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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세상-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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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620 회 작성일 24-12-16 13:4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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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세상-5

 

5부- 유흥가를 알면 세상 물정이 보인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내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물론 다른사람이 보기에는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사소한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당사자인 내게는 사소하지 않은 변화들이었다. 

여전히 혼자 살고, 여전히 회사에 꾹 붙어 앉아 있었으며, 여전히 어머니가 보내주시는 반찬들은 냉장고에 있었지만 아무튼, 내 생활은 변하고 있었다.

업소 주인이 씩 하고 웃어줄 정도로 두 번이나 핸플의 미소를 더 찾아가고, 또 그 실장과 형님 아우하는 사이가 될 정도로 체리를 몇 번 더 찾아갔다. 

다른 아가씨들도 보고 싶었지만 변화를 두려워 하는 성격 탓인지 쉽게 도전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사공"사이트 에서도 나는 점점 유명해져 갔다. 

비록 다양한 후기를 올리지는 못했지만 왕성한 활동량 탓인지 나는 금새 특별 회원의 자리에 올라갔다. 

접속하면 자동으로 뜨는 사공 사이트 회원 전용 대화방에서 내 아이디가 뜨면 다들 아는척을 해주었다. 

웹 상에서 친하게 지내는 "고수"몇 명이 생겨났다. 

내가 후기를 올린 미소나 체리의 근무처를 자세히 알려달라는 쪽지도 심심찮게 도착했다.

어쩌면, 미소나 체리에게 있어서 나는 "봉"일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것이 일주일에 두 번은 자신을 찾으니 단골손님의 개념보다는 돈줄의 개념이 강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녀들은 내가 투자한 돈만큼 내게 친근감을 표시했고, 친해지고 나니 서비스가 한층 더 달라졌다. 

체리를 만나봤는데 생각보다 친절하지 않더라...하는, 다른 회원들의 불평섞인 후기가 올라오면 오히려 뿌듯했다. 왠지, 그녀들의 친절을 받고, 그

녀들의 기억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대단한 특권마냥 느껴졌다.

신기하게도 성격도 변했다. 주로 수동적이었던 여태까지의 성격이 조금 더 능동적으로, 조금 더 밝게 변했다. 

이미 예전에 포기했던 직장 상사로서의 위엄도 조금씩 생겨났다. 

예의상 내게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던 이들이, 이제는 본격적으로 나와 상의를 하고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여직원들과 부득이하게 이야기를 하게 될 때면 늘 바닥으로 깔리고 했던 시선은 이제 그녀들의 눈가에 향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당당해지고 있었다.

어찌보면 무리도 아니었다. 여자라는 존재를 무서워 한 것은 아니지만, 어려워 했던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비록 유흥가이긴 하지만 여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혹은 그녀들의 밀고 당기기를 어느정도 파악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큰 변화였다.

"박주임님. 이거...."

"이게 뭐에요?"

"제거 타면서 하나 탔어요. 드세요."

"아 고마워요."

퇴근하기 직전, 휴게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유리씨가 내게 커피를 내밀었다. 

툭하면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직원들에 불만을 가지고 있을것이 뻔한 그녀가 스스로, 그것도 내게 커피를 타서 건내주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자신도 그것이 신경이 쓰였는지, 괜히 아무도 없는 휴게실을 두리번 거린다.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왔다.

저번에 체리를 처음 만난 이후로, 나는 그 오피스텔 업소를 세 번이나 더 방문했고, 당연하게도 체리를 계속 지명해 왔었다. 

그때부터 체리는 유리씨의 연기를 했고, 이제는 정말 유리씨와 정기적으로 섹스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혼동마저 들어왔다. 

그렇게 되어 버리니, 그녀를 대하는 내 태도에도 자신감이 넘치기 시작했다. 

비록 실제 상황은 아니지만, 나는 이미 그녀를 정복했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는 거였다.

"유리씨 어디 산다고 했죠?"

"아..저요? 여의도 살아요."

"아아. 그렇군요."

"그건 왜요?"

"아 한번도 지각을 한 적이 없는거 같길래...가까운 곳에 사나보다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거든요. 근데 그것도 아닌거 보면 유리씨도 대단하네요."

내 칭찬에 그녀는 슬쩍 미소를 머금으며 커피잔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예전 같으면 여직원과 휴게실에 단둘이 있을때에 적막만이 자리했을 것인데, 별것 아닌 말이지만 대화를 거는 내 모습이 놀라웠다.

