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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시간-13(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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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039 회 작성일 24-12-13 07: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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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시간-13(완결)

 

광철의 복수!

불경기로 인해 사람이 뜸해진 의상실에서 동민은 진한 향의 원두커피를 마시며 사색에 젖어 있었다.

근래 몸을 요구하지 않는 애리가 이상스러웠다. 물론 그녀의 전화 통화에서 이상함을 느낀 건 사실이었다.

칼치라는 김 사장의 부하와 알 수 없는 대화! 무슨 가루라고도 얘기하고, 피아노라고도 얘기하는 그녀의 알 수 없는 얘기가 나온 후부터 애리는 더 이상 동민의 몸을 요구하지 않았었다.

"급작스러운 그녀의 성욕이 이렇게 잠잠할 수 있다니. 남자가 생긴 건가? 후! 후! 이상하군. 내가 왜 그녀를 생각해야 하지."

커피의 향을 음미하며 실소를 내보이는 동민의 얼굴은 급격히 굳어져 갔다. 문안으로 들어오는 한 사내의 살기 띤 표정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너! 김 사장 알고 있지!"

"누. 누구세요? 헉!"

동민은 사내의 주먹으로 인해 숨이 끊어지는 고통을 맛보았다. 사내는 앞으로 꼬꾸라진 동민의 머리를 짓누르며 짤막한 말을 이었다.

"김 사장은 지금 어딨나?"

"지금은 안 계시고요. 아마도 일본에."

"일본?"

"부인의 전화 내용을 들어서."

"전화 내용이라. 있는 대로 얘기를 해. 아니면 넌."

동민은 두 눈을 부릅뜬 사내의 기세에 눌려 전화 통화 내용을 자세히 말했다. 사내는 동민의 얘기를 들으며 이상함을 느꼈다.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지?"

동민은 부인과 자신의 야릇한 사이임을 내비쳤다. 순간적으로 반짝이는 눈빛을 보이는 사내는 동민에게 말했다.

"전화 통화 내용에 대해서 알아놔라. 나, 광철이라고 한다. 이따가 전화하겠다. 만약 자세한 얘기를 알지 못하면, 넌 죽은 목숨이야."

말을 마친 광철은 동민의 복부를 발끝으로 가볍게 툭 치며 몸을 돌렸다.

한참을 멍하니 있던 동민은 사내의 모습이 사라지자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응! 나야 무슨 일로? 예약 들어왔니?"

"사모님. 그게 아니고요. 광철이라는 사내가 가게로 와서 김 사장님 행방과 사모님 행방을 물으며 행패를 부리고 갔어요."

". . . . ."

"사모님 듣고 계세요? 사모님?"

"알았다. 그리고 녀석이 물어보더라도 넌 모른다고 해. 난 내일쯤 홍콩으로 떠날 거니까. 그 가게는 앞으로 네 것이다."

"사. 사모님!"

그의 귓가는 그녀의 마지막 말에 윙~하는 소리로 가득했다.

( 그 가게는 앞으로 네 것이다.)

시가 3억이나 되는 가게를. 홍콩으로 간다는 소리는 또 뭔가.

광철은 선명히 들려오는 두 사람의 목소리를 이어폰으로 듣고 있었다. 도청 장치의 성능은 흡족할 만큼 우수했다.

어두운 골목길을 접어 들었을 때 어슴푸레한 한 사내의 모습을 광철은 보았다. 낯설지 않은 모습이었다.

"형. 형님!"

광철의 목멘 소리에 그저 담담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 사내는 민우였다.

둘은 뜨거운 포옹을 했다. 뜨거운 사내들의 심장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참 후, 광철은 민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민우의 표정은 어두웠다.

특히 은희의 죽음을 광철의 입을 통해 확인하자, 민우의 눈가엔 슬픔이 번졌다. 광철은 김 사장의 아내로부터 얻은 정보를 낱낱이 전했다.

"그렇다면 마약이 아직."

