 당연히 태어날 자식도 없다.
그런데 태어날 딸 운운하며 저주를 퍼부어댄 신녀가 가소로운 것이다.
“황궁에서 북연 왕실의 흔적을 지우고 왕족들을 끌어내어 전부 목을 쳐라. 그리고 북연의 신을 섬기는 자들은 모두 참형에 처한다고 하거라.
이제부터 북연이 섬겨야 할 신은 북악신이 아니라 바로 남월의 황제라는 것을 모두가 똑똑히 알 수 있게 말이다.”
자신만만한 태도로 병사들에게 명령한 젊은 정복자가 불 타는 신당을 뒤로하고 왕궁으로 돌아왔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북연의 왕과 왕비가 거하던 침전은 이제 이 젊은 황제의 것이다.
“화려하군.”
황제는 북연의 화려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북연은 동서남북에 퍼져 있는 모든 나라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나라다.
오래 된 역사만큼이나 쌓아올린 전통도 화려하고 섬세할뿐더러 내탕고 안에 쌓아둔 황금을 비롯한 보물들 역시 다른 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가장 기름지고 비옥한 땅을 가진 부유한 북연], [신의 가호가 내리는 땅]이라는 수식어가 과하지 않을 정도로 북연은 남월과 비교해서 모든 것이 넘쳐났다.
이 젊은 황제의 나라 남월은 척박한 땅에 추운 기후를 가지고 있다.
변방의 소국에 불과했던 남월에서 태어나고 자란 황제는 어려서부터 독하게 이를 갈았다.
주변의 비옥한 땅들을 전부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고, 은과 금이 넘쳐나는 땅을 전부 정복하고 소유하겠다고 이를 갈았고, 지금 마침내 그걸 이루었다.
동악과 황추, 서촉을 정복하고 스스로 [황제]가 된 이후 이제 남아있는 땅은 이곳 북연 밖에 없었다.
이제 북연마저도 손에 넣었으니 동쪽의 사막과 서쪽의 바다에 갇힌 이 대륙 안에 더는 정복할 땅이 남지 않았다.
동서남북 모든 땅이 이 젊은 황제의 소유다.
“도읍을 이곳으로 옮겨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화려한 침전의 장식들을 손으로 만지며 황제가 중얼거렸다.
“남월은 너무 춥고 겨울이 기니 내 제국의 도읍으로는 걸맞지 않지. 게다가 남월의 도성에 황궁을 다시 지어 올리는 것보다는 이곳 북연 왕궁을 내 황궁으로 고치는 것이 훨씬 낫겠어.”
황제는 이곳 북연이 마음에 들었다. 이 땅의 기후도 마음에 들었고 넓고 화려한 황궁도 마음에 들었다.
이 왕궁에 비하면 남월의 황궁은 초라하고 작다.
남월의 목수들에 비해 북연의 목수들이 월등하게 솜씨가 좋은 것도 인정한다.
남월에서 나는 목재로 남월의 목수들이 황궁을 새로 짓는다 하더라도 이런 왕궁은 짓지 못할 것이다.
견물생심이라 했다.
보기 전에는 그럴 마음이 없었지만 북연의 비옥함과 도성 번화가의 화려함, 넓고 거대한 왕궁의 화려함을 보자 욕심이 끝도 없이 올라오고 있다.
하다 못해서 북연의 사람들은 입고 다니는 옷조차 남월 사람들보다 더 화려하다.
“어차피 이곳도 이제부터는 내가 다스리는 나라가 된 것이니 도읍을 이곳으로 옮기고 이 왕궁을 내 황궁으로 바꿔서 이곳에서 사는 것도 좋지. 남월로 돌아가기 보다는.”
남월을 떠나 정복 전쟁을 시작한지 벌써 7개월이나 지났다.
물론 전쟁은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지만 이 젊은 정복자가 직접 친정에 나선 것이 7개월 전이다.
떠나온 남월이 그립지는 않다.
그곳은 시작이 되어준 곳이지만 그 좁고 척박한 땅에 만족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계집을 들이거라.”
북연의 왕궁에는 미모가 빼어난 여인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궁녀들 가운데서도 미인이 많았지만 죽은 북연 왕의 후궁들 중에도 미인은 많았다.