"주임님은 어디 사세요?"

"저는 회사랑 가까워요. 한 20분 거리에 살아요."

"아아 정말요? 그럼 버스타고 오세요?"

"아뇨. 지하철 타고 오죠. 매번 낑겨서 와서 옷 다 구겨져 있잖아요."

그녀 역시 출근길 지옥철에 매일 시달리는지, 내 말만 듣고도 질린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늘따라 더 붉게 느껴지는 그녀의 입술자국이 하얀 종이컵 위에 찍혀 있다. 체리와 나누던 키스가 유리씨와 나누는 키

스로 바뀌어 머리속에 떠올랐다.

"소형차라도 하나 사야겠어요."

"유지비가 꽤 들텐데.."

"그래서 막 지르지는 못하구요. 주식 대박나면 하려구요."

농담처럼 이야기 하며 웃는 유리를 보며 나는 놀란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유리씨가 주식도 해요? 의왼데요?"

"에이...잘은 몰라요. 그냥 재미삼아서 월급의 일부만 조금씩..."

"아아. 그래요?"

나는 재빨리 사공사이트의 다른 회원이 해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는 나처럼 핸플이나 오피에서 지명 아가씨만 불러 즐기는 뜨내기가 아닌, 룸싸롱같은 고급 유흥가를 다니는 고액 연봉의 회계사였다. 

그는 평소에 애인이나 다름없이 지내는 텐프로 아가씨가 있었고, 그녀가 주식에 관한 정보를 주었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놀랍게도, 실제로 그는 그 아가씨의 정보에 의해 재미를 봤다고 했다.

-유흥가는 인터넷보다 더 방대한 정보의 바다에요.-

그가 나와 채팅을 하며 들려주었던 이야기에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흥가에는 나같은 셀러리맨 부터 자영업자, 사업가, 변호사, 의사, 증권 관계자, 연예인 등등 그 수를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계층이

들르는 휴게소이자 욕구 배출구 였다. 

구태여 대학을 졸업한 똑똑한 아가씨가 아니더라도,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사회 전반에 걸쳐 꽤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그녀들과 모종의 관계에 있는 그 회계사 역시, 그녀들의 정보력을 간접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정보들 중에서는 앞으로의 경제가 어찌 될 전망이며, 어떤 회사의 주식이 유망한가 등등의 고급스러운 정보부터, 남자 가수 아무개가 여자 연예인 누구랑 사귄다더라 하는 가쉽거리 까지 다양했다.

"나도 주식을 좀 알긴 하는데..."

"어머..주임님두요?"

"네. 조금요."

왜인지 모르지만 너무나 가볍게 거짓말이 튀어 나왔다. 

주식? 태어나서 한 번도 사본 적이 없는데도 자연스럽게 많이 알고 있다는 얼굴 표정을 짓는 내 모습이 조금 우스웠다. 

유리씨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럼 주임님. 저도 좋은 정보좀 주세요."

"에이. 그게 맨입으로 되나요?"

게다가 능글맞아 졌다. 유리씨 역시 생각외로 능글거리는 내 태도에 조금 당황한 듯 했으나, 이내 베시시 웃으며 다른 상사에게 떨지 않는 애교를 떨기 시작했다.

"아이 참...가르쳐 주세요. 네? 커피도 타 드렸는데.."

"에이. 커피값에 바꿀 수준의 정보면 제가 이렇게 으스대지도 않죠."

"치..그럼 어떻게 해 주시면 가르쳐 주실 거에요?"

"나중에 술 한잔 쏘세요. 원래 더 비싼 정보인데 유리씨니까 이 정도 선에서 끊어 드리는 겁니다."

"하하 뭐에요. 알았어요. 시간 날 때 말씀 하세요. 제가 꼭 사드릴게요."

"좋아요."

나는 여유롭게 웃으며 유리씨를 바라보았다. 

예전처럼 눈도 마주치지 않고 부득이 하게 일 이야기만 하던 때와는 다른 너무나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그녀가 또 한번 내 밑에 깔려서 나를 끌어안던 체리의 얼굴과 겹쳐 보이려 한다. 

이거 참. 그나저나 주식 정보를 어떻게 해서 알아낸담.

-어이쿠, 해바라기님 어서오세요.-

-안녕하세요. 오늘도 사공 출근하셨네요.-

퇴근 후 사공 사이트에 접속하자마자, 내 닉네임을 보고 말을 해주는 몇몇 회원들의 인사말이 채팅창에 나타났다. 