"형님! 애리라는 여자의 음모에 김 사장도 당한 거 같습니다. 형님이 불살라버린 마약은 가짜였어요. 내일 밤, 거래를 마치고 홍콩으로 뜰 거 같습니다."

" 김 사장은 벌써 죽은 거 같구나, 서둘러야겠다."

그때였다. 눈부신 헤드라이트의 불빛이 골목길로 비추어졌다. 순간 광철의 눈은 튀어나올 듯 커졌다.

"형. 형님. 그 자식들인가 봅니다."

광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렬한 헤드라이트의 불빛이 그들을 덮쳤다.

민우는 광철의 몸을 밀쳐내며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발끝을 스치며 차는 앞으로 튀어 나갔다.

"형. 형님!"

"난! 괜찮다. 저 차를 따라가야겠다. 시동을 걸어라."

키를 건네받은 광철은 서둘러 차의 시동을 걸었다.

시원한 느낌의 엔진소리를 들으며 민우는 안쪽 호주머니에서 주사기를 꺼내 팔뚝 깊숙이 꽂았다. 온 몸에 퍼지는 나른함과 솟구치는 힘이 전신의 핏줄로 흘러 들어갔다.

"광철아. 녀석들의 차를 알아볼 수 있겠니?"

"네"

민우는 광철과 함께 차로 옮겨 탔다.

직접 운전대를 잡은 민우는 인천 쪽으로 차를 몰았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은 발이 끝까지 닿자 터질듯한 굉음을 내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얼마 후.

"형님 저 찹니다. **98번 확실해요."

민우는 차의 옆으로 바싹 다가가 인원을 확인했다. 앞쪽에 둘, 뒷자리에 하나.

민우는 인원을 확인한 후 핸들을 꺾어 강하게 부딪혔다.

쾅! 소리와 함께 범퍼가 반쯤 떨어지며 바닥을 긁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녀석들의 차는 간신히 균형을 유지했다.

민우는 재차 따라가며 다시 한번 충격을 줬다.

고급 승용차는 민우의 연속된 공격으로 인해 엉망으로 찌그러져 있었다.

약간 옆으로 물러난 민우는 다시 한번 공격하려는 순간, 녀석 중 하나의 손에 들려진 검은빛 물체를 봤다.

순간 강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급

정지로 인해 녀석들의 차와 거리가 멀어지자 녀석들은 차 뒷문으로 총을 꺼내 들고 무차별 사격을 해왔다.

핸들을 급하게 꺾자 광철의 머리가 민우의 어깨에 기대어졌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광철의 머리가 민우의 어깨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에 한 손을 들어 광철의 얼굴을 만졌다. 끈적한 액체가 손바닥 가득 잡혔다.

민우는 온몸이 떨려왔다.

"으아 아아~~~~"

괴성과 함께 속력을 최대한으로 올린 민우는 자동차의 후면을 들이받았다.

튕기듯 앞으로 나간 자동차는 보도블록에 튕겨 올라가며 가로등을 들이받았다.

순간 강한 폭발음과 함께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차의 불빛으로 인해 민우의 모습이 불타올랐다. 

뜨거운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자신의 성급함으로 인해 피투성이인 그의 몸을 껴안고 흐느껴 울었다.

뜨거운 사내의 눈물이었다. 너무도 뜨거운.

* * * * *

"아. 죽을 것 같아. . . . 아악"

"헉! 헉!  으, 끄응~~~~"

차 안에서는 한 쌍의 남녀가 온몸을 불사르며 뜨거운 욕정의 찌꺼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남녀의 거친 호흡으로 인해 뿌연 유리는 점점이 손자국이 찍혀 있었다.

그 사이로 내비치는 여자의 땀에 젖은 머리카락은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큰 숨을 몰아쉰 그녀는 남자의 뺨을 만지며 격정의 키스를 나누었다.

"너. 너무 좋았어, 자기, 홍콩에 가서도 나 홍콩에 보내줄 수 있어?"

남자는 여자의 아이러니한 말에 웃음을 지으며 이마에 키스로 답했다.

