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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그날부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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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695 회 작성일 24-12-13 09:3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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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부터-2

 

지헌도 잠이 안 오긴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한참이 지나도 잠이 든 기색이 없었다. 소파 위에서 뒤척이는 소리만 간간이 났다. 

내가 뒤척일 때도 숨죽인 채 나에게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는 기색이 느껴졌다. 서로의 숨소리를 느끼며 긴장감이 더욱 고조되었다.

제법이네. 불을 끄자마자 덮칠 줄 알았더니.

지헌의 체취가 배어 있는 곳에 누워 있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뭔가 해야 할 것을 건너뛴 듯한 싱숭생숭한 기분. 이럴 때 다른 여자들은 어떻게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어색하고 야릇하고 할 듯 말 듯 간질거리는 분위기를 참을 수 없어, 이불을 밀치고 일어났다.

“이리로 올래?”

거실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밤새도록 이렇게 미묘한 분위기 속에 있느니 내가 먼저 판을 까는 게 나았다.

“…….”

잠깐 침묵이 흐르고 지헌이 저벅저벅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불을 들치고 내가 옆으로 이동하자 그가 들어왔다.

무릎걸음으로 침대에 선 지헌은 나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티셔츠를 위로 벗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달빛에 그의 상체 실루엣이 드러났다. 

옷으로 감싸고 있어서 몰랐는데 널찍이 벌어진 어깨에 근육이 붙은 탄탄한 체격이었다. 움직일 때마다 근육이 물결치면서 전체적으로는 몸 선이 예뻤다. 

남자치고 냄새도 좋고. 이 정도면 하룻밤 유희로 나쁘지 않다.

지헌은 이어서 바지 버클을 풀고 속옷과 같이 끌어 내렸다. 그의 성기는 이미 반쯤 발기해 나를 향하고 있었다. 느긋이 지헌의 몸을 감상하던 나는 떨떠름해서 물었다.

“이거 왜 이래. 내가 뭘 어쨌다고.”

“왜 한 게 없어. 목욕했잖아. 밖에서 물소리 듣는데 침이 바짝바짝 마르더라.”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내가 너 안 불렀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궁금해?”

묘하게 웃는 모습에 손을 저었다.

“아니야. 됐어. 말하지 마. 알고 싶지 않다.”

“화장실에서 너 생각하면서 혼자 했겠지.”

찌푸린 내 얼굴에 지헌은 더욱 야릇하게 웃었다.

“사실 이미 했어. 아까 샤워하러 들어갔을 때 네 향기가 나는데 참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누가 얘보고 반듯하다고 했어. 사실 누구보다 야하게 놀 준비가 된 인간이었다. 

속으로는 날 어떻게 한번 해 보고 싶어서 눈이 벌겠으면서 겉으로는 관심 없는 척 감쪽같이 점잔 떨었겠다. 엉큼하기 짝이 없다.

내 발로 정지헌 침대에 뛰어들었으면서도 어쩐지 속은 기분이 들었다. 홀린다는 자각도 없이 지헌에게 넘어갔다.

내 표정이 떨떠름할수록 지헌은 예상외의 횡재에 신나 보였다. 가볍게 내 위로 올라타서 내 양옆을 손으로 지탱하며 상체를 굽혔다. 

순간 위압적인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흠칫 몸을 긴장하자 지헌이 작게 웃었다.

“괜찮아. 긴장하지 마.”

그러곤 부드럽게 나를 감싸며 입술을 겹쳐 왔다. 입술에 닿는 느낌이 무척이나 포근했다. 점점 긴장이 풀리면서 온몸에 힘이 빠졌다. 

혀끝으로 할짝대다가 아랫입술을 부드럽게 빨아들이는 게 무척 능숙했다.

지헌은 키스를 이어 가면서 헐렁한 바지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지헌의 손은 바로 보드라운 속살에 닿았다.

놀란 듯 지헌의 눈이 조금 커졌다.

“너… 속옷 안 입었어?”

“응.”

“언제부터? 아침에 학원 올 때부터?”

놀란 듯 되묻는데, 스스로 상상하고 거기에 자극받은 듯 상당히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미친놈. 역시 변태였어.

“미쳤어? 샤워하고 벗은 거야.”

바로 쏴붙였다.

“고마워.”

웃으며 냉큼 받아치는데 어쩐지 좀 불길하다. 나 오늘 밤 여기 있는 게 과연 잘하는 짓일까. 그런 생각도 오래가지 못했다.

지헌의 손가락이 갈라진 틈 사이를 만지작거렸다. 간질거리는 느낌과 함께 투명한 분비물이 흘러내렸다. 

사실 샤워할 때부터 묘한 기대감이 나를 흥분시켰다. 금세 젖어 드는 다리 사이를 문지르며 지헌이 물었다.

“기분이 어때?”

“글쎄.”

“좀 달아올라?”

“계속해 봐.”