해바라기라는 닉네임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거시기를 인테리어한 사람으로 보고는 했지만 사실 그 닉네임의 탄생 배경은, 단지 "아이디를 만들 당시에 해바라기씨 간식이 눈 앞에 있었기 때문에"라는 실로 간단 명료한 것이었다.

-네. 오늘 회사에서 지금 끝났네요.-

-그래도 내일 쉬잖아요. 토요일이니까.-

생각해보니 오늘은 금요일 이었다. 사공 사이트에서 여가의 대부분을 보내고, 간간히 미소와 체리를 번갈아 찾으며 놀다보니 일주일은 금방 금방 지나갔다. 

물론 거기에 쓴 돈도 돈이지만 내 나이때 일반인 여자를 만나서 데이트를 하려면 대부분 내가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여자 친구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유흥가에 쓰는 돈만큼 아까운 돈을 뿌릴 것이다.  그것도 매 데이트 마다 섹스를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참으로 아까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차라리, 이렇게 자유롭게 즐기는 지금이 더 낫다.

-해바라기 형님. 오늘 나이트 조각치러 갈껀데 같이 가실래요?-

사공에서 안면이 트인 "염소"라는 닉네임을 쓰는 녀석이 내게 말을 걸었다. 그는 20대 후반의 회사원이었고, 나처럼 중소기업을 다니는 녀석이었다.

"조각쳐서 가자고?"

조각을 친다는 말은 사람 몇명이 모여 돈을 분담해서 나이트를 가자는 의미였다. 

물론 맥주기본 시키려고 돈 모을 수는 없는 것이니까, 대부분의 조각치기 모임은 그럴싸한 룸을 잡고 양주를 시킨다. 

물론 n분의 1로 나누니 부담도 크지 않았다. 

게다가 친구들이랑 그룹을 이루어 가는 것보다 잘 모르는 사람들과 조각쳐서 가면 가장 좋은 이유는, 여자 낚시에 성공해서 자기만 쪼르르 자리를 떠도 부담이 없다는 점도 컸다. 

닉네임 염소는 그런 나이트 문화를 매우 사랑하는 녀석이었고, 사공의 밤문화 기행 카타고리에서 "나이트 후기" 게시판을 독점하다 시피 하는 특별회원 이었다.

-몇 명이나 가는데?-

-아아. 지금 킬러 형이랑 문어 형이랑 저 까지 해서 세명인데요. 해바라기 형도 같이 가실거면 넷이 되겠죠. 같이 가실래요?-

염소가 말한 "킬러"와 "문어"라는 회원들도 귀에 익은 닉네임 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사공 사이트의 특별회원 이었고, 문어라는 자는 나보다 나이가 두 세살 정도 많았다. 

나와 염소를 제외한 문어와 킬러 두명은 모두 유부남 들이었다.

-아..근데 나 나이트 가 본적이 거의 없는데...-

-에이 형님. 제가 잘 코치해 드릴게요. 어떻게든 형님이 여자 먹고 올 수 있게 하겠슴돠!^^-

염소 녀석의 말에 우리의 대화를 눈팅하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ㅋㅋㅋㅋ"하는 웃는 소리를 입력하며 내 답을 기다렸다. 

오피스텔이나 핸플 업소 등등 여타의 유흥가 처럼 섹스가 보장된 것이 아니니 자연스레 망설여졌다. 

실제로 밤문화 기행란의 수많은 카테고리 중에서도 나이트 후기란은 그저 읽는 것으로 만족했던 나였다. 

물론 그 만큼 관심도 없었다. 나이트에서 여자를 건져 원나잇을 하려면 특유의 말빨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그런것을 겸비하고 있을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에이. 나는 가봐야 헛탕만 칠거 같아. 그냥 두 분이랑 다녀와.-

-아놔 형님. 계속 미소랑 체리만 만나러 다니시게요? 맨날 밥만 먹고 어떻게 살아요. 가끔 간식도 드셔야지. 제가 다 리드해 드린다니까요.-

내가 끼면 부담해야 하는 돈이 확 줄기는 하는 모양인지, 염소 녀석은 끈덕지게 나를 꼬셔대기 시작했다. 

문제는, 나도 그의 말에 혹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형님. 업소 언니들이 마인드 좋고 와꾸 잘 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민간인 따먹을 때의 성취감은 느낄수가 없다니까요. 그냥 집에서 쉬시느니 한 번 나와보세요-

그의 말대로, 오늘은 집에서 푹 쉬거나, 혹은 다른 후기들을 읽고 땡기는 아가씨가 있는 오피스텔을 방문해 보려고 했었다. 