"자! 서두르자고. 일본 애들 도착할 시간이 됐으니까"

바지를 뀌어 입으며 남자가 말했다. 여자도 고개를 끄덕이며 부지런한 손놀림을 했다.

* * * * *

 

최후!

항구의 비바람 속에서 칠이 벗겨진 전화 부스 안에 중절모를 깊숙이 눌러쓴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손가락 마디가 없는 손으로 동전을 집어넣는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그의 표정은 긴장 때문인지, 슬픔 때문인지 어둠이 가득했다.

"따르릉."

"여보세요."

". . . . ."

"여보세요!"

"나야, 오민우."

"이봐! 어떻게 된 건가?"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전해졌다. 잠시 말을 멈춘 민우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아이는 잘 크나?"

"이봐! 민우, 지금 어딘가. 내 곧 그리로 가겠네."

"아이의 목소리가 듣고 싶네."

"장운아! 장운아!"

"여보세요?"

". . . . . ."

뜨거운 눈물로 인해, 가슴으로부터 올라오는 뜨거움으로 인해, 목이 메어 자기 아들의 목소리에 민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빠! 아무 소리도 안 나는데요?"

"장운이는 들어가 공부해라, 여보세요! 이봐, 민우 듣고 있나?"

"목소리가 어른스러워졌군."

울먹이는 목소리로 민우는 말했다.

"이젠 아이와 같이 살아야 하지 않겠나? 김 장운이 아닌, 오 장운으로 말일세."

"김 형사! 잘 듣게. 자네에게 무거운 짐을 쥐여줘서 미안하네. 장운이에게 앞으로도 잘해주게. 그리고 부탁이 있네."

"뭔가?"

"장운이한테 계속 자네가 아버지인 거로 해주게. 난 어차피 죽을 목숨이네."

"무슨 소린가? 그게? 죽을 목숨이라니?"

"시간이 없네. 지금부터 내 말 잘 듣게. 오늘 밤 인천항에서 대규모의 마약 거래가 있네. 야쿠자의 개입이네. 700억 엔 이라는 놀라운 거래네. 서둘러주게. 우리 쪽 거래자는 장애리라는 여자이네. 그리고 그의 남편 소유의 거여동 **번지에 가공되지 않은 다이아몬드가 있네. 모두 일본 쪽 야쿠자의 물건이네. 그럼."

말을 마친 민우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숨을 몰아 쉬었다.

갈치에게 당한 옆구리에서 강한 통증과 함께 핏물이 스며 나왔다. 붕대에 감긴 상처는 이미 썩어들어 가고 있었다.

* * * * *

수십 명의 사내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두 남녀를 주시되고 있었고, 보스인 듯한 사내가 갈치와 악수를 하며 뭐라고 얘기를 하고 있었다. 차 안에서 애리는 긴장된 모습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앞으로 한국의 보스는 당신이오. 이번 거래는 우리 쪽이 많은 양보를 한 겁니다. 인정하십니까?"

"물론입니다. 앞으로 이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걸 약속합니다. 그리고 홍콩 쪽도 우리에게 넘겨주신 걸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당신은 대단한 사냅니다. 하하하."

사내는 뭐가 그리 좋은지 커다란 덩치를 들썩이며 웃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웃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강렬한 라이트 빛이 사방에서 쏘아대고 있었다. 특수부대와 경찰! 그리고 군인들의 합동작전이었다. 일본의 마약 거래를 소탕하기 위한.

"그 자리에서 한 걸음이라도 움직이는 자는 발포하겠다. 모두 그 자리에서 손을 머리 뒤로 깍지 낀 채 바닥에 엎드려라."

확성기를 통한 경찰의 목소리에 모두 긴장하고 있었다.

서서히 좁혀져 가는 포위망 속에 사내들은 바닥에 엎드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한 사내가 조심스레 애리가 타고 있던 차로 향한 것은.

일본 쪽 한 사내가 갑자기 돌진하듯 경찰 쪽으로 뛰어들었다.