붉어진 얼굴로 새침하게 대꾸하자 지헌은 피식 웃으며 예고도 없이 구멍 속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빠듯한 손가락이 구멍 속을 드나들고 그때마다 걸리적거리는 손가락 마디의 굵기가 생생히 느껴졌다. 

지헌은 손가락으로 질 속을 휘저으면서 다른 손가락으로 달아오른 살점을 비틀었다. 날카로운 쾌감에 숨을 뱉어 내며 고개를 젖혔다.

“응… 흐응.”

문지르고 비틀리는 감각이 자극적이었다. 지헌의 손길 아래서 애액이 넘쳐흘렀다. 참다못해 손으로 이불보를 꽉 움켜쥐고 비틀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흐읍. 응, 나….”

“괜찮아.”

지헌은 내 손에서 이불보를 빼앗고 내 손을 깍지 껴 잡았다. 그리고 내게 몸을 밀착시킨 채 나와 같은 리듬으로 몸을 흔들었다. 

질퍽하게 문지르는 지헌의 손길도, 얇은 천을 사이에 두고 유두에 비벼지는 천의 감촉도 감질나서 미칠 것 같았다.

“흐으응… 흐으.”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자극적인 흥분에 빠져들었다. 온몸이 후끈 달아오르고 하체가 저절로 들썩였다.

“너 너무 예뻐서 미칠 것 같아.”

그런 나를 안고 지헌은 귓가에 속삭였다.

“다리 좀 벌려 봐. 응? 제발.”

초점이 흐릿한 눈으로 양쪽 무릎을 잡고 다리를 위로 올렸다. 다리 틈새가 완전히 벌어지고 빨간 속살이 지헌의 눈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투명한 애액에 젖어 반짝이는 속살은 누가 보더라도 흥분할 만큼 자극적인 모습이었다. 

지헌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무척 흥분한 얼굴로 속삭였다.

“내가 너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알아?”

아래를 헤집는 시선에 알 수 없는 흥분이 밀려왔다.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지헌을 보았다. 

얘가 이렇게 야한 눈빛도 할 수 있는 애였구나. 정지헌한테 이런 눈빛을 볼 줄이야. 시선만으로 다리 사이가 저릿저릿했다. 나도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알아.”

“진짜?”

“그래. 너 맨날 나 잡아먹을 듯이 쳐다봤잖아.”

모를 수가 없다. 내가 지나갈 때마다 지헌은 잔뜩 굶주린 짐승처럼 나를 노려보았다. 그때마다 쭉 소름이 끼치면서 말할 수 없이 불쾌했다. 

내가 질색을 하고 지헌을 피해 다닌 이유였다.

지헌도 예전 기억을 떠올린 듯했다. 그렇게 새침하게 굴더니 지금은 지헌의 손길 아래서 쾌락에 젖어 흐느끼고 있었다. 

지헌은 물기에 젖은 도톰한 음순을 양쪽으로 활짝 벌리고 보란 듯이 고개를 숙여 젖은 틈새를 세차게 빨아들였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루머가 많은 거로 보아 여자와 무관하게 사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욕망에 충실한 인간인 줄은 몰랐다. 

단정하고 반듯해 보이는 얼굴이 왠지 욕망에도 담백할 것처럼 보였었다. 여자와 즐기기는 하되 집요한 스타일처럼은 안 보였는데.

나는 내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고 있는 지헌을 내려다보았다. 

지헌은 내 양쪽 허벅지를 움켜쥐고 물에 젖은 비누처럼 미끈거리는 질 입구를 탐욕스럽게 빨았다. 무서울 정도로 집중하는 모습이 동물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여자에게 이런 거까지 해 주는구나. 여자에게 시켰으면 시켰지, 자기가 먼저 서비스해 줄 인간처럼은 안 보였는데. 

잠자리에서 이기적인 인간은 아니었다. 그래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건가.

기분이 묘했다. 인기 많고 잘난 정지헌이 내 아래에 엎드려 있는 모습이 묘한 희열감을 주었다. 

그렇게 잘난 애가 개처럼 엎드려 내 가랑이 사이를 핥는 모습에 비틀린 우월감이 들었다. 

나는 쾌락과 함께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며 고개를 젖히고 나른히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갈라진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혀는 음란하게 움직였다. 튀어나온 살점을 비비적거리고 젖은 입구를 파고들었다.

“으… 읍… 흐아.”

몸 안에 고인 열기가 점점 커졌다. 달아오른 숨소리를 내며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흐읍… 으읏, 으응, 그만, 그만해.”

하지 말라면서 내 손은 지헌을 가까이 잡아당겼다. 열에 들떠 헐떡이는 신음은 내 귀에도 너무 교태롭게 들렸다.

좋아하지 않은 상대에게 아래를 애무당하면서 희열을 느끼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지헌에게 아래를 빨리면서 나는 명백히 흥분했다. 온 감각이 마비되고 쾌락 속에서 허우적댔다. 그럴수록 지헌은 새빨간 보석을 더욱 맹렬히 빨아 댔다.

“하윽… 하으으… 흐읍.”

견디기 힘든 쾌감에 나는 거의 울부짖다시피 몸부림쳤다.