뭐하러 나이트 가서 그 고생을 하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는 점점 염소 녀석의 말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민간인을 따먹는다...?

정말 혹하는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원나잇은 남자라면 누구나 다 한번쯤은 상상해 보는 그런 것 아니던가?

물론 젊고, 말 잘하고, 어느 정도 잘 생긴 녀석들의 전유물이라 여겨지긴 했지만, 염소의 말을 들으니 한 번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게다가 녀석은 내게 일대일 대화까지 걸어가며 끈덕지게 유혹했다.

-알았어 알았어. 일단 들어나 보자. 어디 있는 나이트인데?-

-수원입니다 형님.-

-수원? 뭘 그렇게 멀리 가?-

-거기 인계동에 좋은 나이트가 있는데, 가본지 조금 오래 되었거든요. 아직도 제 지명 웨이터가 있으면 깃발 꽂기도 쉬울 꺼고...게다가 문어 형님이 그 근처 사시니까요.-

-그래?-

-네. 그냥 나오세요 형님. 일단 남자들끼리 포차에서 술한잔 가볍게 하고 들어가자구요.-

이건 아닌데...왠지 돈 버리는 거 같은데....하면서도 나는 수원을 향하고 있었다. 게다가 인터넷 사이트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 실제로 만나는....그동안에는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짓을 나는 하고 있었다.

수원이라....

막차 전철을 타고 가면서 나는 조용히 속으로 되뇌였다. 

처음으로 들렀던 유흥가가 바로 수원이 아니었던가? 당시 택시를 타고 갔던 수원역 근처 집창촌에서 만났던 유미가 떠올랐다. 

벌써 몇 주 전의 일이다. 채 한달도 되지 않았던 시간에 나는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유미가 있었던 가게를 생각하고 나니 한결 안심이 되었다. 만일 오늘 염소의 말대로 성공하지 못한다면 저 곳에 들려 유미를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실패하고 저기까지 들르면 출혈은 크겠지만, 이미 나온 이상 어느정도의 출혈은 감수해야 하는 것이리라.

워낙 큰 건물 앞에서 만나기로 해서 그런가? 전철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인계동으로 가자마자 나는 너무나 수월하게 일행을 찾을수 있었다. 

염소나 문어, 그리고 킬러 모두 한 번도 본 적없는 사람들이긴 했지만 그들의 어설픈 미소에서 나는 금새 그들이 내 일행임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형님! 역시 나오셨네요."

"이야. 해바라기님 생각보다 잘생기셨네?"

다행히도 그들은 나처럼 이런 모임이 어색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염소 녀석이야 워낙 이런 조각치기를 많이 하는 놈이니 익숙할 만도 했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문어도, 그리고 킬러라는 사내도 모두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고 있었다.

염소 역시 조금 만족한 표정이었다. 녀석은 만나기 전에 정장을 입고 오면 안된다고 신신당부 했으며, 나보다 나이 많은 문어에게 "최대한 젊게 입고 오라"고 주문했던 적이 있었다. 

문어는 닉네임 그대로 머리를 삭발한 상태였으며, 유부남 답지 않게 꽤 괜찮은 패션센스를 가지고 있었다. 그냥 청바지차림의 내가 조금 위축되

는 느낌이 들었다.

"야 염소야. 언제쯤 들어가야 아다리가 맞냐?"

"음..조금만 더 게기면 한창 피크때가 되요. 일단 한 잔하고 있으면 될거 같은데요?"

킬러의 말에 염소는 넉살좋게 이야기 하며 우리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으리으리한 나이트 앞에 있는 작은 포장마차. 우리의 표정은 마치 적군이 주둔한 성으로 진격하는 장수들처럼 비장했다. 

그 성은 화려한 네온사인에 번뜩이고 있었으며, 보기에도 눈이 휘둥그레지는 미인들이 입장할 때마다 장수들의 눈빛은 더욱 더 전의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비록 인터넷 상에서 몇마디 섞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얼굴을 보는 자리긴 했지만, 이 순간 만큼은 도원결의가 부럽지 않았다.

"근데 왜 지금 안들어가고?"

내 질문에 염소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비웠다. 마치 하수들을 귀여운 눈으로 바라보는 고수의 눈빛이랄까? 기분은 별로지만 지금은 염소에게 의지해야 했다.