왕족을 전부 목을 쳐서 죽이라고 했지만 후궁들은 제외다. 물론 왕비와 공주들 역시 제외다. 목을 쳐서 죽이는 왕족은 사내들에 국한된다.
“계집까지 정복해야 정말 모든 것을 정복한 것이지.”
이미 동악, 황추, 서촉을 정복했을 때도 그곳 왕의 왕비와 공주들, 그리고 후궁들을 전부 겁탈했었다.
그 중에는 몸이 더럽혀지기 전에 스스로 목을 매고 죽은 계집도 있고 겁탈당한 후에 혀를 깨물고 죽은 계집도 있지만 체념하고 순순히 받아들인 계집들도 많다.
북연의 왕궁도 마찬가지다.
“오늘은 일단 시작으로 왕비부터 들이거라. 내가 보니 북연 왕의 왕비가 제법 미색이 있더구나.”
목이 잘린 왕의 옆에서 대성통곡을 하던 왕비는 한 눈에 봐도 절색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미인이었다.
오늘 지아비가 목이 잘린 여인을 강제로 짓누르고 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지독한 쾌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런 것 역시 정복자가 누리는, 승자가 누리는 즐거움이다. 승자는 모든 것을 누리고 패자는 모든 것을 빼앗긴다.
다 그런 것 아닌가. 이런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세상에 신은 없다.
“북악신?”
황제가 코웃음을 쳤다.
정말 북악신이 있다면 지금까지 몇 백년이나 그를 섬긴 이 북연의 왕조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만 있다는 것이 우스울 뿐이다.
돕지 못하는 신은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그저, 움직이지 못하는 허수아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
남월의 젊은 황제 진양이 북연의 왕궁을 황궁으로 삼은 지 석 달이 지났을 때였다.
“누가 왔다고?”
대낮부터 침상에서 궁녀 두 명을 끌어안고 뒹굴던 진양이 뜻밖의 보고에 미간을 찡그렸다.
남월에서 그를 찾아왔다는 사람은 다름아닌 남월 황궁의 궁녀였다.
야장의를 대충 걸치고 침전의 밖으로 나온 진양이 낯익은 궁녀를 보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궁녀는 품에 강보를 안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냐? 그 아기는 또 무엇이냐?”
남월의 황궁에서 진양 자신의 누이인 주령 공주를 섬기는 궁녀다.
“공주 마마께서 소인에게 폐하를 꼭 만나 뵈어야 한다고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유언?”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유언?
“설마 주령이 죽은 것이냐?”
누이가 어려서부터 병약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렇게 젊은 나이에 죽을 줄은 몰랐다.
“대체 무슨 병이 걸렸기에...”
“애기씨 마마를 낳으시다 산후열이 심하여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눈을 감기 전에 소인에게 꼭 애기씨 마마를 폐하께 모셔다 드려야 한다고 그리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설마 그 아이가 주령의 아이냐?”
“네, 폐하.”
궁녀에게 가까이 다가간 진양이 강보에 싸인 아기를 받아서 품에 안았다.
누이의 아이다. 그러나 이 아이의 아비가 누군지 진양은 안다. 자신과 누이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인 것이다.
진양과 주령은 어려서부터 우애가 각별한 남매였었다.
그 각별한 우애는 점점 비틀린 애정으로 변했고 급기야는 진양은 제 친 누이인 주령을 침상으로 끌어들여 기어이 범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저항하던 주령도 한 번 몸을 빼앗기자 그 다음부터는 순순히 관계를 가지는 것을 허락했었고 정복 전쟁을 떠나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회임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었다.
일단 북연에 남아있는 잔당들을 전부 처리하고 완벽하게 이곳을 도읍으로 완성하게 되면 주령도 이곳으로 데려올 참이었다.
지금까지 품은 계집들은 수백명이 넘지만 제 황후로는 주령 외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과 한 가지에서 나고 피를 나눠가진 주령만이 제 황후에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녀가 죽었다.
그것도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
“내 아이라니...”
자세히 들여다보니 눈매가 주령을 닮았다. 주령을 꼭 닮은 딸이다.
10개월 전에 남월을 떠나왔고 그때 막 회임이 되었다면 이 아이는 자신의 아이가 맞을 것이다.
“다른 말은 남기지 않았느냐?”
아이를 품에 안고 진양이 궁녀를 쳐다봤다.
“소중한 아이라는 말씀만 남기셨습니다.”