그런 나를 보며 지헌도 극도의 흥분을 느낀 듯했다. 내게 하체를 바짝 밀착시킨 채 미친 듯이 비벼 대다가 내 목덜미를 잡고 거칠게 키스해 왔다. 

지헌의 혀는 내 입 속을 강하게 휘저었다.

나는 입을 벌리고 간신히 숨만 내쉬었다. 머릿속이 몽롱하고 온몸이 기진맥진해서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내 위에 엎드린 채 거친 숨을 몰아쉬던 지헌은 땀에 젖은 내 머리카락을 넘겨 주고 다정히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지헌의 시선에는 넌 이제 내 여자가 됐다는 거친 만족감이 배어 있었다. 드디어 원하는 여자를 가진 것 같은 묘하게 여유로운 지헌의 태도가 거슬렸다.

지헌의 성기 끝에서는 투명한 액체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지헌은 펄떡이는 성기를 빠듯하게 손에 쥐고 내게 몸을 밀착시켰다. 

다른 손은 길게 뻗어 사이드 테이블을 더듬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콘돔을 꺼내는 모양이었다.

“잠깐.”

흐트러진 숨을 몰아쉬며 지헌의 팔을 제지했다.

“끝까지 하고 싶진 않은데.”

“…원하시는 대로.”

잠깐 멈칫한 지헌은 산뜻하게 물러나는가 싶더니 발기한 성기를 나에게 조준하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뭐야.”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삽입만 안 하면 되잖아? 그냥 좀 비비는 것뿐이야. 이 정도는 괜찮지?”

“…….”

지헌은 내 어깨를 지그시,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힘으로 눌렀다.

본인도 적당한 선에서 즐기시겠다? 여차하면 바로 발을 빼려고 몸을 긴장시킨 채 지헌이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지헌은 질퍽하게 젖은 틈새를 자신의 성기로 느릿느릿 문질렀다. 당황하고 어색했으나 한편으로 호기심이 밀려왔다.

이래도 되는 걸까. 머릿속이 어지러운데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팽팽하게 발기한 살덩이를 큼직한 손으로 움켜쥐고 진득하게 아랫도리를 맞추는 모습이 무척 음란해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자꾸만 목이 말라 바싹 마른 입술을 연신 혀로 축였다. 

지헌은 자신의 아랫도리를 느릿하게 애무하듯이 만지며 홀린 듯 내 혀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갈구하는 눈빛이었다.

“절대 안 돼.”

선을 긋는 말에 아쉬운 얼굴로 내 손을 자신의 중심부로 이끌었다. 나는 그것을 어설프게 더듬었다. 

그런 손길이라도 좋은지 정지헌 숨소리가 한층 더 거칠어졌다. 그의 성기도 눈에 띄게 부풀어 올라서 펄떡거렸다.

내 손길 아래서 원초적으로 변해 가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흘끔 정지헌 얼굴을 확인하며 지헌의 신음이 커지는 부위를 더 자극적으로 만져 주었다. 

그러자 지헌은 눈을 지그시 감고 거친 숨소리를 내었다.

“으, 후으.”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쾌락에 집중하는 모습이 섹시했다. 어느새 후끈 달아올라 내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성기는 크게 부풀어 올라 울퉁불퉁 혈관이 드러났다. 지헌은 그걸 나에게 마구 비벼 대면서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달아오른 성기를 내 몸속에 꽂아 넣고 싶어 안달 난 몸짓이었다.

곧 사정할 것 같은데? 과연 저걸 어디에 발사할 것인가.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뭔가 양도 장난 아니게 많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불 위로 싸면 일이 커질 거 같은데. 하긴 알 게 뭐야, 내 이불도 아닌데. 본인이 알아서 해결하겠지.

여자랑 있으면 항상 저렇게 커지는 걸까. 본인도 참 곤란하겠다.

대중없이 생각을 이어 가는데 흐윽, 하고 억누른 숨소리와 함께 손바닥이 뜨듯해지면서 시큼한 냄새가 확 퍼졌다.

정지헌은 변태스럽게도 울컥울컥 싸지르면서 내 손을 붙들고 손가락 사이사이 성기를 끼우고 비벼 댔다. 

어찌나 야무지게 문질러 대는지, 손 하나 갖고 음란하게 스킨십할 수 있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싶었다.

나는 어이없는 시선을 지헌에게 보냈다. 손 전체가 정액 범벅이었다.

약간 선비과라고 해야 하나, 평상시 단정한 얼굴을 보면 흥분한 모습이 상상이 안 됐는데, 생각보다 더 욕망에 솔직한 스타일이었다. 

보다 보면 나도 같이 몸이 뜨거워졌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모르게 이성을 잃어버렸다.

내 손을 그 꼴로 만들어 놓고 지헌은 그제야 만족한 듯 산뜻한 얼굴로 머리를 쓸어 올리며 뒤로 물러났다.