"형님. 이제 고작 12시 조금 넘었어요. 지금 가면 애들이 팔팔해서 꼬시기가 힘듭니다. 쟤들도 놀만큼 놀고 힘들때 방어가 허술해 지는 법이거든요. 사실 정석은 새벽 한 두 시쯤에 치는 건데, 우리가 일찍 모인것도 있으니까요."

"아우 씨...오늘 마누라가 전화하면 안되는데..."

"문어 형님은 뭐라고 하고 나오셨어요?"

"나? 출장간다고 했지뭐. 너는?"

"저도요. 키키킥."

유부남 두 명의 대화를 잠시 바라보던 나와 염소의 눈이 마주쳤다. 

뭐, 역시나 젊은게 좋은 것인지..30대들 사이에 낀 20대 후반이란 참으로 빛나보이는 존재였다. 

헤어 왁스로 요란하게 멋을 낸 염소, 그리고 유부남들 답지 않게 한껏꾸민 킬러와 문어, 마지막으로 이들중 유흥가 경험이 가장 적은 나는 곧 술잔을 기울이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해바라기 동생. 요새는 오피에 추천할 여자 없어?"

술이 들어가니 말이 편해졌고, 더구나 유흥가 이야기가 나오니 우리 넷은 다시금 의기 투합했다. 어느정도 기분이 좋아진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에이..저야 아시잖아요. 오피라고는 체리씨 밖에 모르는데..."

"야야 친구야. 오피는 여러군데 다녀봐야해. 지명은 그렇게 한큐에 만드는게 아니고...여러 군데 다니고 나서 아...얘가 그래도 최고구나...하는 애를 잡아서 지명 때리는거야. 너무 안주하는거 아냐?"

나와 동갑으로 밝혀진 킬러의 말에, 나는 그저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세상에 유흥가가 얼마나 많은데 벌써부터 한 여자에 목을 메냐? 내가 나중에 추천 미녀들 쫙 뽑아 줄 테니까 해바라기 너도 한 번 가봐."

"나야 좋지."

역시 나는 귀가 얇은 모양인지, 킬러의 말에 핸플의 미소, 오피스텔의 체리만 추구했던 지난 며칠간이 약간은 후회스러워 지고 있었다.

킬러는 나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횟수로 오피스텔을 들락거린 오피스텔 분야의 강자였고, 가장 연장자인 문어는 주로 핸플 업소를 섭렵한 자였다. 

거기에 나이트 쪽에서는 적수가 없는 염소까지 가세하니 분야별 전문가(?)들이 모인것이나 다름없다. 

자연히 나로서는, 듣기만 해도 재밌는 대화가 아닐수 없었다.

"자자 형님들 그건 그렇고....이제 슬슬 입장할 때가 되어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염소가 입을 열자 우리는 모두 말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오늘 모임의 주도자로서 자신이 모르는 다른 유흥가의 말이 주가 되는 것이 은근히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이트에 대해 잘 모르는 우리 셋이니

불만을 가질수는 없었다. 자연히 그의 말을 경청했다.

"우선...제가 나이트에 가면 웨이터와 뭔가 쇼부를 칠 겁니다. 팁도 좀 넣어 줄거구요."

30대 남자 셋의 눈은 금새 초롱초롱해졌다. 우리의 반응을 본 염소는 그제서야 신이 난 듯 입술에 침까지 발라가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젤 쉬운것은 골뱅이를 꽂는 건데....지금 시간대에는 많지 않아요."

"골뱅이가 뭔데?"

"그냥 한마디로 술이 되어서 나 잡아 잡수 하는 꽐라 여자애들이죠. 초보자 코스로는 딱입니다."

모두들 침을 꼴깍 하고 삼켰다. 저들도 나처럼 술이 들어가니 슬슬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모양이다. 

염소는 마치 절대 권력을 가진 왕과 같은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둘러보았다.

"제가 보다가....정 안될거 같다 싶으면 문어 형님부터 킬러 형님, 해바라기 형님 순으로 골뱅이를 앉혀 드릴게요."

우릴 다 챙겨주고 시작해도 자신은 언제든 홈런을 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듬뿍 베어 나왔다. 

아아. 나는 도대체 20대에 뭘 하고 살았던 걸까? 각양각색의 표정을 짓고 있는 우리들을 둘러본 염소는, 곧이어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자. 하지만 골뱅이는 정 안될때 하는 거고....이제부터 나이트에서 여자를 먹을 수 있는 법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잘 숙지하시고...입장 하도록 하죠 형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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