“소중한 아이...”
보지 않아도 떠올릴 수 있다.
주령이 이 아이를 품에 안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그리고 죽어가며 어떤 표정으로 이 아이를 봤을지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어도 떠올릴 수 있다.
소중한 아이.
그녀가 이 아이를 소중한 아이라고 불렀다면 자신에게도 이 아이는 소중한 아이다.
첫 딸이자 유일하게 사랑한 누이가 낳은 아이다.
“내 장녀에게 어떤 이름을 붙여야하나...”
그때 문득 진양의 머릿속에 불속으로 떠나들기 전에 북악신당의 신녀가 외치던 저주가 떠올랐다.
[저주를 받을 것이다. 북악신의 신당을 불태운 그 벌을 너와 네 자손이 받게 될 것이다.
머잖아 태어날 네 자식은 딸이리라.
네 평생에 자손은 그 딸 하나로 끝날 것이며, 네 딸은 초경을 하는 그때부터 시작하여 죽는 날까지 평생 음란한 몸을 가지고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다른 처녀들이 달거리를 할 때 네 딸은 음란한 광기가 발동하여 사내를 갈구하게 될 것이고, 네 딸은 발정난 개처럼 사내들을 끌어들일 것이며, 음탕한 창녀처럼 이 사내 저 사내에게 다리를 벌리고 그 씨를 받을 것이다.
네 마지막 자손인 네 딸은 음탕한 창녀로 죽을 것이니 그것이 네 죄의 대가다.
네가 이루어 놓은 모든 것들은 네 딸의 대를 넘어가지 못하고 끝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네가 피와 시체로 쌓아올린 모든 것은 다른 자들에게 넘어가게 될 것이다!]
‘설마, 아니겠지.’
그 저주를 들을 때만 하더라도 [머잖아 태어날 네 자식은 딸이리라] 그 말을 그저 헛소리로 치부했었다.
그런데 지금 제 품에 딸이 안겨 있다.
머잖아 태어날 자식.
아직 이 아이가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였다.
자신의 첫 자식이 딸일지 아들일지 그 신녀는 어떻게 알았을까.
‘우연이겠지.’
무엇보다 이 딸 아이가 자신의 유일한 자식일 리가 없다.
[네 평생에 자손은 그 딸 하나로 끝날 것이며.]
그럴 리가 없다.
이미 이 황궁에서 승은을 내린 궁녀들 중에 회임을 한 궁녀들만 열 명이 넘는다.
그 궁녀들이 지금 회임한 자식들만 낳아도 열 명이 넘는 자식이 태어난다.
‘헛소리야, 헛소리.’
진양이 머리를 저으며 생각을 떨쳐냈다. 그런 저주 따위가 들어맞을 리가 없다.
“병사들을 보내 내 누이의 시신을 이곳으로 옮겨오라고 해라. 이곳에 내 누이의 봉분을 가장 크게 만들어줄 것이다.”
추운 남월 땅에 누이를 묻을 수는 없다. 벌써 묻었다면 땅을 파내고 다시 관에 담아 실어오거라.”
죽은 사람은 다시 살릴 수 없다.
누이를 잃은 것은 마음 아픈 일이지만 아마 그 슬픔은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식이 남았으니 말이다.
“네 이름은 해원이라고 부르자구나.”
강보에서 쌕쌕거리는 숨을 내쉬며 잠든 아이를 들려다보며 진양이 그렇게 말했다.
“그래, 내 딸 해원이.”
*
북연에서 들인 후궁들이 자식을 낳아줄 거라는 진양의 예상은 전부 빗나갔다.
수십명의 후궁들이 진양의 자식을 회임했지만 단 한 명도 세상에 태어나지는 못했다.
열이며 열, 백이면 백 전부 태어나기 전에 유산되던가 운이 좋아 태어나더라도 태어나자마자 바로 죽어버렸다.
마치 북악신당의 신녀의 저주가 들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황제 진양에게는 자식이 태어나지 않았다.
오년이 흘러도, 십년이 흘러도 자식은 태어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남월의 황제 진양의 유일한 자식은 그가 누이에게서 낳은 공주 해원이 유일했다.
황제 진양이 피와 시체의 산을 쌓아가며 이룩한 거대한 정복국을 이어받을 유일한 핏줄이 바로 해원 공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