나는 손가락을 타고 끈적하게 흘러내리는 백탁액을 찡그린 얼굴로 바라보았다. 무슨 양이 이렇게 많아. 뭐든 한번 하면 끝장을 보는구나. 

진짜 삽입하지 않기를 잘했다.

속으로 욕하며 정액으로 범벅된 손을 지헌이 벗어 던진 티셔츠에 닦았다. 손톱 사이까지 끈적한 액체가 스며든 것 같아 찝찝했다.

지헌은 나를 흘끔 쳐다보며 길게 손을 뻗어 선반 위에서 티슈를 뽑아 들었다.

“손 이리 줘 봐.”

그러곤 축축이 젖은 내 손을 구석구석 닦아 주었다. 가끔 싸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매너가 영 꽝인 놈은 아니었다.

별안간 지헌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남자가 싫은 건 아닌가 봐?”

“뭐?”

“항상 궁금했거든. 남자가 싫은 건지, 내가 싫은 건지.”

냄새나고 짜증 나게 질척대는 남자들이 싫을 뿐이지, 키 크고 잘생기고 깔끔한 남자면 싫을 이유가 없다.

“남자가 싫은 건 아냐.”

다 닦았나? 깨끗해진 손을 들여다보다가 본능적으로 손바닥을 코에 갖다 대며 킁킁 냄새를 맡았다. 묵직한 냄새가 진동하는데 그게 생각보다 역하지 않아서 속으로 놀랐다. 

그러고 보니 아까 사정할 때도 냄새가 거슬리지 않았었지.

남자들 체취는 다 역한 거 아니었나? 왜 얘는 냄새가 거슬리지 않지? 승아 언니가 그랬나,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상대방 체취가 역하지 않고 향긋하다던데….

설마, 이 새끼가 내 운명의 상대?

감흥 없이 생각을 이어 가는데, 지헌이 내 턱을 틀어쥐고 마주 보게 돌렸다.

“그럼 내가 싫었던 거구나.”

얼굴은 웃고 있는데 꽉 깨문 어금니가 느껴졌다. 나는 해맑게 웃었다.

“말이 그렇게 되나?”

지헌도 가볍게 웃어넘겼다.

“사실 너 생각보다 솔직한 타입이라 놀랐어.”

“그래서 싫어?”

“설마. 그래서 더 마음에 들지. 올라오라고 하긴 했는데 확신은 없었거든.”

“난 TV 끄고 네가 먼저 달려들 줄 알았어.”

“망설이는 것 같길래 도망갈 기회를 준 거지.”

그러면서 부드럽게 눈초리를 접으며 웃는데 묘하게 시선이 갔다. 여유 있으면서 다정해 보인달까. 

이렇게 보니 여자들에게 왜 인기가 많은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몸에 밴 매너도 좋으니까.

물론 다정한 얼굴과 달리 아래는 흉흉하게 세우고 있었지만.

“근데 있잖아. 밤이라 내가 좀 감성적인가 봐.”

“왜?”

“오늘따라 너 좀 잘생겨 보여.”

그 말에 지헌이 눈초리를 접으며 더 환하게 웃었다. 그런 말은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을 것 같은데, 나 하나 더해진다고 뭐가 그리 좋을까. 

어쨌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모습이 나쁘진 않았다. 무표정할 땐 다소 냉소적으로 보일 때도 있었는데, 웃으니까 인상이 훨씬 부드러웠다.

“고마워. 지겹게 듣는 말인데 너한테 들으니까 진짜 같고 감회가 새롭네. 그럼 우리 이제 자주 밤에 볼래?”

지헌이 싱긋 웃으며 제안했다. 마치 다음 주 점심이나 같이하자는 듯 가벼운 어투였다.

과연 또 볼 일이 있으려나? 나는 고개를 기웃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우리 원나잇이잖아.”

삽입은 안 했으니 따지고 보면 원나잇도 아닌가. 뭔가 헷갈린다. 그렇다고 아무 일 없었다고 앙큼 떨기에는 너무 진한 스킨십이었다.

순간 이런 관계도 원나잇으로 카운트되냐고 지헌에게 진지하게 물어볼 뻔했다. 뭔가 정상이 아니다… 이런 대화. 

물론 지헌하고 한 짓도 정상이 아니긴 하지만.

“다시 자면 원나잇 아니지.”

지헌이 명쾌히 해답을 내놓았다.

그렇지. 원나잇이 문제면 다시 자면 원나잇 아니지. 고개를 끄덕이다가 휙 고개를 돌려 물음을 던졌다.

“어… 나랑 다시 자게?”

“너만 좋다면.”

“글쎄….”

나는 애매하게 웃었다. 아침에 물어봤다면 딱 잘라 거절했을 텐데. 썩 내키진 않지만 일단 대답은 유보했다. 굳이 좋은 분위기 깨고 싶지도 않고, 그냥 그때 기분이 그랬다. 다시 한번 더 해도 좋고, 아니어도 딱히 상관은 없고.