"드르륵. 탕! 탕!"

총소리와 함께 사내의 몸은 허공에서 춤추듯 피에 젖어 하늘거렸다.

그 순간 사내들은 자리에서 벗어나려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소란스러운 격돌이 일어났다.

민우는 갈치와 애리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알았다. 둘은 물가 쪽으로 내려가 도망치고 있었다.

민우는 그들을 향해 뛰어갔다. 절룩거리는 몸으로 필사의 힘을 다해.

친구인 김 형사가 그런 민우의 모습을 보았다. 민우를 불렀으나 그는 듣지 못하는 듯 계속 앞을 향해 뛰어갔다.

"헉! 헉!. . . 조금 더 빨리"

"헉! 헉!. 더 이상. 더는 못 뛰겠어요."

"안돼. 조금만 힘을 내라고. 여길 빨리 벗어나야."

칼치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한 사내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여길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민우는 둘을 향해 서서히 다가섰다. 갈치는 다가오는 민우를 보며 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순간, 빠른 움켜쥠과 함께 뾰족한 무기가 주먹 사이로 보였다.

민우는 슬쩍 옆으로 몸을 피하며 그의 옆구리에 묵직한 주먹을 날렸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꼬꾸라졌다.

민우는 그런 그의 옆구리를 재차 발길질로 걷어찼다. 신음과 함께 그의 몸은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 장면을 본 애리는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었다. 서서히 다가서는 민우의 모습이 마치 저승사자와 같았다.

그녀는 자기 핸드백을 떨리는 손으로 열었다.

핸드백이 떨어졌다. 많은 내용물이 바닥에 펼쳐졌다.

그녀는 그 중 검은빛 물체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민우의 행동이 조금 더 빨랐다. 어느새 그의 손에 들린 칼날이 그녀의 목에 대어졌다.

"딸아이가 죽은 걸 알고 있나?"

애리의 표정이 잠시 일그러지더니 민우를 쏘아보며 말했다.

"상관없어요! 어차피 입양한 아이인데 뭐."

"그랬었던가. 그래서 남자와 같이 도망칠 수가 있었던 거군."

조금은 허탈한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때였다. 등으로부터 어떤 물체가 파고든 것은.

"이 자식! 죽여 버리겠어."

악에 받친 갈치의 목소리가 들렸다.

민우는 손에 들려있던 칼을 아래로 빠르게 내려 뒤쪽의 갈치에게 뻗었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갈치의 몸은 무릎을 꿇었다.

"안돼!"

민우는 가물거리는 의식 속에 애리의 절규에 찬 음성을 들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피스톨이 떨리며 민우의 이마를 겨냥하고 있었다.

"탕!"

굉음과 같은 소리를 내며 피스톨의 소리는 민우의 귓전을 스쳤다.

애리는 이마에 구멍을 낸 채 쓰러졌다.

민우는 그 자리에 허물어졌다.

김 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정신 차려!"

"후후. 죽일 거 까지는 않았는데. 쿨럭!"

민우는 김 형사의 총에 쓰러진 애리를 흘깃 쳐다보며 힘겨운 눈빛으로 김 형사를 올려다봤다.

"이봐! 조금만 참게. 아이를 두고 죽을 순 없지 않은가."

김 형사의 목소리는 울음이 가득했다. 그의 눈에 번진 눈물이 민우의 뺨에 떨어졌다.

희미한 미소를 보이며 민우는 말했다.

"아니. 난 어차피 틀렸네. 그리고 자네에게 한 가지만 더 부탁하세. 마지막 부탁이네. 헉. 쿨럭!"

"이보게. 피가 너무 흘러. 그만 말하게."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한나라는 아이가 있네. 자네가 걷어 주게."

고요한 정적이 그의 몸을 뒤덮고 있었다.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복수.

모든 것이 허무했다. 나로 인해 너무도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는 죄책감에 가슴이 아파져 왔다.

어느새 그의 눈에도 슬픔이 가득 퍼져있었다.

안녕. 나를 사랑했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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