지헌도 두 번 권하지 않았다. 역시 산뜻한 놈이었다. 여자가 한번 거절하면, 그래? 아니면 말고. 툭 자리에서 일어나 미련 없이 떠나 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적당히 즐기고 아침이 오기 전에 일어나야지, 했는데 어느새 맥주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주로 남 뒷말이었다. 수업에 불성실한 교수님 뒷말, 같이 수업 듣는 행시 수강생들 뒷말.

“걔네는 웃기더라. 합격하면 수강비 담합하는 학원부터 가만 안 두겠다고 맨날 이 갈면서 막상 합격하면 조용하더라. 그러니 바뀌는 것도 없지.”

둘 다 타 과, 타 시험 강의를 수강하면서 따돌림 아닌 따돌림을 당해 쌓인 게 많았다. 뒷말하면서 친해진 것인지, 진한 접촉을 해서 친해진 것인지 아까 치킨 먹을 때의 어색한 침묵이 감돌던 대화와는 딴판이었다.

이렇게 정지헌과 남 뒷말할 정도로 가까워질 줄은 몰랐는데. 몇 년간 친분이 있는 다은이와도 하지 않는 뒷말을 정지헌과는 스스럼없이 하고 있었다.

남녀 간 진한 스킨십이 서로 간 거리를 줄여 주는 걸까. 서로 타액을 나누고, 살갗을 비비고, 은밀한 영역을 공유한 효과가 대단했다.

우리는 맥주를 나눠 마시면서 대화를 이어 갔고 어느새 창밖은 희미하게 동이 터 오고 있었다. 뒤늦게 조금 자책감이 몰려왔다. 

너무 대책 없이 일을 저질렀나. 이거 소문나면 진짜 골치 아플 거 같은데.

내게 엉겨 붙어 있는 지헌을 슬쩍 밀어서 떼어 냈다.

“야.”

“응?”

“너 이거 비밀이야.”

“왜, 걱정돼? 나랑 이런 사이라고 소문날까 봐?”

“…….”

“하긴 이렇게 쉽게 침대로 뛰어들 줄 상상도 못 했어. 남자 싫어하는 줄 알았거든. 다들 알면 깜짝 놀라겠지.”

“너 소문내면 진짜 죽는다.”

뒤늦게 지헌의 멱살을 움켜쥐고 하나도 위협적이지 않은 협박을 했다. 섣불리 드러낸 조바심에 지헌이 약점 잡은 얼굴로 비스듬히 웃었다.

“사람들 시선이 그렇게 무서워?”

그걸 말이라고. 좁은 업계 특성상 계속 따라다닐 소문이었다. 정색하는 내 모습에 지헌이 장난이라는 듯 푸흐,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너 웃긴다. 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겁먹어.”

“겁먹진 않았어.”

불쾌한 얼굴로 부정했다. 지헌은 귀여워 못 참겠다는 듯 내 볼을 쓸었다.

“아니긴. 내가 너 약점 잡아서 억지로 어떻게 하는 사람처럼 쳐다봤잖아. 그러니까 더 괴롭혀 주고 싶어서 장난친 거야.”

“…….”

“걱정 마. 나도 골치 아픈 건 질색이야. 소문나면 너보다 내가 더 곤란해.”

지헌이 내 등을 토닥이며 안심시켰다. 그러곤 귓불을 지분거리면서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세차게 빨아들였다. 순간 물어뜯는가 싶을 정도로 따끔했다.

“야, 야.”

놀라서 얼굴을 밀어내자 지헌이 해맑게 웃었다.

“이 정도는 봐줘. 살결이 하얘서 도저히 못 참겠으니까.”

그러면서 사정하고도 덜 수그러든 것을 내게 치대고 있었다. 

짐승 같은 회복력이 징그러운데 내가 먼저 빌미를 제공한 죄도 있어서,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나는 내키지 않은 얼굴로 지헌에게 몸을 맡겼다.

“너무 심하게는 남기지 마.”

그저 하나 마나 한 주의를 시킬 뿐이었다.

지헌의 혀는 가슴 위를 끈적끈적하게 기어 다녔다. 나는 점점 몸의 긴장을 풀고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몸 구석구석 퍼져 나가는 황홀한 감각에 빠져들었다. 몸이 붕 떠 있는 것 같고 정신이 몽롱했다.

아무 생각 없이 쾌락에 몰두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좋았다. 그때만큼은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뒤 우리는 종종 점심시간을 쪼개 밀회를 즐겼다. 주로 그의 자동차 안에서였다. 

운전석으로 건너가 그의 위로 올라타면 그는 치마 속 스타킹을 거칠게 찢고 내게 달려들었다. 그러곤 내 귓가에 음란하고 노골적인 말들을 속삭였다. 

예전 같으면 당장 따귀를 올려붙일 더럽고 상스러운 말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심한 말을 들을수록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나도 설명하기 어려웠다.

불우한 내 가정사 때문일 수도 있겠고 아등바등 살아남으려 노력하면서 차곡차곡 쌓인 울분을 그런 식으로 해소한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애초 나 자체가 잘못된 사람인지도 몰랐다.

나의 불운을 모조리 나의 탓으로 돌리기엔 너무 억울했다. 누구를 원망하고 싶은데 누구에게 칼을 겨누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칼날은 나를 향했다가 정지헌을 향했다가…. 아슬아슬한 날들 속에 자극적인 쾌락만이 내게 위안이 되었다.

시간에 쫓기고, 다른 사람 시선을 신경 쓰는 그 상황 자체가 짜릿하고 스릴감 있었다. 그러고 나서 둘이 모르는 사이처럼 앞뒤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 수업에 들어갔다.

나는 나른하게 앉아 발표하는 정지헌을 턱을 괴고 바라보았다.

단상에 선 정지헌은 진중한 목소리로 프레젠테이션을 주도했다. 욕망의 잔재를 말끔히 지워 버린 모습이었다. 

강조할 부분에서는 적절한 제스처도 곁들이고, 중간중간 청중과 눈을 맞추며 농담을 던지는 여유로움도 보였다.

조금 전까지 차에서 음란하게 뒹굴다 온 사람이라는 건 상상도 못 하겠다. 

저렇게 단정해 보이는데 뒤에서 엄청 밝히는 건 사람들은 모르겠지. 하긴 앙큼한 거로 따지면 나도 할 말은 없지만.

그가 내 스타킹을 찢을 때 나는 명백히 흥분했다.

처음에는 이래도 되나, 잠깐 즐기려면 접점이 없는 사람이 안전할 텐데…. 좋아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성적인 흥분을 느끼다니. 

그와 더럽게 놀고 나면 후회가 밀려들었다.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무뎌져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될 대로 돼라, 쾌락에 중독되어 나도 적극적으로 즐기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지헌에게 별 감정은 생기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가. 좋아졌으면 꽤 골치 아팠을 텐데.

위험 수위는 점점 높아져, 정지헌의 요구로 속옷 없이 강의실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학원 모의고사 내기에서 진 결과였다. 내기는 모의고사 점수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이 요구하는 한 가지 소원 들어주기였다. 

나는 질 것을 알면서 게임에 응했다. 물론 노팬티로 캠퍼스를 돌아다니라는 미친 짓을 요구할 줄은 몰랐지만.

미쳤어? 나는 질색하면서 지헌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나 또한 더 강한 자극을 원하고 있었다. 

벗은 팬티는 정지헌이 가져갔다. 그걸로 뭘 했을지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정지헌과 겹치는 수업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날 종일 복도에서 스치거나, 강의실에서 마주칠 때, 정지헌은 야릇한 시선으로 내 몸을 훑었다. 시선만으로 애무당하는 느낌이었다. 

특히 스커트에서 그의 시선은 오래 머물렀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난 널 알아.

정지헌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정지헌에게 조종받는 이상한 느낌이었다. 

그 시선에 한층 더 몸이 뜨거워졌다. 자꾸만 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려고 지헌은 더 노골적으로 내 몸을 훑으며 짓궂게 장난을 치는 것 같았다.

결국, 수업이 끝나기도 전에 지헌은 내 손목을 움켜잡고 빈 스터디 룸으로 이끌었다. 문을 잠그자마자 지헌은 허겁지겁 내게 입을 맞추고 치마 속으로 파고들었다. 

다리 사이는 이미 한참 전부터 애액이 흥건했다. 질퍽한 다리 사이를 문지르며 지헌이 놀리듯 말했다.

“젖었네?”

“너 때문이잖아.”

나는 숨을 헐떡이며 답했다. 지헌은 부풀어 오른 클리토리스를 느릿하게 더듬었다.

“여기도 꽤 커다랗게 부풀었네.”

그러면서 검지와 중지 사이에 부풀어 오른 빨간 살점을 문지르고 비틀었다. 지헌이 예민한 부분을 만질 때마다 몸서리쳐질 정도로 몸이 떨렸다.

“내가 손으로 만져 주는 게 그렇게 좋아? 응?”

“으응, 빨리, 더 세게.”

나는 조급증을 내며 다리 사이를 정지헌의 허벅지에 밀착시키고 문질렀다.

“흐응, 으응.”

“너 사실은 아까부터 나한테 보여 주고 싶었지? 아래는 이렇게 젖어 놓고 남자한테 관심 없는 척 새침 떨고 말이야. 다들 너한테 깜빡 속아 넘어가지. 하긴 처음 만났을 때는 이렇게 참을성 없이 야한 여자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되게 청순하고 도도해 보였는데. 지금은 이렇게 문지를수록 물이 넘쳐흐르네.”

쾌락에 눈이 멀어 어떤 말을 들어도 상관없었다. 나는 그의 손짓에 맞추어 어깨를 부여잡고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가슴 좀 빨게 단추 좀 풀어 봐.”

정지헌이 내 귓가에 속삭였다. 나는 지헌이 시키는 대로 단추를 풀었다.

아래에서 받쳐 주는 브래지어 덕분에 완만하게 부풀어 오른 젖무덤은 탐스러워 보였다. 부드러우면서 탄력 있는 젖가슴은 숨 쉴 때마다 부드럽게 위아래로 오르내렸다.

지헌은 참을 수 없다는 듯 브래지어를 거칠게 아래로 끌어당겨 유두를 노출했다. 그러곤 입맛을 다시며 새빨간 정점을 내려다보았다. 

그 시선에 끝이 더 단단하게 부풀어 올랐다.

“이걸 어떻게 먹어야 맛있게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흥얼거리듯 중얼거리며 고개를 숙여 혀로 유륜을 진득하게 쓸어 올리고 입 속으로 강하게 빨아들였다.

“응, 으응.”

나는 지헌의 머리를 끌어안고 고개를 젖혔다. 언제든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쉽고 가볍게 즐길 수 있었다.

남자라면 질색을 하고 옆자리에 앉지도 못하게 새침 떨었던 과거가 무색했다. 

정지헌과 내외했던 과거의 나에게, 너 나중에 정지헌하고 이런 짓까지 한다고 말해 줬다면 나는 대차게 비웃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지금 모습이 어이없는데 정지헌은 얼마나 웃길까.

예전 같으면 도서관에서 머리를 맞대고 판례가 어쩌고 쟁점이 어쩌고 학설이 어쩌고 고리타분한 소리나 해 대고 있을 텐데, 지금은 만나기만 하면 어둡고 구석진 자리를 찾아 서로 달아오른 몸을 비비지 못해 안달했다.

그게 웃겨서 입술을 비틀었다. 내 아래에 얼굴을 묻고 있던 지헌이 영문을 묻듯 머리를 쓸어 올리며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에는 채우지 못한 욕망이 번져 있었고, 입술은 내가 흘린 애액으로 번들거렸다.

나는 정지헌 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웃음을 삼켰다.

“아니, 우리가 이러고 있는 게 웃겨서.”

지헌은 이유가 궁금한 듯 눈썹을 치켜들었다.

“뭐가?”

“너랑 이런 사이가 될 줄 몰랐어.”

“이런 사이가 어떤 사이인데?”

“음, 서로 자위해 주는 사이?”

나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처음으로 우리 관계에 대해 내린 정의였다.

“그거 괜찮은데?”

지헌은 짓궂게 웃으며 내 손에 그의 성기를 쥐여 주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우리는 사귀는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서로 몸만 탐하는 관계가 되어 있었다.

정지헌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 관계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사귀면 이것저것 신경 쓸 것도 많은데, 명확히 정의된 관계에 책임지기 싫었다. 서로 시간 낭비 없이 적당히 성욕도 풀고, 공부에 도움되는 자료도 얻고 참 편리한 관계였다. 지헌과 진탕 즐기고 나면 공부에 더 잘 집중되었다.

과연 이 관계의 끝에는 뭐가 있을까, 가끔 궁금하긴 했다. 누군가 한 사람이 진심이 되면 끝나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그게 내가 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눈을 떴을 땐 차 안에 나 혼자였다. 몸 위에는 그의 재킷이 덮어져 있다. 그는 공터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쌀쌀한 날씨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팔짱을 끼고 그의 옆에 서자, 그는 막 담배를 빼무는 참에 내리는 나를 보고 흘끔 시선을 던졌다.

“나도 한 대 줘 봐.”

잘못 들었다는 듯 그가 멈칫했다. 가만히 내밀고 있는 손을 보고 시선을 들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뭐 잘못됐느냐고 시선으로 받아치는 내게, 그는 떨떠름한 얼굴로 주머니에서 담배 케이스를 꺼내 건네주었다.

어지간히 독한 담배 피우네.

손안에 담배를 굴리다가 익숙한 자세로 입에 물자 그가 가까이 다가와 불을 붙여 주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속이 답답할 때마다 한두 대씩 피웠는데 그게 제법 위로가 돼서 아직도 못 끊고 있다. 괜히 뒷말 듣기도 싫고 몰래 피우는 게 습관이 돼서 아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내일 한 과목 남았다고 했나?”

“응.”

“오늘 본 건 잘 봤어?”

“그럭저럭.”

오랜만에 입에 대서 그런가, 순간 머리가 어지러웠다. 담배를 흡입하느라 잠시 틈을 주고 말을 이었다.

“근데 뭐, 다 잘 봤겠지. 그 교수님 10년째 저항권만 내시잖아.”

“그렇긴 하지.”

그가 낮게 웃었다.

“작년에 나 시험 볼 땐 그래도 열 개 주제 주고 그중에 한 개 고르게 하셨는데, 요새는 그런 것도 안 하시는 모양이야. 그래 봤자 우리도 저항권만 골라서 쓰긴 했지만.”

“넌 다른 문제 나와도 상관없잖아? 오히려 그래야 더 좋은 거 아닌가. 다 망하고 너 혼자만 점수 잘 받을 수 있으니까.”

“내가?”

그가 의아함을 담아 나를 보았다.

“아닌데? 나도 저항권 하나만 준비해 갔는데?”

“진짜?”

“10년째 똑같은 것만 내시는데 다른 것까지 준비해 갈 필요 뭐 있어. 시간이 남아도는 거 아니고서야.”

심드렁한 말투였다. 나는 탁, 하고 담배를 털며 웃었다.

“난 또 우등생은 다를 줄 알았네.”

“나도 찍어서 공부하고 벼락치기해.”

“채권법 족보 네가 작성한 거잖아. 다들 네 덕분에 살았다고 난리야.”

“너는?”

“응?”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돌아보았다. 그가 굳이 콕 짚어 되물었다.

“너도 내 덕분에 살았어?”

“물론.”

싱긋 웃으며 끄덕이는 고개에 그의 얼굴이 제법 뿌듯해 보였다.

스킨십할 때 보면 좀 집요한 게 변태 같은 구석이 있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걸 굳이 확인하고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은 꽤 순수해 보였다.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 나는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왜?”

“그냥. 너 좀 순진한 것 같아서.”

묻는 말에 그만 툭 본심이 나와 버렸다. 지헌은 내 대답에 폭소를 터트렸다.

“내가 순진하단 말이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몇 번을 중얼거렸다.

그게 뭐 그렇게 웃긴 말인가.

나는 볼을 긁적이다가 ‘그만 웃어’ 하고 타박했다.

그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보는 사람으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돌려 말해서 순진한 거지 사실은 호구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나 같으면 고급 정보는 꼭꼭 숨겨 두고 나만 알고 있었을 텐데. 하여간 애는 착하고 옆에 두면 이롭긴 하다.

항상 정지헌에 대한 모든 찜찜함과 석연치 않은 느낌은 ‘그래도 애는 착해서….’로 매듭지어졌다.

우리는 다정히 맞담배를 나누고 자동차로 돌아왔다. 그는 콘솔 박스를 열고 생수를 꺼내었다. 

한 모금 마시고 내게 권했다. 나는 말없이 받는 것으로 의사를 대신했다. 물을 삼키며 천천히 곁눈질로 그를 살폈다.

그는 내가 들고 온 서브 노트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생각에 잠긴 눈매와 날렵한 콧대와 굳게 다문 입매를 찬찬히 눈에 담는데, 문득 친구들이 떠들던 정지헌의 연애사가 떠올랐다.

누구랬더라…. 미스코리아 나갔던 경영학과 오은성? 경영학과 미스코리아는 정지헌이 찼을까, 아니면 반대일까? 정지헌 외모가 어디 가서 바람이나 맞고 다니게 생기진 않았는데 또 모르지.

묻고 싶었다. 아마 되게 황당해하겠지. 쿨한 사람이니까 어쩌면 솔직히 대답해 줄지도? 아니면 의외로 입이 무겁고 남녀 관계는 깔끔해 보이니까 전 여자 친구 이야기는 언급 안 할 수도 있고.

정지헌이 내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눈썹을 살짝 올렸다. 나는 자동으로 미소를 띠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대답 들으면 또 어쩔 거야.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이게 왜 특A야?”

골똘히 생각에 잠겨 서브 노트를 넘기던 지헌은 어느 페이지에서 멈추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내밀어 노트를 들여다보았다.

“그게 왜? 처분권주의 변론주의. 특A 맞는데?”

“빼.”

단호한 어조였다.

“그건 기본도 아니고 기초인데. 민소 뼈대인데 아예 빼라고?”

“어, 빼.”

“다? 그러긴 너무 불안한데. 그럼 C급으로 넣을까? 목차만 보고 들어가게.”

“다 빼. 이거 작년에 나왔어. 그 교수님 절대 작년에 낸 건 안 내셔. 시험이 당장 내일 아침인데 이걸 언제 다 외우고 들어가.”

대시보드 아래 서랍에서 볼펜을 꺼낸 그는 페이지 귀퉁이에 엑스 표시를 하고 다음 장으로 넘겼다. 그러곤 주제만 쓱 보고 귀퉁이에 특A라고 적었다.

“잠깐, 잠깐.”

나는 손을 뻗어 제지했다.

“이게 A라고?”

“아니. 특A.”

지헌은 ‘특’을 강조했다. 나는 납득 가지 않는 얼굴로 반문했다.

“왜? 필수적 공동소송은 중요한 거 없는데. 합일 확정이 필수적인데 논란거리가 될 게 있나. 판례도 딱히 없을 텐데. 공보참(공동소송적 보조참가), 통공(통상 공동소송), 예선공(예비적 선택적 공동소송)이면 또 몰라.”

넌 한참 멀었다는 시선이 나를 향한다.

“윤 교수님 이번에 필공(필수적 공동소송)으로 논문 내셨어. 그해 논문 낸 건 반드시 학교 시험에 나와.”

정지헌은 머리도 좋지만 공부를 참 영리하게 한다. 역시 난놈은 난놈이야. 그러니 수재들 틈에서 톱을 할 수 있었겠지.

시선을 내린 지헌은 서브 노트를 넘기며 말을 이었다.

“올해 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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